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Ⅱ. 한민족의 기원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1) 민족지로서의≪삼국지≫위서 동이전과 문화권의 문제

(1) 민족지로서의≪삼국지≫위서 동이전과 문화권의 문제

 주지하듯이 陳壽의≪三國志≫魏書 동이전은 244∼245년 위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침략, 수도 환도성을 함락한 뒤 東川王을 추격하여 동해안의 沃沮 땅에 이르러 현지의 長老들로부터 청문한 지식과 또한 그간 辰王을 통해서 입수한 三韓사회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편찬된 것이다. 이 동이전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민족 여러 국가의 중국과의 교섭 관련 기사보다는 오히려 이들 사회의 풍속 습관에 대한 民族誌的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하긴 이들 기사는 俎豆의 사용 여부나 혹은 跪拜의 예절 유무를 갖고 법속에 綱紀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등 孔子 이래의 東夷觀에 입각해 있고, 더욱이 당시 중국인의 눈으로 볼 때 인상에 남는 기이한 것을 주로 기술하는 등 결코 본격적인 민족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이전은 대동강유역에 樂浪郡이 설치된 이래 대체로 서력 기원 전후한 시기로부터 3세기 중엽에 걸치는 시기의 한민족의 습속에 대한 지식을 일괄하여 수록한 귀중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부여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동예, 삼한을 거쳐 倭人에 대한 기술로 끝나는 동이전에는 조금씩 양상을 달리하는 예·맥·한족 계통 군소 국가의 모습이 뒤섞여 있다. 우리들은 이 기사를 통해서 한민족의 종족적 계통이나 그 지역적 차이 내지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요동지방으로부터 한반도 남부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 거주하고 있던 한민족 계통의 여러 국가사회는 중국으로부터 정치적·문화적 영향을 받고 있었다. 부여가 시종일관 중국과 우호 친선관계를 유지한 반면 고구려는 중국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어서 양국 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동예는 때때로 중국 군현세력에 협조적이었고, 삼한 역시 246년 군현 당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일으키기 이전까지는 辰王을 통해서 그들과 비교적 긴밀한 교섭을 유지해 왔다. 이처럼 한민족의 정치사회가 서기 1∼3세기경 중국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가운데 중국의 물질 및 정신문화가 소리없이 침투해 들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민족의 문화적 계통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때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남쪽 해양을 통한 문화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한반도는 남동풍이라는 계절풍과 필리핀 북부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의 모든 바다를 안고 도는 쿠로시오(黑潮) 해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인도의 벵골만에서 인도차이나반도 연안을 따라서 올라오는 동남아시아문화와 인도네시아로 올라오는 멜라네시아·미크로네시아 등지의 남태평양문화가 남중국해의 북쪽에서 쿠로시오로 갈아타고 북상, 濟州해협을 통과한 다음 한반도의 남해안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그 흔적을 남긴 것이다. 종래 민족학계에서 이른바 남방문화라는 다소간 모호한 명칭으로 불러 온 이 문화의 유제는 뒤에서 보듯이 동이전 가운데 특히 韓傳에 일부 散見되고 있다.

 지난날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 고대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대개 한강유역을 경계로 하여 남북한이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현상을 흔히 문화계통의 차이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고, 나아가 이를 민족적 소속의 차이에 연유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민족학계에서 오스트리아 빈(Wien) 학파를 중심으로 하여 유행한 文化圈(kulturkreis) 이론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었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견해에 따르면 북한지역은 북방계인 예맥족의 문화권, 남한지역은 남방계인 한족의 문화권으로 크게 구별된다. 그러나 해방 후 눈부신 발전을 거둔 한국고고학의 연구성과는 이 같은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외형상 크게 대립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남북한 두 지역의 고인돌을 결코 문화발전의 단계적 차이나 혹은 종족의 차이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만 지역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데 불과한 것임이 입증된 것이다. 종래 남북한의 문화계통 내지 종족 二元論의 중요한 지표로 간주되어 온 고인돌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남북한 간의 지역적 차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고, 본디 같은 계통의 것이라고 보는 인식이 기본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기본 인식에 입각하여 주로≪삼국지≫동이전에 보이는 예맥·한족의 풍속 관련 자료를 갖고 주변 제민족의 그것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한민족의 문화계통을 분명히 밝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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