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3. 종교와 사상
  • 2) 한국 종교사의 범위

2) 한국 종교사의 범위

 종교 논의에는 종교란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전제가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는 다양한 방법과 기준에 의해 정의되고 있다. 그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가 하면, 그 기능을 중심으로 정의되기도 한다.509)Meredith B. McGuire. Religion:The Social Context(Belmont, Wadsworth publishing co, 1981) pp.4∼9:김기대·최종렬 옮김,≪종교사회학≫, 민족사, 1994), 19∼28쪽에서는 전자를 본질적 정의(substantive definition), 후자를 기능적 정의(functional definition)라고 했다. 그리고 의자를 가지고 비유하자면, 전자는 ‘4개의 다리와 등받이를 가진 가구’라 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람이 앉는 자리’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또 본질과 기능을 무엇으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각각은 다시 여러 정의로 나뉘어진다.

 정의의 차이는 종교의 범위를 달리 설정하게 한다. 그리고 종교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종교의 경우에도 어디까지를 종교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었다.

 첫째, 기독교만이 종교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설 때, 기독교 수용 이전의 한국에는 종교가 없었던 것이 된다. 17세기에 하멜(Hendrick Hamel)이 “종교에 관하여는 조선인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만하다” 했다든지,510)Hendrick Hamel(이병도 역);≪하멜漂流記≫(일조각, 1954), 75쪽. 한말에 왔던 서양인들 중에서 한국인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악령숭배(daemonism) 같은 미신만이 존재한다고 한 것이511)金鍾瑞,<韓末, 日帝下 韓國宗敎 硏究의 展開>(≪韓國思想史大系≫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249∼262쪽.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편협한 입장이며, 때문에 오늘날 통용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둘째, 국가로부터 공인된 종교만이 종교라는 입장이다. 1915년 일제가 공포한<布敎規則>(조선총독부령 제 83호)의 규정이 그것인데,512)≪朝鮮總督府官報≫21(아세아문화사, 1985), 172∼173쪽. 이에 의하면 종교란 神道·佛道 및 기독교에 한정되며, 그 밖의 것은 종교유사단체가 된다. 당시 종교유사단체라면 신종교들을 가리키며, 이 가운데 대종교와 천도교 같은 신종교들은 민족운동의 온상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1889년 발포한 明治憲法에서, 비록 ‘안녕 질서를 방해하거나 臣民의 의무를 거역하지 않는 한도 내’라는 단서는 붙었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513)김종문,≪일본의 문화와 종교정책≫(신원문화사, 1997), 276쪽. 따라서 일제가 종교와 종교유사단체를 구분한 것은 신종교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음은 물론, 나아가 이를 말살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514)윤선자,<일제의 종교정책과 신종교>(≪한국근대사와 종교≫, 국학자료원, 2002), 52쪽. 이렇듯<포교규칙>은 그 의도부터가 문제이지만, 국가의 공인 여부가 종교와 비종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셋째, 체계적인 교리와 조직화된 교단을 갖춘 제도종교(조직종교, 공인종교라고도 함)만이 종교라는 입장이다. 즉 불교·유교·천주교·기독교·신종교 등이 종교라는 것이다. 단, 유교는 정치이념·철학·윤리 담론이라 하여, 종교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은 5·4운동 이후 중국에서 등장한 이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으며,515)Rodney Taylor, The Religious Dimensions of Confucianism(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0).
가지 노부유키(이근우 역),≪침묵의 종교 유교≫(경당, 2002).
그래서 한국 종교를 논할 때는 유교도 함께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와 같은 범주화에서는 비조직적인 확산종교(diffused religion)가 제외된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서는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신앙(원시신앙·무격신앙·민간신앙 등)이라 한다. 또 무속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일종의 습속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교리의 체계화나 종교집단의 조직화가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을 구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제도종교와 확산종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양자 모두 신성 내지 초월의 영역과 관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며, 이 점에 있어서 양자와 다른 문화현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라기 보다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 때 확산종교를 종교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넷째, 제도종교와 확산종교 모두를 종교의 범주에 포괄하는 입장인데, 여기서 취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제도종교와 확산종교의 차이는 물론, 제도종교 각각도 자체의 특성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서양에서는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종교와 유사한 현상까지 종교로 보는 입장이 있다. 전체주의나 공산주의가 절대적인 것에 대한 복종과 이를 구심점으로 한 결속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능에 있어서의 유사성일 뿐, 신성 내지 초월적 영역과의 관계 설정이 없다는 점 등, 본질에 있어서 이들 현상은 종교와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은 고유한 의미에서의 종교 논의의 초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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