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5. 미술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1) 고구려

(1) 고구려

 삼국시대의 나라들 중에서 제일 먼저 중국이나 서역 등지로부터 외래의 미술을 수용하여 국제적 보편성과 독자적 특수성(혹은 특성)을 함께 발전시키고 백제·신라·가야·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미술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고구려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미술은 가장 먼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고구려의 미술은 대체로 힘차고 動的이며 긴장감이 강한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사람에 비유한다면 武士的 기질이 두드러진 미술이라 할 수 있다.555)安輝濬,<韓國의 繪畫와 美意識>(≪韓國繪畫의 傳統≫, 文藝出版社, 1988), 57∼62쪽 참조. 이러한 특성은 무용총의 수렵도에서 보듯이 5세기경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通溝四神塚, 眞坡里 1號墳, 진파리출토 透刻三足烏·龍鳳文金銅冠形裝飾 등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6세기를 거쳐 7세기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 미술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5세기의 대표작으로 무용총의 현실 서벽에 그려진 수렵도를 꼽을 수 있다.556)金元龍,≪壁畫≫, 韓國美術全集 4(同和出版公社, 1974), 圖 52·56.
인휘준,≪한국회화의 이해≫(시공사, 2000), 112∼114쪽 참조.
산과 산 사이의 넓은 들판에서 호랑이, 사슴 등의 야생 동물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은 생명을 놓고 쫓고 쫓기는 절박한 박진감과 세찬 운동감이 화면 전체에 넘쳐 흐른다. 심지어 굵고 가는 波狀의 납작한 線들조차 율동적이어서 운동감과 박진감을 한층 제고시켜 준다. 이러한 수렵도의 연원은 중국 漢代 金錯狩獵文銅筒의 문양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557)金元龍·安輝濬,≪新版 韓國美術史≫, 54쪽 및 378쪽의 圖 2-12, 2-13.
Kadokawa Shoten, A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Oriental Arts:Korea (New York:Crown Publishers, Inc., 1969), Pl. 1 참조.
고구려의 이 수렵도에서 운동감·율동성·박진감이 극대화되었다. 이는 잦은 전쟁과 정례적인 수렵행사를 치르던 고구려의 尙武的 기질을 너무도 잘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수렵장면이 덕흥리고분·약수리고분·장천1호분 등 5세기 고분들의 벽화에 종종 그려졌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558)안휘준,≪한국회화사 연구≫(시공사, 2000), 75∼81쪽 참조.

 고구려 미술의 이러한 특성은 진파리 1호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북벽의 그림인<현무·수목도>에서 飛雲과 연화문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날고 있는 모습은 너무도 율동적이고 음악적이다.559)金元龍,≪壁畫≫, 圖 95 참조. 마치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추어 크고 빠른 속도로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특성은 진파리 7호분 출토의 공예품인 투각삼족오·용봉문금동관형장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560)金元龍·安輝濬,≪新版 韓國美術史≫, 64·338쪽의 圖 2-35 참조. 중앙에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 달린 까마귀(三足烏)의 日象文을 중심으로 봉황과 용문양을 상하에 배치하여 도안화한 이 작품의 모든 부분은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어서 강한 운동감과 율동성을 느끼게 한다. 마치 진파리 1호분의 벽화와 쌍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단순히 출토지가 같은 진파리이어서 만이 아니라 고구려 후기 미술의 특성이 벽화와 금속공예에서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고구려 미술이 운동감이나 율동성과 함께 힘의 표현을 지극히 중시하였다는 사실은 통구사신총의<현무도>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561)金元龍,≪壁畫≫, 圖 80 참조. 거북이와 그것을 휘감고 있는 뱀의 꼬이고 뒤틀린 몸, 머리를 마주하고 겨루는 듯한 두 동물들의 격렬한 동작과 첨예한 긴장감, 그에 따라서 물결이 튀듯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구름무늬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폭발할 듯 세차고 힘차며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마도 이 장면만큼 힘과 박진감을 중시하던 고구려 후기 미술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강서대묘의<현무도>로부터 한층 더 고구려화된 것이라고 믿어진다.562)金元龍, 위의 책, 圖 72 참조. 이처럼 고구려는 힘, 운동감과 율동감, 박진감과 긴장감을 중시하는 미술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특성은 늦어도 5세기경에는 이미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6세기를 거쳐 7세기에 이르러서는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 미술의 이러한 특성이 형성되게 된 데에는 한족 및 북방민족들과의 끊임없는 대결, 산이 많은 지리적 환경, 혹독한 추위 등 기후적 요건, 중국 및 서역문화와의 교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또는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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