•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1) 산촌 주민의 생태적 특성

(1) 산촌 주민의 생태적 특성

 산촌이 형성되고 발전해 온 역사적 배경은 무엇보다 산촌 주민의 경지개척과정, 특히 火田의 역사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우리 나라 화전의 기원은 고고학적으로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헌에 나타난 기록만으로도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의 창녕정계비에 ‘白田’이라는 두 글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화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토지의 등급을 상ㆍ중ㆍ하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상등급은 ‘不易之地’라 하여 항상 계속적으로 경작하는 토지였고, 중등급은 ‘一易之地’라 하여 1년 동안 경작한 뒤에 다음 1년을 휴경하는 격년제의 경지였으며, 하등급은 ‘再易之地’라 하여 3년마다 1년씩 경작하는 토지였다. 그 중에서 일역지지와 재역지지는 오늘의 화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의≪증보문헌비고≫에도 전국의 경작면적을 기록할 때 수전ㆍ旱田ㆍ화전을 구분한 것으로 보아 화전경작은 고대로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온 것 같다.031)小田內通敏,≪朝鮮部落調査報告 第一冊:火田民ㆍ來住支那人≫(東京:朝鮮總督府, 1924), 2∼4쪽.

 한반도의 지세로 볼 때 화전경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지역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함경도의 낭림산맥 및 그 서쪽 사면과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가장 높은 고산지대이고, 둘째는 평안도 묘향산맥과 언진산맥 사이의 산악지대이며, 셋째는 강원도의 태백산맥 일대이다. 화전의 개간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화전의 소재로 볼 때 산허리에 산재하는 화전의 경사도는 보통 22도에서 28도 가량이며, 아주 경사가 심할 경우에는 60도 내지 70도에 이르는 곳도 있다. 화전 1필지의 면적은 매우 넓어서 보통 2단보에서 5단보에 이르며 일반 농경지의 밭에 비하면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일단 화전에 적합한 위치를 선정한 다음에는 먼저 나무를 벌채하는데 너무 굵은 나무들은 벌목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대로 두거나 껍질만 벗겨서 고사목이 되게 하여 불을 지른다. 흔히 가을부터 겨울철에 걸쳐 벌채와 운반을 하고 초봄의 해빙과 더불어 불을 지른다. 불이 다른 임야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바람이 없거나 적은 날을 택하여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2∼3일간 걸려서 불태우고 진화한다. 타다가 남은 끄트러기는 경작에 편리하도록 몇 군데에 모아둔다.

 경작은 불을 지른 다음 비가 한번 내린 뒤에 행한다. 그 이유는 재가 땅속에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행하는 최초 1년간의 화전을 부데기라 하고, 4∼5년간 계속하는 것을 화전이라 하며, 보통의 화전보다 경사가 급한 화전을 산전이라고 한다. 화전의 경작방식은 평지의 전답 경작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경사가 완만하여 땅을 갈기가 쉬운 곳에서는 기운이 센 소 두필로 쟁기질을 하는 쌍겨리질을 하지만, 경사가 급하거나 나무 끄트러기 또는 암석의 노출이 많은 곳에서는 쟁기질이 곤란하므로 따비로 땅을 판다. 파종은 해빙된 뒤에 될 수 있는 한 빨리 하는 것이 좋으나, 일단 해빙이 되더라도 다시 추위가 몰아닥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기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화전의 파종은 그 위치에 따라서 다르다. 즉, 서향이나 북향의 日照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해빙이 늦기 때문에 파종도 보통의 화전보다 10일 내지 20일 가량 늦어진다.

 화전 농작물은 파종의 시기별로 볼 때 가장 빠른 것이 조ㆍ감자ㆍ옥수수이며, 그 다음에 파종하는 것은 콩ㆍ팥ㆍ녹두 등이고, 가장 늦게 파종하는 것이 메밀이다. 토양별로는 화전 개간 초기의 비옥한 땅에 알맞은 작물이 감자이고, 그 뒤의 보통 토양에 알맞은 작물이 조 따위이며, 나중의 척박한 땅에도 잘 적응하는 작물은 메밀과 귀리 등이다. 그리고 지력의 소모를 완화하기 위해서 콩ㆍ팥 등의 콩과작물을 재배하기도 한다. 화전경작의 특징은 작물의 간작 또는 혼작에서 볼 수 있다. 원래 간작이나 혼작은 파종이나 수확에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지만, 노력도 부족하고 조방적 농업을 하는 화전민들이 간작이나 혼작을 하는 까닭은 산악지대의 기온이 낮고 일조시간이 불충분하여 작물의 생육과 성장이 좋지 못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제초나 시비 등 일체의 손질을 하지 않는 것도 화전경작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겠다. 작물의 수확은 모두 서리가 내리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소요된다.

 화전의 땅값은 경작 연수에 따라 다르고, 경사도와 토질에 따라서도 각기 다르다. 그리고 같은 조건에서도 사유림의 화전은 국유림의 화전 경작권 임대료보다 훨씬 비싸고, 3차년도의 화전은 2차년도의 것보다 반액으로 떨어지며, 4차년도 이후의 화전은 거의 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두기도 한다. 화전의 경작 연한은 보통 4∼5년이고 휴경 연한은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이 걸린다. 화전민들은 대개 처음엔 국유림이나 사유림에 몰래 침입하여 나무를 베고 불을 지른 다음, 일시적인 간이주택을 짓고 화전을 경작한다. 그러다가 지력이 고갈되어 토양이 함유한 자연적 비료가 모두 없어지면, 가족과 함께 화전의 개간이 가능한 새로운 토지를 구하여 이동한다. 과거에 경작했던 화전의 휴경 기간이 충분히 지나 지력이 회복되면, 다시 그곳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고 경작한다. 이처럼 화전의 경작과 휴경을 엇바꿔서 행하거나 작물을 돌려가며 경작하는 방식을 輪作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화전민의 遊農 특질은 자연이 부여한 토지의 능률을 혹사한다. 또 화전민들은 자연조건에만 의존하여 의ㆍ식ㆍ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생활물자를 획득하고자 한다.032)韓相福,<韓國 山村住民의 衣食住>(≪社會學報≫7, 서울大學校 文理科大學 社會學科, 1964), 17∼36쪽. 예를 들면 강원도 태백산맥의 한 산간촌락인 화전민 마을 평창군 도암면 봉산리에서는 의복의 재료를 야생 동식물에서 얻는다. 겨울철의 사냥에서 잡은 멧돼지의 가죽으로 웃옷을 만들고, 칡이나 피나무껍질로 메투리와 주루막을 만든다.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그대로 식수나 세탁 용수로 이용되고, 고비ㆍ고사리ㆍ누르대ㆍ취ㆍ곤두래ㆍ따주기ㆍ청옥ㆍ멍이ㆍ곰취ㆍ병풍ㆍ잔대ㆍ도라지ㆍ더덕ㆍ두릅ㆍ표고ㆍ느타리 등의 산채와 버섯류는 일상의 부식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춘궁기와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에는 救荒 주식으로도 이용된다. 통나무 너와집은 화전민의 대표적인 가옥인데 그 재료는 모두 인근의 산에서 채취한 목재들이다. 석유등이나 촛불 또는 전기 대신에 관솔불로 조명을 하고 난방의 효과도 낼 수 있도록 벽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콜은 산촌의 민가에서만 볼 수 있는 가옥 구조이다.

 이상과 같이 화전민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화전이나 지력이 회복된 과거의 화전 휴경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마침내는 일정한 토지에 정착하여 2∼3대를 지내는 동안 작기는 하지만 화전촌락을 형성하기도 한다. 화전농업을 최근까지 실행하였던 화전민의 촌락은 우리 나라의 가장 특이한 산촌이다.033)韓相福,<韓國 山間村落의 硏究:江原道 太白山脈中의 二個 山村에 관한 構造的 分析>(≪社會學論叢≫1, 社會學硏究會, 1964), 133∼169쪽 참조. 특히 외부 사회와의 접촉이 비교적 드물어 고립된 산촌에서는 과거에 화전민들이 산간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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