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청동기시대

(2) 청동기시대

 신석기시대의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경향은 청동기시대로 이어졌음이 분명하다. 이 점은 청동기시대의 청동 거울 뒷면의 문양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비록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 등의 전형적인 토기들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문양들이 보이지 않지만 청동거울 등에는 계승이 되었던 것이다.

 즉 청동기시대 거울의 뒷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한결같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며 상징적일 뿐 어떤 사실적, 具象的 표현과는 무관하다.546)金元龍, 앞의 책(1974), 圖 101∼113 참조. 이는 즉 청동기시대의 미술의 기본은 신석기시대 문화의 전통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며 형성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미술과 문화는 숭실대박물관 소장의 多鈕細文鏡의 모양에서 보듯이 신석기시대보다 현저하게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547)金元龍, 위의 책, 圖 103∼104 참조. 1만 3,300여 개의 가는 세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 등으로 이루어진 이 다뉴세문경의 모양은 지극히 가늘고 정교한 선들로 짜여져 있다.548)3선과 동심원의 숫자는 과학사의 개척자인 전상운박사의 설명에 따른 것임. 4명의 전공자들이 나누어서 계산하였으며 스크린에 확대해서 실시하였다고 함(≪한겨레21≫312, 2000. 6. 15, 100∼101쪽 참조). 수많은 삼각형이나 동심원들로 이루어진 문양들은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것이어서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청동기시대의 과학기술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의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경향의 미술을 계승하여 고도로 발전시켰음을 보여 준다.

 청동기시대의 미술과 관련하여 또 한가지 주목을 요하는 점은 이러한 추상적 경향과 함께 어느 정도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경향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農耕文靑銅器와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있는 動物文肩甲, 그리고 몇몇 조각작품들은 그 좋은 증거가 된다.549)金元龍, 앞의 책(1974), 圖 82∼83·94·118∼120 참조. 농경문청동기에는 앞면에 Y자 형의 나뭇가지에 새가 한 마리씩 앉아서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 뒷면에는 따비로 밭을 갈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春耕 장면과 망이 씌워진 그릇에 곡식을 담고 있는 秋收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550)농경문청동기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은 韓炳三,<先史時代 農耕文靑銅器에 대하여>(≪考古美術≫112, 1971. 12), 2∼13쪽 참조. 솟대를 상징하는 Y자형의 나무와 새들, 춘경과 추수의 장면이 극도로 간결하면서도 요점적으로 압축, 표현된 것이 괄목할 만하다. 인물들의 이목구비 등은 대담하게 생략되어 있으나 신체적 특징과 행위 등은 분명히 드러나도록 표현되어 있다. 따비로 밭을 갈고 있는 남성의 상징을 드러낸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처럼 농경문청동기의 문양들은 半抽象化되고 상징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반면에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순수한 기하학적인 표현과 현저한 대조를 보여 준다. 이러한 표현은 호랑이와 화살을 맞은 사슴을 묘사한 동물문경갑에서도 마찬가지로 엿보인다.551)金元龍, 앞의 책(1974), 圖 94.
安輝濬,≪韓國繪畫史≫(一志社, 1980), 9∼11쪽 참조.

 이상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청동기 시대에는 다뉴세문경에서 보듯이 신석기시대 이래의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 경향의 미술과 농경문청동기에서 간취되는 바와 같이 새로이 등장한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경향의 미술이 병존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준다. 전자는 신석기시대 문화의 계승으로, 후자는 청동기시대의 새로운 경향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들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미술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對稱性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다. 즉 대칭의 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음이 이 시대의 磨製石劍들에 의해서 확인된다. 경상남도 창원 진동리, 경상남도 김해 무계리, 전라남도 여천 봉례동 등지에서 출토된 마제석검들을 보면 돌이 지닌 문양을 살려서 대칭을 이루도록 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552)안휘준, 앞의 책(2000), 35∼36쪽 참조. 돌을 갈아서 칼을 만드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돌이 지니고 있는 문양이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배려하여 제작한 것은 그만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대칭의 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음을 말해 준다. 이는 매우 특기할만한 일이다.

 청동기시대에는 이밖에도 신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곡선의 미도 추구되었음이 이 시대의 각종 토기들이나 蛤刃의 마제석부 등에서 엿보인다.

 이상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청동기 시대의 미술에서는 추상적 경향과 사실적 경향의 병존, 대칭의 미와 곡선의 미에 대한 집착이 두드러진 양상을 띠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원삼국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의 미술로 이어져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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