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1) 한국어의 구조적 특징

1) 한국어의 구조적 특징

 모든 언어는 공고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독특한 음운 체계와 문법 체계, 그리고 어휘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국어의 음운·문법·어휘 체계는 현저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어떤 언어에 대하여 논할 때 그 특징들의 묶음을 제시하는 일이 있는데, 한국어와 비슷한 묶음을 가진 언어는 더러 있으나 똑같은 묶음을 가진 언어는 찾기 어렵다.

 종래 한국어의 큰 특징으로 학자들이 자주 든 것에 母音調和와 문법적 膠着性이 있었다. 모음조화란 모음들이 陽母音과 陰母音의 두 계열로 나뉘어 있고 한 단어 안에서는 어느 한 계열의 모음들만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중세한국어에서는 매우 현저하였다. 양모음 ‘, ㅏ, ㅗ’, 음모음 ‘ㅡ, ㅓ, ㅜ’가 있었다. 이밖에 中性母音 ‘ㅣ’는 어느 모음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괄호 속은 현대어). ‘가(가슴)’, ‘낟다(나쁘다)’;‘거붑(거북)’, ‘어듭다(어둡다)’;‘고티(고치)’, ‘어딜다(어질다)’. 중세한국어만은 못하지만, 현대한국어에서도 모음조화 현상을 볼 수 있다. 특히 擬聲語, 擬態語에 이 현상이 뚜렷하다. ‘찰찰’, ‘철철’;‘종알종알’, ‘중얼중얼’;‘모락모락’, ‘무럭무럭’.

 교착법이란 실질적 의미를 가진 체언 또는 용언 어간에 문법적 의미를 나타내는 接尾辭를 붙이는 문법적 절차를 말한다. 명사 ‘사람’에 조사 ‘이’가 붙으면 주어가 되고 ‘을’이 붙으면 목적어가 된다. 동사 어간 ‘가’는 어미 ‘고’, ‘면’ 등을 취하여 활용한다. 두 명사나 동사를 연결할 때에도 接續詞 대신 조사나 어미를 쓴다. ‘사람과 소’, ‘먹고 자다’.

 위에 든 모음조화와 교착성은 한국어의 큰 특징인데 이 특징들은 알타이(Altaic) 제어 즉 토이기, 몽고, 퉁구스의 세 語群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 중에서 이들 언어가 이런 큰 특징을 共有하고 있는 사실이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한국어는 알타이제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들도 가지고 있다. 그 중 현저한 것으로 용언 어간의 용법을 들 수 있다. 알타이제어에서는 동사의 명령형은 어간만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에는 어미가 붙지 않는다. 몽고어 yabu(가라), 토이기어 gel(오라), 만주어 ara(쓰라, 書). 한국어에서는 어미 ‘(으)라’가 붙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명령형 이외의 모든 경우에 알타이제어의 동사 어간은 반드시 어미와 연결되어 존재함에 대하여 한국어의 동사 어간은 어미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첫째, 어간이 부사로 쓰일 수 있다. ‘및(及)’, ‘갖추(具)’는 ‘및다’, ‘갖추다’의 어간의 부사로 쓰인 것이다. 둘째, 두 동사 어간의 합성이 이루어진다. ‘맞보다’, ‘나돌다’, ‘오르내리다’ 등. 이것은 중세한국어에서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셋째, 동사 어간과 명사가 합성된 예도 있다. 중세한국어의 ‘돌(숫돌)’은 동사 ‘다(摩)’의 어간과 명사 ‘돌(石)’의 합성이었다. 이밖에 동사 어간과 명사가 일치하는 예들이 많음도 주목할 만하다. ‘배다(孕)’, ‘빗다(梳)’ 등의 어간은 명사 ‘배(腹)’, ‘빗(梳)’과 일치한다. 이런 예는 알타이제어에서는 볼 수 없다.

 여기에 형용사에 관하여 덧붙일 필요를 느낀다. 한국어의 형용사 ‘희다(白)’, ‘멀다(遠)’ 등은 용언으로서 동사와 같이 활용하지만 몽고어의 čaϒn(白), qola(遠), 만주어의 sanyan(白), goro(遠) 등은 명사와 같아서 활용하지 않는다. 이것도 매우 주목할 만한 차이지만, 한국어의 형용사 어간은 부사로도 쓰이고(‘하’多, ‘더디’遲), 두 어간이 합성하기도 하며(‘늦잡다’, ‘밉보다’) 명사와 합성하기도 하는 점(‘늦봄’, ‘밉상’)에서 동사와 같다.

 세계의 여러 언어들과 견주어,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무엇보다도 敬語法을 들 수 있다. 중세한국어의 경어법은 어미로 표시되었는데 謙讓法 어미는 ‘’, 尊敬法 어미는 ‘시’, 恭遜法 어미는 ‘’였다. 겸양법은 尊者와 관련된 卑者의 행동을 나타내었고(‘부텻긔 머리 좃고’), 존경법은 존자의 행동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었으며(‘님금 오시며 ’), 공손법은 존자에 대한 話者의 공손한 진술을 나타내었다. (‘올시다. 世尊하’) 이러한 경어법 체계는 고대 신라어에도 있었음이 鄕歌 속에서 확인된다. 이 체계가 근대한국어에서 존경법과 공손법으로 단순화되었다. 즉 겸양법이 공손법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한국어의 경어법은 어미에 의해서 표시되는 공고한 체계인 점이 자못 특이하다. 세계의 여러 언어들을 두루 살피지는 못했지만, 한국어와 같이 경어법이 발달한 예를 보지 못하였다. 일본어에도 경어법이 발달되어 있지만, 接頭語와 보조동사의 사용으로 표시될 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한국어의 경어법은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언제 어떻게 이 체계가 틀을 잡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억측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어학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수수께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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