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2)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2)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한반도 삼면의 바다에 산재한 3,305개의 섬들은 크기와 위치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육지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규모가 큰 섬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육지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규모의 낙도들이다. 특히 낙도는 육지의 오지인 산촌과 다른 특이한 생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034)韓相福ㆍ全京秀,≪韓國의 落島民俗誌≫(집문당, 1992), 3쪽. 그러한 예를 우리 나라 영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소규모의 고립된 낙도인 馬羅島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035)李起旭,<島嶼文化의 生態學的 硏究:濟州道 隣近 K島를 중심으로>(≪人類學論集≫7, 서울大學校 人類學硏究會, 1984), 1∼56쪽.

 마라도는 해저에서 용암이 분출하여 해수면 위에 솟아올라 굳어지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섬 전체가 현무암의 거대한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원래 이 섬은 숲이 있는 무인도였으나 1883년에 제주도의 영세농어민 4∼5가구가 제주목사의 개간허가를 얻어 벌목한 다음 화전을 일군 뒤로는 숲이 없는 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최근까지 마라도의 주민들은 쇠똥이나 말똥을 땔감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빗물을 오래 저장하지 못하므로 저수지나 하천이 없고 식수와 농업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주민들은 지붕의 추녀에 물받이 시설을 하고, 물줄을 연결시켜 마당 한 구석에 설치한 물탱크에 빗물을 받아 저장해두고 식수와 일상용수로 이용한다.

 섬 주변의 해역은 많은 암초를 포함하여 현무암석이 뒤덮여 있어서 미역ㆍ김ㆍ톳ㆍ청각ㆍ우뭇가사리 등의 해조류나 전복ㆍ소라ㆍ홍합ㆍ대합 등의 패류와 성게ㆍ해삼 등의 극피동물 및 각종 어류들의 최적 서식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대부분 단애를 이루고 곳곳에 해식동굴이 산재하여 선착장을 시설할만한 적지가 없어 간이선착장을 설치했을 뿐이다. 외부와의 교통편은 제주도의 모슬포에서 가파도를 거쳐 마라도까지 1주일에 세 번 왕복하는 소형 정기여객선 뿐이다. 그런데 바람이 많기로 이름난 제주도 중에서도 바람이 가장 많고 돌풍이 심하며 파도가 거친데다가 안개가 빈번히 끼는 곳이 바로 마라도이기 때문에 소형 여객선의 교통편조차도 번번이 두절되기가 일쑤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은 토지자원과 수산자원이다. 토지자원은 10만 평 가량의 땅이 전부이다. 개간으로 숲이 없어진 뒤로 처음 수년 동안은 토양이 비옥하여 대부분의 토지에서 농경이 가능했으나, 해가 거듭됨에 따라 풍우의 침식으로 표토의 층이 얕아지고 토양이 척박해져서 현재는 섬 남단의 일부 지역에서만 농경이 가능하게 되었다. 개간 초기에는 보리ㆍ조ㆍ콩ㆍ피ㆍ메밀 등 밭작물의 경작이 가능했으나, 요즘에는 대부분의 농토가 초지로 변형되었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농경지에서도 유채와 고구마를 겨우 재배하고 있을 뿐이다. 공동목장의 초지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소를 방목하고, 11월부터 4월까지의 겨울 동안에는 각 농가의 외양간에서 건초를 먹여 사육한다. 건초 사료는 각 집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초지에서 베어 저장한 것이다. 각 집의 초지 관리는 과거에 그들의 경작지였던 곳에 한정되고 있다. 땔감으로는 들판에 널려있는 쇠똥을 이용하고 있다. 쇠똥을 모으는 일은 주로 아이들이 하고, 그것을 반죽하여 손바닥 크기의 얇은 연료판으로 만들어 바위에 널고 말리는 일은 부녀자들이 한다.

 토지자원이 부족하여 농경만으로는 주민들의 식량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원이 바로 해저에 서식하는 동식물군을 포함한 수산자원이다. 특히 섬 주변의 수심 20m에 이르는 수역은 주민들의 공동어장으로서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이용이 금지되어 있다. 제1종 공동어장에서 해조류ㆍ패류ㆍ연체동물들을 채취하는 작업은 여성들의 일이다. 해녀들의 작업장은 이 공동어장에 한정되어 있다. 그 까닭은 마라도가 심해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동어장을 벗어나면 수심이 깊어 해녀들의 잠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섬의 개척 초기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갯가에서 손으로 채취할 수 있을 정도로 패류나 해조류가 풍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농사가 점차로 불가능해짐에 따라 주민들이 모두 수산물 채취업에 집중하면서부터 수산자원이 희소해지기 시작하였다. 갯가에서 잡히던 소라나 전복 등이 물 속 깊은 곳에 들어가야 잡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하게 되었다. 물안경ㆍ빗창ㆍ호미ㆍ태왁ㆍ망사리ㆍ소살 등의 채취도구는 해녀들의 잠수작업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전복ㆍ소라ㆍ성게ㆍ해삼ㆍ문어ㆍ청각ㆍ우뭇가사리ㆍ톳ㆍ미역ㆍ김 등을 채취하는 제1종 공동어장에서는 섬 전체의 해녀들이 공평하게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채취작업을 할 때는 모든 해녀들이 모여서 함께 물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협동을 위해서가 아니다. 해녀의 채취작업은 근본적으로 협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의 개별 노동에 근거하고 있는 작업이다. 해녀들의 연령은 1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해녀들의 채취량도 각자의 잠수능력에 따라 다양하다. 잠수능력을 평가해서 열길 물 속을 잠수할 수 있는 해녀를 상군, 여덟길까지 잠수하는 해녀를 중군, 그 밖의 해녀를 하군으로 구분한다.

 남녀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수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은 미역과 톳을 채취하는 시기에 이루어진다. 미역과 톳의 채취에 대하여는 해녀회의 공동체 내규로 금채와 허채의 기간을 정하고 있다. 허채기간 외에는 채취가 불가능하다. 금채기간의 설정은 가장 성숙한 시기에만 해초를 채취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누군가가 이 규칙을 어겼을 때는 채취도구와 채취물 일체를 압수하고 해녀회에 소정의 벌금을 내도록 한다.

 미역의 금채기간은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이고 허채기간은 4월 한달이다. 허채기간에 각자가 채취한 미역은 모두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전가족이 동원되어 경쟁적으로 총력을 다하여 일한다. 채취작업은 해녀가 잠수하여 물 속의 바위에 자란 미역을 호미로 베어내면, 남자들이 물 위에 뜬 미역을 뭍으로 옮기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 잠수가 불가능한 노인 해녀들을 위해서는 ‘할망바당’이라는 갯가의 얕은 바다에 특정 구역을 지정하여 일반 해녀들의 채취를 못하게 하고 할머니들만 채취하도록 하는 관행이 있다.

 톳은 1970년대부터 일본으로 대량 수출됨에 따라 과거에 비하여 가격이 훨씬 비싸지고 귀중한 해초로 인식이 바뀌었다. 톳의 채취에도 금채기간이 정해져 있고 허채기간은 마라도의 서바다에서 1월 한달과 동바다에서 3월 한달씩 연중 두 차례에 걸쳐 있는데, 미역과는 달리 톳의 채취는 섬 주민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톳을 채취할 때는 마라도에 거주하는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외지에 나가있던 식구들까지도 돌아와서 함께 참여한다. 그 까닭은 톳의 수입금이 채취작업에 참여한 사람의 수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잠수 채취작업이 여성들만의 일이라면, 어선을 이용한 어로작업은 남성들만의 일이라고 하겠다. 마라도에는 포구 시설이 없고 풍랑이 심하면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소형 어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각 어선에는 선주 1인과 선원 2인이 함께 타고 각자가 따로따로 자기의 낚시와 그물을 가지고 고기를 잡는다. 배를 함께 탄 사람들을 뱃동서라고 하는데, 그들은 각자의 그물과 주낙을 치고 걷어올리는 작업을 서로 도우며 협력한다. 물때에 맞추어 그물을 치는 시간이 다르지만 대체로 저녁나절에 쳐둔 그물과 주낙을 다음날 새벽녘에 거두어 밤사이에 잡힌 고기를 꺼낸 다음, 다시 각자의 원하는 장소에 그물과 주낙을 쳐두었다가 저녁나절에 걷어올린다.

 자망과 연승에 의한 어로작업은 마라도 주변 해안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어획량이 매우 적다. 여기서 잡히는 어종은 방어ㆍ구리찌ㆍ옥돔ㆍ혹돔ㆍ가오리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뱃동서들은 각자 따로 고기를 잡지만, 남의 배를 탄 어부는 선주에게 배삯으로 어획량의 10%를 낸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큰 어획량을 올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획량은 가정에서 찬거리를 마련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남성의 어로작업이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라도 주민들은 그들의 생계를 여성의 잠수 채취업에 의존한다. 여성이 생계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반면에, 남성은 가내소비의 영세한 어로활동과 대부분의 가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마라도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주민들의 생존전략과 생태적ㆍ사회경제적 특성은 여성 중심의 채취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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