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Ⅰ. 구석기문화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2) 비교와 문제점

(2) 비교와 문제점

 중국과 한반도의 전기 구석기, 즉 중부 홍적세와 상부 홍적세의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있어서 문화상은 커다란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화북과 산서지역에서는 하부 홍적세에 이미 고인류의 거주가 있었음이 확인되어 한반도보다는 훨씬 오래된 셈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에는 석기들이 2차가공이 두드러지지 않고 정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석기들이 일반적이며 이러한 석기들은 아직은 불확실한 원인에 의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이러한 석기공작의 일반적인 양상에 대하여 설명은 과거에는 인종적인 차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271)Movius, H. L. Jr., Early Man and Pleistocene stratigraphy in Southern and eastern Asia, Papers of the Peabody Museum of American Archaeology and Ethnology 19-3, Harvard Univ. Cambridge, U.S.A., 1944. 근래에는 이 지역에 흔히 자라는 대나무가 주요한 도구재료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272)Hutterer, K. L., Reinterpreting the Southeast Asia Paleolithic, In Sunda and Sahule, ed. by J. Allen, J. Golson and R. Jones, Academic Press, London, 1977, pp. 31∼71. 그러나 중국 북부지역과 한반도의 중북부지역은 대나무가 그리 흔하지 못한 점에서 이 설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석기가공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석기공작에 있어서 많은 에너지 투여를 할 수 없는 생태학적인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역은 비교적 고위도의 온대지방으로 고인류의 주요한 음식원이었으리라 짐작되는 나무열매나 과일들이 작아서 많은 노동력의 투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충분한 식량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일년 중의 많은 시간들은 식량자원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석기들이 최소한의 기능이 충족되는 선에서 만족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주먹도끼에 대해서 아직도 논란이 많은데, 현재까지의 증거로 보아 이 지역에서 다량의 세련된 주먹도끼가 출현하는 유적을 볼 수는 없다. 전곡리주먹도끼의 출현과 그 해석에 영향을 받은 일단의 중국고고학자들은 중국에서 출토된 대형석기군 중에서 이른바 「대형첨상기」로 불러오던 석기들이 주먹도끼문화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273)Huang, Weiwen(黃慰文), 앞의 글.
―――, Bifaces in China, J. of Human Evolution 4-1, 1989, pp. 87∼93.
―――, The Early Paleolithic of China, Quarternary Reserach 28-4, pp. 237∼242.
대형첨상기라고 불리는 석기들은 형태상으로나 제작기법상으로 전곡리의 주먹도끼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빈도가 높고 제작이 비교적 정선된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주먹도끼류의 석기형태의 여러 유형이 출토되었다는 점들이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먹도끼류의 석기들 중에는 중국지역에서는 하나도 발견된 적이 없는 박편에 제작한 가로날도끼(박편도끼)가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차이라고 하겠다. 중국 남부의 백색유적이나 산서성의 유적들이 연대가 불확실한데 정촌의 대형첨상기가 대략 중부 홍적세의 후반에 해당되고 전곡리의 연대도 중부 홍적세의 말엽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때 이러한 석기들이 두드러지게 발달한 것은 중부 홍적세의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 대형첨상기 또는 전곡리형석기의 존재는 이 지역에 호모 사피엔스의 확산과 연관지어 추측할 수도 있다.

 중기 구석기에 해당되는 유적은 중국과 한반도의 편년체계가 달라 비교가 용이하지는 않다. 중국에서는 20만년 전 전후에서부터 약 4만년 내지 5만년 전까지의 시기에 속하는 석기공작들을 모두 중기 구석기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구석기의 일반적인 편년과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편년체계는 아마도 중국학자들이 주구점 제1지점의 문화층 이후의 문화를 중기 구석기로 설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원래 연대측정이 불가능한 시기에 중기 구석기로 편년된 것이 연대가 올라감에 따라 중기 구석기편년이 전반적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 아닌가도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기 구석기공작이 전기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 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왜 이러한 석기문화의 정체성이 지속되었던가에 대한 설명은 아직 불가능하다. 아마도 뚜렷한 환경변화, 즉 석기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석기문화의 양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고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설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만일 현재 많은 인류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고인류가 진화되는 과정이 새로운 인류집단에 의해 대치되어 가는 것이라면, 왜 새로운 석기문화가 도입되지 않았던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석기공작에서 보이는 정체성을 환경에 적응하는 특성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구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지역에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의 분포는 훨씬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문화적으로도 석인석기들로 대표될 수 있어서 뚜렷한 문화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후기 구석기문화는 남방지역과 북방지역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남방지역에서는 석재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석인기법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포상 특징은 분명히 도구의 사용빈도와 도구의 의존도에 있어서 차이나는 것이며, 이는 곧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북방지역에서는 살라우수동물군에서 보듯이 초원성 식생이 확장되었으며, 이러한 초원환경에 적응하면서 보다 정교한 도구의 제작이 요구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곧 대형동물군을 사냥하기 위하여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남방지역에서는 아직 열대 또는 아열대성 식생이 분포하고 있고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특별히 도구의 정교함이 요구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후기 구석기의 석인문화는 아마도 중국의 동북지방의 초원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동물의 이동을 따라서 한반도의 서북지방에 들어와서 점진적으로 남하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까지 한반도에 후기 구석기유적의 수효가 많지 않아 그 비교연구가 용이하지 않다. 그런데 북한지역에 후기 구석기문화가 많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유적이 없다기보다는 조사가 미진한 탓으로 보인다. 앞으로 서북지방의 강유역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에 문화양상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북방의 문화는 후기 구석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 가면 보다 작은 석인을 만드는 세석인문화로 바뀌게 되는데, 이 세석인전통은 사천지방에서부터 흑룡강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가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석기제작기법은 후빙기에도 당분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한반도내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세석인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아마도 조만간 연대측정에 획기적일 자료가 예견되기는 하지만 아직은 연대추정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석인문화가 후기 구석기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당시의 경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공반된 바가 없고 유적의 입지도 후기 구석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도 않다.

 전반적으로 한반도의 구석기문화가 중국의 구석기와 관련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이지만, 아직도 각 시기별로 석기공작을 비교하는 데는 자료의 편중이 심하며 두 지역간 연구전통의 차이도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학문적 교류에 의해서 이러한 연구방법상의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에서 고인류 서식의 시작과 진화과정이 중국의 북부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앞으로의 연구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裵基同>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