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4) 원삼국문화

4) 원삼국문화

 서력기원 전후에 이르면 의기화된 청동기는 소멸하고, 일반적인 생활용구로서의 기능은 철기가 완전히 대체하게 된다. 이전에는 이 시기를 단순히 도구의 재질에 초점을 두어 철기시대라 불렀으나 현재는 사회정치적 개념을 고려하여 다음에 올 삼국시대의 기반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원삼국시대라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대동강유역에 漢의 낙랑군이 설치되고 남한지역에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지역에 마한, 낙동강 이동의 경상도지역에 진한, 김해를 비롯한 낙동강유역에 변한 등 삼한이 성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삼국시대의 상한은 대체로 낙랑군의 직접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서력기원 전후가 되며 하한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실질적으로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되는 기원 후 3세기가 된다.

 원삼국시대의 문화상은 철기의 본격적인 생산과 보급, 경질무문토기의 확산, 고인돌의 소멸 및 돌덧널무덤의 성행,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의 발전 등으로 요약된다. 철의 생산은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크게 발달하여≪삼국지≫위서 동이전 韓條에는 이 지역의 철기 생산의 번창함을 묘사하면서 낙랑과 일본에까지 철을 수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남 창원 성산 패총과 경주 황성동에서는 당시의 야철지가 발굴되었고, 경기도 가평 마장리에서는 冶爐送風用鼓風管 등이 발견되었으며, 함경도지역의 영흥 용강리, 회령 오동 등에서도 증거가 확인되었다. 이들 철기류 중에는 금속학적으로 백련강에 속하는 것도 있어 당시 고도의 철기제조기술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질무문토기는 이 시기의 표식적인 유물로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에 새로이 중국식 회도 기술이 도입되어 나타나게 된 토기이다. 토기의 태토는 매우 정선되었고 종래의 노천요 대신 등요에서 제작되었으며 토기의 성형에도 회전판이나 물레가 사용되었다. 토기의 표면에는 토기가 완전히 굳기 전에 두드려 생기는 살무늬나 문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형태상으로도 상당히 다양해져서 일반적인 항아리나 대접 이외에도 굽다리접시, 단지, 쇠뿔잡이토기, 시루 등이 출현한다.

 집자리로는 김해 부원동에서 원형·방형·초석이 있는 세 종류의 움집이 조사되었고, 춘천 중도에서는 방형 또는 말각방형의 움집터 등이 조사되었으며, 수원 서둔동에서는 아궁이 시설이 있는 움집터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이전의 돌널무덤·고인돌 등이 점차 소멸하면서 널무덤·덧널무덤·돌덧널무덤 등이 성행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소형으로 김해 예안리, 울산 삼광리 등의 유적이 대표적이다.

 이상과 같이 원삼국문화는 농경의 확산과 철기의 발달 등 발전된 경제력을 기반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정치구조가 점차 확립되게 된다. 그 결과 각 지역에 산재되어 있던 족장사회들이 하나의 중심 세력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겪게 되어 고구려·신라·백제 등 삼국이 완전한 왕권을 갖추고 고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확립하게 됨으로써 3세기 전후에 이르러 본격적인 역사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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