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Ⅰ. 구석기문화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3) 시베리아
  • (4) 후기 구석기시대

(4) 후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은 그 이전 시대보다 많이 발견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까지 살던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고 또 시베리아 이남지역에 살던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의 인류가 빙하의 북상을 따라 생활지역을 확대하여 감에 따라 남겨 놓은 유적이 최근 속속 발견되었다.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후기 구석기문화가 우랄산맥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발전된 후에 알타이산맥을 넘어 예니세이강과 안가라강 지역에 이르게 되고 몽고·중국·한국 등지로 전파되었다고 하였으나 현재는 시베리아·중국·한국·일본에서도 중기 구석기문화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 사실로 보아 동북아시아지역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이 곳의 후기 구석기사람들은 추운 기후를 견디기 위하여 불을 많이 사용하였음이 예니세이강변의 Zabochka와 Makarovo, 안가라강변의 Koba, 캄챠카반도의 우슈키유적에서 불땐자리가 명확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입증되었다. Buret유적에서 발견된 여인상이 동물털가죽옷을 입은 모습이었음을 보아 당시 동물가죽으로 두툼한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겠고, 집은 동물의 뼈와 가죽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고 본다.

 시베리아에 전·중기 구석기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 입증되고 있으나 빙하기의 내습으로 이 지역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른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많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후기 구석기시대 때 이 지역에 살던 동물은 한대성동물로서 맘모스·북극여우·나그네쥐·사향노루·순록·백곰 등이었을 것이며 식물들은 툰드라지역에 살 수 있는 것이나 특히 일부 지역에는 침엽수림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상태는 최근까지 북극지역·그린랜드·알라스카에 살던 야쿠드·에스키모족과 비슷하여 땅 밑에 움집을 만들고, 기둥은 맘모스의 뼈나 상아를 이용하여 원추모양을 하였고 지붕은 동물가죽으로 덮고 둘레에는 맘모스나 잡아 먹은 짐승의 무거운 뼈로 눌러 강한 바람을 막았던 것으로 발굴에 의하여 증명되었다.291)Dikov, N. M., The Discovery of the Paleolithic in Kamchatka are the Problem of the Initial Occupation of America, Arctic Anthropology 5-1, 1968, pp.191∼203.

 시베리아의 후기 구석기시대를 제1기 50,000∼35,000BP, 제2기를 35,000∼22,000BP, 제3기를 22,000BP로 구분하고 있다. 데니소바동굴과 카라봄유적의 5·6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들이 무스테리안형식에서 후기 구석기시대로 발전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석기제작 솜씨는 격지를 네모꼴·조가비꼴·긴네모꼴의 모습으로 떼내는 것으로 르발르와수법이며, 종류는 르발르와 무스테리안식 찌르개·긁개·새기개·뚜르개·톱니날·홈날 등이었다. 이러한 제작수법은 중기 구석기시대 말기의 석기제작 솜씨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단계로 넘어가는 솜씨가 함께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카라봄유적에서는 3개의 석층이 확인되었으며 맨 위의 석층에서 6개의 문화층이 발굴되었으며 제6층은 43,300±1,600BP, 제5층은 34,180±640BP, 제4층은 33,780BP, 제3층은 33,780±570BP, 제2층은 30,990±460BP, 제1층은 38,080±910BP의 절대연대가 밝혀졌다.

 맨 위층에 해당하는 제1층과 제2층의 절대연대가 뒤바뀐 것과 같은 모순이 발견되나 그 이하의 것은 자연퇴적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제1층에서는 석기제작의 기술과정으로 보아 이미 돌날수법과 돌날몸돌이 나타나고 있다. 새기개와 긁개의 수량도 대폭 증가하여 후기 구석기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돌날떼기수법은 데니소바동굴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의 출토유물들과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유적의 발견으로 알타이지역의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는 50,000∼35,000BP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시베리아의 남부지역에서도 수백 곳의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석기제작장소와 집자리 및 동굴생활 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문화상으로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특수성은 시베리아 남부지역의 자연환경에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적응해 가는 과정중에 변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후기 구석기시대의 시베리아거주인들이 인접지역은 물론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이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지역에 이주해 온 인류나 문화는 그 곳에 맞는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대체로 시베리아의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문화전통이 몇 가지 있음을 각 유적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의 것은 카라봄의 석기들로서 40,000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떼낸 수법은 큰돌날몸돌에서 큰돌날을 떼내어 자르개로 만든 것이 있었다. 이렇게 돌날떼기수법으로 만들어진 긴 격지들은 여러 가지 섬세한 연모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에는 알타이지역의 Maloyaloman동굴 등의 유적이 있으며 말로얄로만동굴유적의 연대는 33,350±1,450BP로, Khakasia지방의 Malays Siya집자리유적은 34,500±450BP, Buryatia지방의 Vavarina Gora유적은 30,600±500이나 27,210±300BP에 해당된다.

 시베리아 후기 구석기문화의 대표적인 것으로 Lena강의 마카로보Ⅰ·Ⅱ유적은 1941년과 1969년에 발굴되었다. 이 마카로보Ⅰ·Ⅱ유적이 후기 구석기시대인 30,000∼40,000BP에 해당한다.

 그 밖의 안가라강의 지류인 Belaya강 왼쪽에서 1928년에 발견된 말타유적은 오클라드니코프가 24,000BP경으로 보고 있는 곳이다. 말타유적에서 움집자리가 발굴되었는데 맘모스의 상아와 머리뼈, 뿔소 또는 순록의 뿔을 이용한 것으로 4채였다. 1929년 발굴에서 맘모스의 상아로 만든 치레걸이, 뼈연모, 석기를 부장품으로 묻은 어린아이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석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수법을 사용하여 만든 것들로서 매우 정교하게 다듬었으며(<그림 5>), 뼈·뿔연모는 귀가 없는 바늘·뚜르개·칼·창끝 등이 있었다. 뼈를 이용하여 목걸이·팔찌·단추 등의 치레걸이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유적에서 맘모스이빨로 만든 30여 개의 여인상과 15개의 새모양조각·머리띠·팔찌·목걸이·구슬 등이 발견되었는데(<그림 6>·<그림 7>) 시베리아의 다른 유적들보다 매우 많은 예술품이 출토된 것이다.292)Gerasimov, M. M., The Paleolithic Site Malta : Excavation of 1956∼1957, The Archaeology and Geomophology of Northern Asia ; Selected Works, 1964, pp. 8∼9.

 안가라강 오른쪽에 위치한 부레트유적은 1936년에 발견된 곳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부레트유적에서는 4채의 집자리를 발견하였는데 석회암의 판판한 돌과 동물뼈를 수직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흙을 발랐으며 지붕은 동물가죽으로 덮었는데 기둥은 나무와 순록의 뿔로 버티도록 하였다. 잘 남은 집은 길이 5∼6m, 너비 4m로서 기둥구멍이 12개 나왔고 문은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물은 말타유적과 비슷하며 맘모스이빨과 돌로 만든 여인상이 나왔다. 여인상 중 3개는 동물의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모습으로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말타와 부레트유적의 유사한 점은 집의 생김새에서 나타나며 집의 규모도 비슷하다. 이러한 두 유적의 집 모습은 베링해 연안에 사는 Chukot-Eskimo사람들의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생활상의 유사성은 시베리아 일대의 후기 구석기 사람들이 옮아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293)Okladnikov, A. P., The Soviet Far East in Antiquity An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Study of the maritime Region of the U.S.S.R, 1965, pp. 26∼34.

 레나강 오른쪽에 있는 Shishkino유적은 우리 나라의 석장리·수양개유적의 후기 구석기문화층과 비슷한 형태를 갖는 석기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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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말타유적의 석기
<그림 5>말타유적의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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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말타유적의 맘모스상 조각품
<그림 6>말타유적의 맘모스상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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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말타유적의 조각품
<그림 7>말타유적의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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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베루호렌스크유적의 구석기
<그림 8>베루호렌스크유적의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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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수키노유적의 석기들은 대부분 후기 구석기의 형태나 제작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유적의 강하류로 0.5㎞ 지점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그려진 암벽화가 발견되었다. 암벽화는 2.8×1.8m 크기의 야생마 2마리와 길이 1.2m 정도의 들소 1마리를 그린 것으로 담홍색 물감을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상북도 울주군 반구대의 암각화에 후기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주장되는 학설도 있는 점은 앞으로 더욱 비교연구되어야 할 문제이다.294)최복규,<구석기문화의 비교 Ⅰ(동북아와의 비교)>(≪韓國史論≫12, 國史編纂委員會, 1983), 302∼306쪽.

 레나강변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Biryulka·Khabsagay·Makarovo·Verkholensk(<그림 8>)·Chastinskaya·Nyuya유적이 있다. 예니세이강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중류지역의 Afontova·Kokorevo유적 등이 있다. 오브강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은 Ust-Kanskaia동굴·우라린카유적, 알단강변에서는 Sumnagin·Diuktai동굴유적, 세렌가강변에서는 Sanny Mys유적, 오논강변에서 Ikaral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러시아의 큰 강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295)Tadeusz, Sulimirski., Prehistoric Russia, Outline, John Baker Humanities Press, New York, 1988,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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