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5. 미술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3) 신라

(3) 신라

 신라 미술의 특성과 함께 고구려 미술로부터 받은 영향을 동시에 보여 주는 작품으로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를 빼놓을 수 없다.566)文化財管理局,≪天馬塚 發掘報告書≫(光明出版社, 1975), 圖 1 참조. 자작나무 껍질을 누벼서 화면으로 사고 당초문대로 테를 두른 후 달리는 천마(혹은 일각수)를 중앙에 묘사한 이 작품은 말다래(障泥)로 판단된다.567)천마도에 그려진 동물은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나 一角獸라는 설도 제기되어 있다(李在重,<三國時代 古墳美術에 나타나는 麒麟>,≪美術史學硏究≫203, 1994. 9, 21∼24쪽 참조). 갈퀴와 꼬리털이 수평을 이루고 있고 혀를 길게 빼고 있어서 세차게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나 발은 터덜터덜 걷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 그림을 그린 화공의 솜씨가 모자라서인지 아니면 속도 표현에 대한 신라인들의 인식 차이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수평을 이룬 갈퀴나 꼬리털을 포함한 몸체의 표현을 보면 고구려 덕흥리벽화고분과 무용총 등에 표현된 달리는 천마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함을 부인할 수 없다.568)안휘준,≪한국회화사 연구≫, 109∼111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의 표현은 고구려의 천마도들에 비하여 매우 미흡한 느낌을 준다. 이는 속단일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신라인들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적어도 動勢나 율동감의 표현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실제로 신라의 다른 어떤 미술 작품에서도 고구려적인 빠른 동세나 율동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신라의 미술이 전반적으로 靜謐한 느낌을 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신라 미술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는 금관·금귀걸이 등 금속공예와 토기라고 할 수 있다. 신라는 금속공예와 토기 분야에서 삼국 중 가장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속공예와 토기는 각기 상반되는 특성을 드러낸다.

 금속공예 중에서도 금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금관·귀걸이·목걸이·팔찌·반지 등 장신구가 대표적인데 이것들은 한결같이 대단히 화려하고 지극히 정교하여 허술한 구석이 거의 없다.569)韓炳三,≪古墳金屬≫, 國寶 1(藝耕産業社, 1983), 圖 1∼3, 8∼11, 24∼26, 33∼40, 58∼60, 65∼67, 70∼74, 88∼90, 98∼100 참조. 특히 가는 금실을 짧게 잘라서 열을 가하여 붙이는 鏤金法으로 장식된 太鐶耳飾 같은 금공예품들은 거의 완벽한 기술과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570)韓炳三, 위의 책, 圖 98·100 참조. 즉 고도의 세련미를 드러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라의 동시대 토기들은 잘 만들어진 것들과 함께 형태가 삐뚤어진 것이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들이 혼재한다. 이러한 경향은 김원룡의 지적처럼 “완전한 것에 대한 무관심, 무집착”, “철저한 무작위”, “세부에 대한 무집착 또는 소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토기는 “고신라 미술의 소박하고 고졸하고 완고한 흙냄새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571)金元龍,≪韓國美의 探究≫(1996 개정판), 21쪽 참조.

 신라의 미술에서는 이와 같이 금속공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지극히 화려하고 정교한 ‘세련미’와 토기가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소박미’가 대조를 보인다.572)신라 미술의 소박미에 관해서는 미술사가는 아니지만 조지훈에 의해 거론된 바 있다.
趙芝熏,≪韓國文化史序說≫(探求堂, 1964), 132∼153쪽.
權寧弼,<韓國傳統美術의 美學的 課題>, 85쪽 참조.
이러한 신라 미술의 2중성은 고구려나 백제와 비교하여 특히 두드러진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의 토기에는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삼각형무늬 등 線刻의 기하학적·추상적·상징적인 문양들이 시문되어 있어 선사시대와의 연관성을 엿보게 한다.

 신라의 미술에서는 어딘지 정밀하고 사변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고구려의 무사적, 백제의 도사적인 경우와 달리 哲人的 느낌을 자아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미술의 다양한 측면은 가야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언하면 가야의 미술은 신라와 친연성이 강하다고 하겠다. 가야 미술의 특성도 마땅히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나 가야가 단일 국가가 아니었던 관계로 나라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고, 6세기(562년)에 신라에 통합되었으며, 아직 연구가 부족한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어떤 책임 있는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이처럼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의 국가들이 같은 한민족에 의해 세워지고 같은 한반도를 무대로 거의 같은 시기에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다른 특성을 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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