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Ⅱ. 신석기문화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2) 석기와 뼈연모

(2) 석기와 뼈연모

 신석기시대의 석기와 뼈연모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는 질·양면에서 매우 빈약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토기연구에 비하면 형평을 잃은 셈이다. 더구나 당시의 실제생활을 생각해 보면 토기는 석기나 뼈연모로 식량을 확보한 뒤, 이를 담거나 조리하는데 쓴 용기에 불과한 것이므로 신석기연구가 토기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선후가 바뀐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의 경향이 이렇게 된 저간의 사정은 있다. 그것은 석기를 알아보는 데는 훈련된 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쉽게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뗀석기(打製石器)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또한 신석기는 간석기(磨製石器)라는 관점 아래 그 동안 주로 간석기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사·발굴된 결과로 보자면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에는 완전히 간석기만 사용한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도끼나 끌·대팻날 등 전형적인 간석기는 청동기시대에 가서 주류를 이루며, 신석기시대의 간석기는 화살촉을 제외한 나머지의 경우, 부분으로나 반 정도 갈고 나머지는 뗀 상태로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간석기의 출토량은 적었고 적다 보니 차지하는 비중도 빈약해 소략하게 취급되기 마련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정이 뼈연모에도 해당되는데, 뼈연모는 대부분 삭아버려 조개더미유적이 아니면 잘 남아 있지도 않았다.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주요한 생업경제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 물고기잡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도구인 낚싯바늘·작살 등 뼈연모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리하여 석기와 뼈연모는 신석기시대 도구의 하나로서 그 의미가 있을 뿐,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더욱이 석기와 뼈연모는 일단 유용한 도구로 개발되고 나면 그 모양이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뚜렷한 시기차이나 지역차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주제가 형식분류-편년이었음을 생각하면 연구의 주제면에서도 석기-뼈연모가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연구에서는 당시의 생업경제를 알아낼 수 있는 생산도구가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 아래 석기와 뼈연모를 우선적으로 다루는 편이지만, 도구의 나열이 중심이며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거나 출토유물 상호간에 시기 차이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최근에 오면서 이같은 사정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집중된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발굴이나 오산리 및 최근의 미사리발굴 등에서 보면 뗀석기·격지에 대한 보고가 매우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조개더미유적에서의 뼈연모보고가 많아지고 있다. 아직까지의 석기분류나 뼈연모연구가 짜임새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의 증가가 연구의 심화로 이어질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