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3. 종교와 사상
  • 6) 한국 종교사의 특성

6) 한국 종교사의 특성

 오늘날 한국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多宗敎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삼국시대 이래 줄곧 이어져왔다. 이것은 특정종교만이 존재하는 상황과는 다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 1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다종교 상황을 뒷받침한다. 또 제 20조 2항은 國敎를 부인함으로써 종교를 평등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같은 다종교 상황이라 하더라도 전근대사회는 달랐다. 다시 말해서 종교간의 차별이 있었고, 각 시대마다 시대를 주도하는 종교가 있었다. 불교가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기도 있었고, 유교가 주도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國敎라 할 수는 없다. 국교란 “법률이나 행정상 종교가 국가에 종속된 제도 내지 종교단체”를 말한다.536)小口偉一·堀一郞 감수,≪宗敎學辭典≫(東京大學 出版會, 1973), 202쪽. 그래서 국교 이외 어떠한 종교도 믿을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이단자로서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서양 중세의 기독교가 이에 해당하며, 이에 대항하여 수세기에 걸친 투쟁의 결과 쟁취한 것이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입법화된 종교의 자유라고 한다.537)尹明善·金昞黙,≪憲法體系論≫(법지사, 1998), 448∼449쪽.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하나의 종교만을 인정하고, 그 밖의 것을 불법화한 적은 없다. 물론 조선시대의 유교는 천주교 탄압 사례로 미루어 국교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천주교를 체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종교사에서는 시대에 따라 지배적인 종교는 있었지만, 국교는 없었다고 하겠다.

 다종교 상황에서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 종교간의 배척 또는 갈등이다. 한국종교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다종교 상황이 시작된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불교 수용과정에서 신라 이차돈의 순교, 고구려 연개소문의 도교진흥책에 대한 승려 普德의 반발 등이 그것이다. 또 고려시대에는 지식인들의 민속종교 배척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불교와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종교사의 주류는 종교를 상호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아가 종교간에 상충되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을 모두 인정하는 관용적·포용적 입장을 취했다. 유교식 조상제사를 거행하면서 불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종교사에서는 자신의 종교적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리는 일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또 종교적 이상을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 종교반란을 도모하는 일도, 비록 동학농민전쟁이 있기는 하지만, 흔치 않았다. 그렇다고 할 때 앞에서 제시한 종교 배척 또는 종교간의 갈등 사례도 종교 자체 때문이기 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체제수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종교의 관용적·포용적 성격은 종교의 외형에서뿐만 아니라, 내면의 종교사상을 통해서도 발현된다. 불교의 경우, 원효가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의 양대 산맥인 中觀思想과 唯識思想의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 和諍의 논리를 내세운 것, 지눌이 교종과 선종을 통합시키면서 불교계의 개혁을 도모하기 위해 定慧雙修의 논리를 주장한 것 등이 모두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이것이 같은 종교 내의 사상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종교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조선 초기 己和(1376∼1433)의 儒佛會通論, 조선 후기 李圭景의 道佛 包容과 三敎合一化 노력538)尹絲淳,<李圭景 實學에 있어서의 傳統思想>(≪韓國儒學論究≫, 현암사, 1980), 297∼302쪽.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한국종교사를 관통하고 있는 한국종교의 특성을 찾는다면 바로 이러한 포용과 조화의 정신이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국의 종교들은 역사를 통하여 한국문화 건설의 주역을 담당했다. 한국사상의 폭을 넓혔으며, 한국인의 윤리·도덕심을 고양시켰고, 찬란한 예술품을 남겼다. 또 민족의 활로를 모색하는 데도 앞장을 섰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종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종교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들 가운데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조선총독부가 제정한<經學院規定>이나<寺刹令>이 남긴 상처를 치료하여 자기 재생능력을 회복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가 다시 한번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徐永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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