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5. 근현대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4) 산업화와 사회 문화의 발전

(4) 산업화와 사회 문화의 발전

 해방전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해방 후에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면서 국민적 역량을 증대시킨 것은 한국현대사 발전의 동인이 될 수 있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것은 위로부터 이룬 성과였다. 거기서 지도역량을 증대시킨 점은 한국인으로서 부러운 바인데, 그에 비하여 한국에서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아래로부터 전개하여 대중적 역량을 증대시켰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 전망을 밝게 하는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것을 한국현대사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아래로부터 창출한 발전 동력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적 교육열에 힘입어 해방 후에 교육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현대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정부수립 당시에 문교부에 성인교육과를 두어야 할 정도로 문맹률이 높았는데 이제는 세계에서도 문맹을 걱정하지 않는 굴지의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대중적 역량 증대가 해방 후 한국현대사의 특징인 것이다.

 1945년 해방 당시 인구가 2천4백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남북한 7천5백만 명으로 5천여만 명이 증가하였다. 해방 당시만 해도 구시대의 신분제가 사실상 잔존했는데 이제 그것은 없다. 이웃 일본에는 아직도 부락회가 있어 백정 후손의 신분해방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근대화를 선구적으로 추진한 영국에 중세 귀족 전통이 잔존한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남한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에 이르고 경제규모와 무역량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고 있다. 1961년 5·16군사정변에 의한 군사정권이 1993년까지 30년 집권기간에 독재정치일망정, 또 개발 독재의 위험을 부담하면서도 산업은 발달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정경유착의 구조적 모순, 부실공사의 만성화, 도덕의 타락, 농촌의 피폐, 부정부패의 만연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지만, 국민적 역량에 힘입어 경제는 발전할 수 있었다. 노동자는 민주화를 위한 시위를 끊임없이 전개하며 산업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학교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시위만 하는 것같던 학생들도 밤새워 공부하며 학문을 도야했다. 그들이 학문과 기술과학을 발전시켜 전자기술은 세계 1위에 올라 섰다. 의무교육이 9년제에 이를 것도 멀지 않았고 신문·텔레비젼·컴퓨터 보급률도 세계 수준에 도달하여 정보화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아나로그시대도 비교적 빨리 달성했는데 디지털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한국인의 교육수준 향상이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복지국가 건설을 위하여 전진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 사회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당면 과제라 하겠다. 6백만 해외동포에 대한 모국정책도 종합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1945년 8월 16일에 결성된 조선학술원에 등록된 회원이 1백 명을 넘지 못했는데 현재 대학 교수수만 6만 명을 넘는다. 2002년에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받으려고 등록한 학자수가 7만 명에 이르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등록한 인원만도 2만 4천 명을 넘는다. 해방 후 학문의 발달은 각 분야에 걸쳐 있었으나 특히 일제 강점하에서 위축되었던 한국학(조선학) 분야가 괄목되게 성장하였다. 남북한을 통하여 국어학·국문학·국사학·민속학 등이 경쟁적으로 발달하여 이제는 국학으로 말미암아 민족주의의 국수화를 염려하여 각급학교에서 국학교육에 제동을 걸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만에 도취할 단계는 아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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