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3) 시기구분

가. 토기의 변천

 이제까지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 토기가 출토된 유적의 수는 약 400개소에 달한다.306)韓永熙,<新石器時代>(≪韓國考古學의 半世紀≫-제19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요지-, 1995). 이 가운데 제주도 고산리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성행하기 이전의 무늬없는 갈색토기편이 출토되어 유일하게 「고신석기」를 대변하는 유적으로 부상하였다. 이 유일한 예를 제외하고는 모두 빗살무늬계통의 토기류이다. 이들은 후빙기의 바뀐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나가기 위해 주로 강안이나 해안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동강·한강유역 및 그 인접도서, 그리고 두만강유역을 포함한 동북해안지역, 그리고 낙동강유역과 남해도서지역에 밀집·분포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거의 공백지대로 남아 있던 충청도와 남부 내륙지역에서도 적잖은 신석기시대 유적이 새로 발견되고 조사되었다. 이들 토기들은 밀집·분포되어 있는 지역을 크게 나누면, 대동강·한강 및 그 인접도서를 포함한 서해안지역군, 그리고 두만강유역을 포함한 동북해안지역군, 낙동강을 포함한 남해안지역군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 3개 지역군 사이에는 토기형태에 현저한 차이가 보인다.

가) 서한토기

 먼저 서해안유역 토기의 기형은 직립구연부에 뾰족밑바닥으로 이어지는 포탄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토기의 태토에는 운모가 혼입된 경우가 많으며, 석면·활석을 혼입한 것도 약간 있다. 토기는 이가 하나 또는 여러 개 달린 시문구로 긋거나 눌러서 생긴 문양이 시문되었다. 문양은 토기 전면에 시문된 것과 일부 부위에만 시문된 것이 있다. 이들은 북으로는 청천강에서 남으로는 한강 및 인접도서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장기간 그러한 특성을 지닌 채 존속하였다. 이러한 토기를 총괄하여 서한뾰족밑유형토기(약칭하여 西韓土器)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러한 서해안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서한토기에 관하여는 지난 191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때 발굴조사된 황해도 용연리유적을 시작으로 그 후 궁산리·지탑리·암사동·미사동·시도·별망·오이도 등 다수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유적이 발굴조사되었지만 서한토기 상호간의 선후관계를 알려주는 층서적 단서가 제시된 곳은 미사동 이외에는 없다. 이 지역 일대에서 발굴 또는 지표조사된 서한토기를 통관하여 볼 때, 시문면적의 축소화, 그리고 구연부위와 동체부위의 문양 구성방식 등 두 기준을 따라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단계는 토기 전체를 수평으로 3등분하여 각 부위별로 각기 다른 문양요소로 토기의 겉면 전체를 시문한 것이다. 구연부에는 평행밀집단사선문·점렬문·격자문 등이 있고, 기복부에는 주로 어골문이, 저부에는 방사선문이나 단사선문이 시문된다. 구연부문양과 기복부문양 사이의 중간 지점의 밑에 점을 찍어 만든 중호문·파상점선문이 추가된 것도 있다. 이러한 형식을 서한 Ⅰ류라 칭한다. Ⅱ단계는 서한 Ⅰ류에서 저부문양만 생략된 형식이다. 이 중에는 구연부와 기복부가 횡주어골문의 단일문양으로 시문된 형식의 토기도 있다. 이처럼 저부문양이 생략된 토기는 서한 Ⅱ류라 칭한다. Ⅲ단계는 시문면적이 더욱 축소화되어 서한 Ⅱ류토기에서 기복부문양이 생략되고 구연부에만 문양이 남는 것이다. 이를 서한 Ⅲ류라 칭한다.

나) 동한토기

 한반도 동해안지역은 주로 신석기시대 토기가 밀집·분포한 두만강 중·하류지대, 함경도 동해안 일대, 그리고 강원도 일부 포함한 지역을 가리킨다. 여기서 출토되는 토기는 기형을 보면 예외없이 납작밑인 점에 특징이 있다. 이러한 납작밑토기의 태토에는 굵은 모래알이 섞여 있으며,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조개가루를 혼입한 것이 있다. 기벽의 두께는 0.7cm 전후의 것이 많고, 토기의 색은 갈색계통이 많다. 시문은 구연부, 또는 구연부와 기복부에 국한하고 있다. 시문 방식은 음각·압날·자돌에 의한 것이 대부분인데, 민무늬도 반출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토기들은 함경도 및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장기간 그런 특성을 지닌 채 존속하였다. 이들을 일괄하여 동한납작밑유형토기(약칭하여 東韓土器)로 부르기로 한다.

 동북해안 일대의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동한토기에 관하여는 웅기 송평동을 위시하여 나진·유판·흑구봉·서포항 등의 여러 유적이 알려져 있으며, 연해주의 자이사노브카나 보이즈만유적도 동한토기문화권에 포함된다. 이 중에서도 함북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패총의 발굴에서 중요한 층서적 단서가 제시되었다. 이 층서를 기준으로 동한납작밑토기는 크게 5기로 구분된다.

 동한 Ⅰ기층토기는 찍어서 만든 단사선문으로 토기 상부에만 시문된 토기로 대표된다. 동한 Ⅱ기층토기는 소량의 민무늬토기 외에는 점·선 혹은 점과 선의 배합으로 토기 상반부에 소형어골문을 시문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문양의 구성방법은 부위별로 다른 문양요소로 결합된 것과 동일한 문양으로 전면에 시문된 것이 있다. 동한 Ⅲ기는 Ⅱ기와 유사한 토기가 많지만 새로이 타래무늬, 빗방울무늬가 있는 토기, 그리고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시문구로 압날한 것이 있다. 또한 융기문토기·마연토기 등이 출현한다. 동한 Ⅳ기는 Ⅲ기에 비해 민무늬토기의 양이 증가하고, 새로이 번개무늬나 선·점에 의한 삼각형 모양의 문양요소가 출현한다. 동한 Ⅴ기의 토기는 토기 표면의 상반부에 국한하여 어골문이 시문되어 있고, 민무늬토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서포항패총의 층서적 선후관계를 기준으로 하여 동한토기의 변천상을 짐작 할 수 있다.

다) 남한토기

 남해안지역 토기는 서해안지역이나 동해안지역과는 달리, 토기군 상호간의 특성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가 각 분기의 주체를 점하고 있는 지역적인 특성이 있다. 즉 융기문토기·압인문토기·태선어골문토기·이중구연토기 등이 각기 남해안 신석기시대 각 분기의 주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토기류를 총괄하여 남한유형토기(약칭 南韓土器)로 부르기로 한다.

 남해안 일대의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남한토기 출토유적으로는 일찍이 동삼동패총을 비롯하여 신암리·영선동 등이 알려졌으며, 최근 들어 활발해진 발굴조사로 상노대도패총·연대도패총·송도패총 등 많은 패총유적이 발굴되었는데 동삼동패총의 층서적 관계가 크게 주목된다.

 즉 남한토기를 조도기·목도기·부산기·두도기·영도기의 5기로 구분한 편년안이 제시되었는데,307)Sample, L. L., Tongsamdong:A Contribution to Korean Neolithic Culture History, Arctic Anthropology 11-2, 1994. 이것은 동삼동패총을 발굴하여 드러난 층서관계를 토대로 한 것이다. 남해안지역의 가장 이른 시기인 제Ⅰ기의 조도기에서는 원시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가, 그 다음 Ⅱ기인 목도기에서는 지두문토기가 각각 주체를 점하고 있다. 제Ⅲ기인 부산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남해안지역에 있어 태선어골문토기의 조형이라 할 수 있는 압인문토기가 출현하며, 융기문토기는 수적으로 격감된다. 제Ⅳ기인 두도기에는 태선어골문토기가 성행한다. 제Ⅴ기인 영도기에 이르면 문양은 퇴화하며 구연부 주위에 국한되어 시문된 민무늬토기가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고 새로이 이중구연토기가 출현한다.

 한편 이 지역의 편년 수립에 유용한 층서적 단서가 수가리유적에서 제시되었다. 이 유적의 층서에 의한 구분을 동삼동에서의 남한토기와 대비시켜 보면 수가리 Ⅰ기 및 Ⅱ기는 제Ⅳ기에, 그리고 수가리 Ⅲ기는 제Ⅴ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수가리 조사결과도 결국은 동삼동패총의 편년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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