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1) 신석기시대

(1)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에는 빗살무늬나 번개무늬(雷文) 등으로 장식된 토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541)金元龍,≪原始美術≫, 韓國美術全集1(同和出版公社, 1974), 圖 11∼21 참조. 그런데 이러한 토기의 문양들은 한결같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띠고 있다. 빗살무늬 같은 것이 기하학적인 문양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늬의 형태로 보아 어쩌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자리잡아 살던 강가나 바닷가의 물결을 단순하게 형상화한 것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문양이 비사실적으로 추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양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심심풀이로 장식을 위해서만 시문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명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리고 무엇인가의 형상을 참고해서 시문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를 비롯한 토기의 문양들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그 표현이 너무나 추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가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를 비롯한 문양들은 기하학적, 추상적, 상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을 위시한 중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들에는 구연부에는 點列文을, 기복부나 기저부에는 빗살무늬나 어골문을 기면 전체에 걸쳐 시문하는 경향을 초기에는 띠었으나 점차 문양이 생략되다가 후기에는 구연부에만 문양이 남게되는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542)임효재,≪한국신석기문화≫(집문당, 2000), 53∼94쪽 참조. 말하자면 초기의 空間充塡式으로부터 기면의 여백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화하였음이 주목된다. 이는 중부지방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여백의 미나 여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쨌든 그릇 전면을 문양으로 빼곡이 채워 넣는 공간충전식 시문으로부터 생략을 통해 여백의 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했던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구연부에 점열문만을 남기고 기복부나 기저부에 전혀 문양을 넣지 않는 경향이 함경도와 강원도 지방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가 아닌 초기부터 이루어졌음이 주목된다. 함경도 웅기군,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강원도 춘천시 교동 등지에서 출토된 이른바 아가리무늬토기들이 그 좋은 예들이다.543)金元龍, 앞의 책(1974), 圖 17∼19 참조. 이들 토기들은 구연부에만 점열문을 지니고 있을 뿐 기복부와 기저부에는 아무런 문양도 지니고 있지 않은 점에서 중부지역의 후기 빗살무늬토기와 상통한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와 시문상의 공통점은 앞으로 고고학이 풀어야 할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중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들이 밑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데 비하여 함경도와 강원도 지역의 토기들은 바닥이 평평하여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이 주목된다. 즉 이미 신석기시대에 지역간의 문화적 차이가 형성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으로 볼 수 있는 점도 주목된다. 즉 신석기시대의 토기들은 형태 면에서 한결같이 곡선적 형태의 조형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좌우 윤곽선이 늘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 원만하고 부드럽고 여유로운 느낌을 자아낸다.544)金元龍, 위의 책, 圖 12·14 참조. 이러한 점은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 토기의 영향을 받은 일본 죠몬(繩文) 시대 토기들의 직선적 윤곽선들이 보여 주는 날카로움과 많은 차이를 보여 준다.545)일례로 異條斜繩文尖底土器를 보면 좌우 윤곽이 직선에 가깝고 바닥은 뾰족하다(齋藤 忠,≪原始美術≫, 東京:小學館, 1972, 圖 2 참조). 이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우리 나라와 일본사이에는 현저한 미의식의 차이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신석기시대의 우리 나라의 미술은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표현과 함께 곡선적 형태미를 중시하는 경향을 형성하였고, 지역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으며, 한민족과 일본민족 사이에는 각기 다른 형태미를 추구하는 미의식의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음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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