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2. 문학
  • 1) 전반적 양상

1) 전반적 양상

 한국문학은 한국인 작자가, 한국인 수용자를 상대로 한국어로 창작한 문학이다. 한국인은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고 살아 왔으며, 민족적 특색이 뚜렷하다. 그러므로 작자나 수용자가 한국인인가 가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언어가 단일언어로 통일되어 있어, 한민족의 언어이고 한국의 국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문학이 바로 한국문학이다. 자국문학의 범위가 이렇게 규정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흔하지 않다.

 한국문학은 구비문학에서 시작되었다. 구비문학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기록문학의 저층 노릇을 해 왔다. 중국에서 한문을 받아들여 한문학을 이룩하자, 문학의 폭이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한자를 이용해서 한국어를 표기하다가, 한국의 문자를 창안해 국문문학을 온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국문학은 그 세 가지 문학, 구비문학·한문학·국문문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문학사는 그 세 가지 문학이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해 온 역사이다.

 문학의 기본 요건이 글이 아니고 말이므로, 구비문학이 문학이고, 한국의 구비문학이 한국문학이다. 얼마 동안의 논란을 거쳐, 그 점에 관해서 견해가 일치하게 되었다. 국문학과에서 으레 구비문학을 강의하고, 구비문학의 조사와 연구에 힘을 기울인다. 민요, 무가, 설화 등 구비문학의 오랜 유산이 아직까지 풍부하게 전승되며, 탈춤이나 판소리의 가치가 거듭 재평가되고 있다. 시인들은 오늘날의 시 창작에서 민요를 되살리려고 한다.

 한문학은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를 글로 적은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한국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전어인 한문은 중국어 구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중국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이 함께 쓰는 공동문어이다. 그 점에서는 라틴어·고전아랍어·산스크리트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한문은 다른 세 가지 공동문어와는 상이하게, 나라마다 발음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읽는 방식 또한 같지 않다. 한국에서 한국음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토를 달아 읽는 한문은 한국어의 문어체이고, 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한국어 특유의 어법이나 어휘를 받아들여 더욱 한국화한 한문도 있다.

 한국한문학은 한국의 작가가 한국의 독자를 상대로 창작해 왔으며, 한국인의 생활을 내용으로 하고, 한국문학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구비문학을 적극 받아들이고, 민중생활을 힘써 다루면서, 한문학을 민족문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중국에서 마련된 형식이나 표현방법을 그대로 따른 한문학 작품에서도 한국한문학 특유의 취향이 확인된다. 서사시를 지향하는 장시가 많은 것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어 기록문학은 한자를 이용해서 한국어를 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한자를 받아들여 널리 사용하게 되자, 한자를 이용해서 한국어를 표기하는 鄕札을 고안할 수 있었다. 향찰은 일본의 가나〔假名〕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베트남의 쯔놈〔字喃〕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세 가지 표기법이 후대에는 운명이 갈라졌다. 일본에서는 한자의 자획을 간략하게 하고 표음문자로 바꾼 가나 문자를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베트남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쯔놈 문자를 버리고 마침내 로마자를 채택했는데, 한국에서는 15세기에 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문자를 창안했다.

 한국어는 음절 구성이 복잡해 한자로 표기하기 힘들다. 그래서 향찰이 널리 이용될 수 없었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우수한 문자 훈민정음을 창안하자 비로소 한국의 국문문학이 제대로 가꿀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국문문학은 구비문학 및 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필요한 단계를 거쳐 발전해야 했다. 국문문학은 구비문학을 어머니로 하고, 한문학을 아버지로 한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구비문학에서 표현을, 한문학에서 사상을 받아들여, 그 둘을 결합시키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한문학권의 다른 나라 문학도 구비문학·한문학·국문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문학권이 아닌 산스크리크권, 고전아랍어권, 라틴어권의 여러 나라 나라에도 구비문학, 공동문어문학, 국문문학이 각기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구비문학·한문학·국문문학의 관계를 특히 중요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 셋이 대등한 비중을 가지고 각기 적극적으로 구실을 해 왔다.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그 점을 특히 중요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문학권의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중국에서는 한문학이, 일본에서는 국문문학이 압도적인 비중을 가지고, 베트남에서는 구비문학의 특히 두드러진 구실을 한 것이 한국의 경우와 다르다. 중국은 한문학의 본고장이어서 한문학이 크게 발달한 반면에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없어, 한국의 국문문학에 해당하는 문학의 발달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한문학을 하는 능력을 평가해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 제도가 실시되지 않아 한문을 하는 문인이 많을 수 없는 일본에서는 한문학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반면에, 국문문학은 일찍부터 발달하고 독특한 기풍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베트남에서는 쯔놈 표기법은 한자에 직접 의존했으므로 널리 사용하기 어려워 국문문학의 창작이 원활하지 못한 대신에, 구비문학을 소중하게 여기고 적극 활용했다. 쯔놈으로 창작된 작품이 독서물로는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면서 민족 전체의 고전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구비문학·한문학·국문문학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하지 않고 서로 대등한 비중을 가졌다. 그 셋이 다투면서 서로 끌어들이고, 상대방의 영역으로 침투하면서 서로 근접되었다. 한문학이 구비문학을 적극 받아들여 영웅의 투쟁을 찬양하고, 한국의 역사와 풍속을 노래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작품화해서 한국 특유의 문학으로 자라났다. 구비문학에서 마련된 시가 형식과 표현 방법이 국문문학에서 적극 재창조되어 왔다. 시가의 혁신이 요구되면 구비시가 가운데 필요한 것을 가져와 새롭게 활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시조와 가사가 생겨나고, 시조가 사설시조로 바뀌었다. 국문시가에서 한시에 못지 않은 품격과 사상을 갖추고자 하는 노력이 또한 계속되었다.

 구비문학·한문학·국문문학의 밀접한 관련은 상하층 문학담당자들의 상호 교섭과 협동이 있어 나타난 결과이다. 지배층은 피지배민중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민족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의 모순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한문학을 구비문학에 근접시켰다. 민중을 가르치면서 다스릴 필요가 있어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도덕적 교화의 효과적인 방법을 국문문학에서 마련하려고 했다. 국문소설이 권선징악의 주제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런데 민중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지배층의 특권에 반발하는 풍자문학을 이룩했다. 상층에서 유래한 표현을 끌어다 쓰면서 희화화하고, 국문문학의 작품세계를 상층에서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교훈과 풍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작품 구조가 마련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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