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3. 종교와 사상
  • 4) 고유종교의 문제

4) 고유종교의 문제

 종교가 언제부터 인류의 문화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기구석기시대의 매장유적, 후기구석기시대의 여신상이나 동굴벽화의 존재로 미루어, 적어도 중기구석기시대로까지는 소급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구석기시대부터 종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청원 두루봉 동굴유적 등, 구석기 유적에서 동물 조각품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신앙 및 의례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523)이융조,<청원 두루봉 동굴의 구석기 문화>(≪한국의 선사문화-그 분석 연구≫, 탐구당, 1981). 이후 신석기시대로 오면 다양한 자료들이 종교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예컨대 토광 直葬의 분묘유적들,524)홍보식,<분묘로 본 매장형태의 변화>(≪죽음과 문화≫, 동의대 인문과학연구소, 2002), 7∼11쪽. 제의 공간,525)任孝宰·梁成赫,≪영종도 는들 신석기유적≫(서울대 인문과학연구소, 1999), 73쪽. 神像526)金元龍,<韓國先史時代의 神像에 대하여>(≪韓國考古學硏究≫, 일지사, 1987), 186∼197쪽. 등이 그것이며, 청동기·철기시대를 거치면서 관련자료는 더욱 증가한다.

 이렇듯 한국에는 불교·유교 등의 외래종교가 수용되기 이전부터 나름대로 종교전통이 있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전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지고 있다. 하나는 독자적인 종교전통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보편적 원시종교로 보는 입장이다.

 먼저 독자적인 종교전통으로 보는 견해란 불교 등의 외래종교가 수용되기 전부터 한국에는 조직화된 고유종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20세기 초 金敎獻·朴殷植·申采浩 같은 민족운동가들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했다. 이들에 의하면, 이는 ‘神敎’·‘仙敎’·‘수두교’라 하며, 단군에서 비롯되었고, 그 우수성으로 말미암아 민족문화 건설과 민족정신 고취의 토대가 되어왔다고 한다.

 한편 보편적 원시종교로 보는 견해란 외래종교가 수용되기 이전의 한국에는 다른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으로 원시종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만의 독특한 종교, 그것도 敎祖가 있고 일관된 교리를 갖춘 종교가 상고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한말 외국인들의 저술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컨대 1900년 러시아 대장성 간행의≪韓國誌≫에서, 불교·유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한국 종교는 샤머니즘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527)≪國譯 韓國誌≫(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337쪽. 그리고 한국에서는 1920년대 李能和와 崔南善이 독자적 종교전통의 존재도 인정하면서, 이를 무속 내지 샤머니즘과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토테미즘·타부·주술 등 다양한 현상들이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롭게 부각된 것은 무속 전통이었다. 지금까지 천시의 대상이었던 무속이 이제 한국 종교의 원형을 간직한 고유한 전통으로 부각된 것이다. 나아가 고유종교가 무속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할 때, 어떤 견해를 취하느냐에 따라, 한국종교사는 출발부터가 달라진다. 한국 종교의 원초형태는 그것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후 수용되는 외래종교의 성격을 상당 부분 규정하고, 그 결과 그들로 하여금 본래의 그것과 다른 한국적 변모를 나타내게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예컨대 사찰의 산신각, 가톨릭 신자들이 자동차의 실내 후사경에 묵주를 걸어두는 풍습, 1906년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새벽기도 등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한국종교사의 출발점에 대한 혼선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전자의 경우, 연구 목적은 사실 확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주독립 쟁취라는 시대적 과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즉 고유종교를 부각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학문적 성취도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유종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점이나 그것의 독자성·특수성을 주목한 공적도 있지만, 자료의 뒷받침도 부족하고 논리 전개에도 비약이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독자적 종교전통의 존재 자체가 제대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채, 일종의 당위로만 선험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따라서 선각자들의 학문적 직관력을 존중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의 보강 없이는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 연구 주제의 다변화로 고유종교의 다양한 측면들을 밝히고 있으며, 다른 지역 원시종교나 현존 무속과의 비교 등 방법론을 세련시켰다. 뿐만 아니라 논지 전개도 보다 실증적이다. 따라서 오늘날 연구의 주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입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고유종교를 무속 내지 샤머니즘이라 하면서도, 그 개념에 대한 정립이 없었다. 그 결과 고유종교의 성격이나 특성은 간과된 채, 사실의 나열에 만족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외국 이론이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적용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데 머무르는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토테미즘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그칠 뿐, 그것의 한국사회에서의 의미와 기능을 밝히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전자가 가진 문제의식-한국 종교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밝히려는 것-을 수용할 때 보완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종교사의 첫 페이지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채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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