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Ⅰ. 구석기문화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2) 일본
  • (4) 후기 구석기시대

(4) 후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인 3만 5천년 전쯤부터 일본열도에는 새로운 구석기문화가 시작된다. 이 때 간토(關東)지방 臺地의 최하층에 퇴적되어 있는 염토를 다치카와(立川) Loam층이라 하며 이 화산층 속에서 석기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미야기현의 무사시노(武藏野)대의 롬층은 약 4m의 두께이며 그 사이에 20개 정도의 문화층이 위와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32,000∼10,000BP에 퇴적된 것이었다. 20개 정도의 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들은 4시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제1기는 32,000∼20,000BP로서 자갈돌을 이용하여 좀 거칠게 돌날·자르개·주먹도끼 등을 만들었고, 제2기는 20,000∼13,000BP로서 돌날석기가 많으며 자르개·찌르개·밀개·새기개 등이 많고, 제3기는 13,000∼12,000BP로서 좀돌날, 좀돌날몸돌이 나오는 좀돌날석기가 많으며, 제4기는 12,000BP 이후로서 양면에 잔손질을 베푼 찌르개가 가끔 토기와 같이 나오는 시기로 신석기시대 초기와 연결되는 문화층이다. 이와 같은 사실 중 제1기에 나타난 문화양상으로 특이한 점은 돌날떼기수법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중기 구석기시대에는 돌날떼기수법이 전혀 없었는데 제1기에 와서 돌날수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후기 구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야마나시(山梨)현 츠루(都留)시 입빠이구보(一杯燕)유적은 31,870BP 전후라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가 나왔는데 그 곳에서도 긴돌날격지가 출토됐고, 나가사키(長崎)현 후쿠이(福井)동굴(<그림 3>) 15층의 석기들은 31,900BP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가 나왔다. 이렇게 보면 32,000BP 무렵의 일본에는 긴돌날격지를 떼어내는 수법이 나타나기 시작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중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에아이천 유역의 자자라기·바바단유적의 4만년 전쯤 되는 문화층에서 나온 석기 중에는 긴돌날격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사실은 일본열도에 긴돌날격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새로이 등장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그들에 의해서 후기 구석기문화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280)加藤晋平,<中國北部の後期舊石器文化>(≪季刊考古學≫29, 1989). 이 후기 구석기문화의 담당자들은 슬기슬기사람(Homo Sapiens Sapiens)으로서 중기 구석기시대의 슬기사람(Homo Sapiens)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기 구석기시대와는 달리 새로운 후기 구석기문화의 등장을 알려주는 긴돌날격지문화는 우리 나라의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와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긴돌날격지 제작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본 전역에 파급되었다고 본다.281)최복규,<구석기문화의 비교Ⅰ(동북아와의 비교)>(≪韓國史論≫12, 國史編纂委員會, 1983), 302∼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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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후쿠이유적의 석기(①∼③ 제7층, ④∼⑭ 제4층)
<그림 3>후쿠이유적의 석기(①∼③ 제7층, ④∼⑭ 제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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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열도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은 그 전시대보다 월등히 많으며 북으로 사할린, 홋카이도부터 남으로 규슈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유적에서는 긴돌날격지와 함께 나이프형의 자르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홋카이도의 시라타키(白瀧)(<그림 4>)·다치카와(立川)(<그림 5>)·다루기시(樽岸)·도코로가와(常呂川)유역·슈쿠바이산카쿠야마(祝梅三角山), 아오모리(靑森)현 오오다이야마모토(大平山元), 동북지방의 가나야츠바라(金谷原)·요코미치(橫道)·히가시야마(東山)·스기쿠보(杉久保) 카쿠니야마(角二山)(<그림 6>)·유미하리타이라(弓張平), 관동지방의 우에노(上野)·스나가와(砂川)·오츠코시(打越), 토쿄근처의 모로(茂呂)(<그림 7>)·노가와(野川)·스즈키(鈴木), 치바(千葉)현의 키카리도우케(木刈), 카나가와(神奈川)현의 츠키미노(月見野), 나가노(長野)현의 우에노다이라(上ノ平), 시즈오카(靜岡)현의 테라타니(寺谷)·아시타카야마(愛鷹山), 오오사카(大阪)의 군게이마시로(郡家今城), 나라(奈良)현의 니죠산호쿠로쿠(二上山北麓), 가가와(香川)현의 이시마(井島), 규슈 사가(佐賀)현의 다쿠(多久)·하루(原), 나가사키(長崎)현 햐츠카다이(百花台)·히노타케(日ノ岳)·나카야마(中山)·센부쿠지(泉福寺)동굴, 오이타(大分)현 오오노가와(大野川)유역, 구마모토(熊本)현 시몬죠(下城)유적 등으로 대부분 나이프형 자르개가 출토되고 있다.282)戶澤充則·安蒜政雄,≪探訪先土器の遺跡≫(有斐閣, 1983), 1∼494쪽. 이와 같은 나이프형 자르개는 석장리·수양개·상무룡리 등의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도 출토되며, 일본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창끝모양의 찌르개는 수양개·상무룡리와 홍천 하화계리의 중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중석기시대를 거쳐 초기 신석기시대까지 나타나고 있는 좀돌날몸돌(細石刃石核 : micro blade core), 좀돌날(細石刃 : micro blade)들은 10,000BP를 전후하여 나타나는데 일본열도의 전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283)이동주,<환동해지역의 구석기시대 말-신석기시대 초기의 문화교류 양상에 대하여>(≪동아시아 구석기문화연구의 제문제≫-제8회 한국고대학회 학술발표회 발표요지-, 1995), 35∼72쪽. 한반도에서는 홍천 하화계리의 중석기시대 유적을 1991년과 1995년 2차에 걸쳐 발굴한 결과 좀돌날몸돌 40점, 3cm 미만의 좀돌날 4천여 점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도 석장리 최상층에서 돌날 20여 점, 전남 승주군 송광면 신평리 금평유적 돌날 29점, 우산리 곡천유적이나 경남 거창 임불리유적에서 몇 점이 있으나 하화계리와 비교하면 수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일본열도에서는 홋카이도의 시라타키·오케도·다치카와, 혼슈의 오오다이야마모토·요넨아모리·카쿠니야마·스즈키·키카리도우케·우시로노(後野)(<그림 8>)·테라오(寺尾)·카미야마(神山)·수구사카(直坂)·야데가와(矢出川)·야스미바(休場)(<그림 9>), 오카야마(岡山)현의 와시유우산(鷲羽山)·이시마, 후쿠오카(福岡)현의 몬덴(門田)·하루·햐츠카다이, 미야자키(宮崎)현의 후나노(船野)유적 등에서 좀돌날몸돌과 좀돌날이 출토되었는데 그 밖에도 몇 백개의 유적이 더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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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시라타키유적의 석기
<그림 4>시라타키유적의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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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다치카와 유적의 석기
<그림 5>다치카와 유적의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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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카쿠니야마유적의 석기
<그림 6>카쿠니야마유적의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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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모로유적의 석기
<그림 7>모로유적의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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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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