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Ⅰ. 청동기문화
  • 4. 주변지역 청동기문화의 비교
  • 2) 중국
  • (2) 청동유물의 동물문양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2) 청동유물의 동물문양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동물무늬(獸形飾, Animal style)는 발해연안 및 한반도의 청동기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양이거나 장식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학계에서는 스키토-시베리아계통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고고자료에 의하여 은대에 이미 동물무늬가 대단히 유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0510)이러한 설명은 은대의 동물문양이 북유럽과 시베리아 초원지대에서 기원했다는 에케(G. Ecke)와 퀸(H. Künn)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高去尋,<殷代的一面銅鏡及其相關之問題>,≪慶祝趙元任先生六十五歲論文集≫下, 台北;中央硏究院 歷史言語硏究所集刊 29, 1958, 712쪽). 특히 은허 婦好墓의 청동기와 玉器에는 각종의 동물문양, 즉 말·개·사슴·토끼·곰·소·호랑이·양 등의 가축이나 야생동물에서 모양을 취하고 있다(<그림 7>). 비교적 특별한 문양으로는 엎드려서 고개를 돌린모양(伏臥回首狀)의 옥으로 만든 개·사슴,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돌린모양(跪臥回首狀)의 옥으로 만든 소 등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동물문양은 기원전 7세기 이후에 유행하는 이른바 스키토-시베리아동물문양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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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殷墟 婦好墓 出土 佩帶·鑲嵌玉飾 拓片
<그림 7>殷墟 婦好墓 出土 佩帶·鑲嵌玉飾 拓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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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트랜스-볼가강유역에서 은대보다 10∼7세기 후인 기원전 4∼3세기에 이르러서 野生動物紋(Animal style)이 나타났음을 인정하고 있듯이0511)阿甫社辛·陳弘法 譯,<斯基泰文化>(≪考古學參考資料≫6, 北京;科學出版社, 1983), 182쪽. 은대의 殉葬 말, 車馬器 및 말장식이 출토된 예는 매우 많다. 고고자료와 갑골문에 따르면, 이들 자료는 은민족이 기마활동에 익숙했으며 아울러 수렵도 했던 민족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0512)于省吾,<殷代的交通工具和馹傳制度>(≪東北人民大學人文科學學報≫1955-2, 長春), 92∼96쪽. 은허에서는 모두 29종의 포유동물이 출토되었고,0513)楊鍾健·劉東生,<安陽殷墟之哺乳動物群補遺>(≪考古學報≫1949-4, 北京;科學出版社), 145∼54쪽. 그 중에서 수량이 1,000개 이상인 동물은 腫面猪, 四不象鹿, 聖水牛 등 세 종류가 있다. 수량이 100개 이상인 동물로는 돼지, 노루(獐), 사슴, 殷羊, 소, 개 등이 있는데, 이 중에는 수렵으로 잡은 동물들이 많다. 10개 이상 100개 이하의 동물로는 너구리·곰·이리·호랑이·검은쥐·대나무쥐·토끼·말 등 8종이 있다. 10개 이하의 동물로는 여우·오소리곰·표범·고양이·고래·밭쥐·貘·무소·산양·丑角羊·코끼리·원숭이 등 12종이 있다. 특히 주목되는 되는 것은 이 동물들이 대부분 야생상태에서 수렵으로 잡은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은대의 武丁과 帝辛時期의 갑골문 안에도 수렵에 관한 卜辭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복사에 보이는 동물로는0514)胡厚宣,<氣候變遷與殷代氣候之檢討>(≪甲骨學商史論叢≫2-하, 成都;齊魯大學國學硏究所, 1945), 380∼390쪽. 코끼리, 외뿔들소(豪, 野牛), 面虎旨, ■(麑, 無角鹿), 사슴(鹿), ■(麋), 야생개, 집돼지, 멧돼지, 여우 등 모두 19종 2,333마리가 있었다. 그 중에서 사슴이 무정시대의 복사에는 약 472마리가 나타나고, ■는 566마리, ■는 1,179마리, 豪는 33마리, 집돼지는 110마리, 호랑이 3마리, 코끼리 2마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로써 무정시대에 수렵이 풍부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殷人은 동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민족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은대의 사회에서 왕실은 수렵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청동기와 玉器에 동물문양을 새기는 것이 대단히 유행했었는데,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은대(商代)와 西周初期의 청동기장식에 나타나는 문양이 동물무늬를 그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安陽 殷墟에서 보이는 발달된 형식의 동물무늬가 보이고 있는 사실에서0515)張光直,<商周靑銅器上的動物紋樣>(≪中國靑銅器時代≫, 台北;聯經出版公司, 1983), 356쪽. 동물무늬 장식은 먼저 은주시기에 유행하고 이어서 중원지방으로부터 중국북방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만약 그렇다면 그 전파경로는 2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수원·몽고, 심지어 시베리아에까지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북지방을 지나 발해연안·송화강유역 및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0516)李亨求, 앞의 글, 447쪽.

 은허 이외에 발해연안 북부 하북성, 요령성 일대에서도 은대 혹은 은말 주초시기의 청동기유물에서 동물문양을 찾아 볼 수 있다. 은대의 것으로는 河北省 靑龍縣 抄道溝 출토의 鹿首銅彎刀·羊首曲柄短劍, 은말 주초시기의 北京市 昌平縣 白浮村 출토의 馬首柄短劍·鷹頭柄短劍, 그리고 遼寧省 朝陽市 魏營子 출토의 羊首銅飾은 이미 유명하다.

 발해연안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요령성 영성현 남산근 102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車馬·狩獵紋骨版이다. 기원전 9∼8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골판은 2필의 말이 끄는 쌍두마차 2대가 그려져 있고, 뒷면의 마차 앞에는 2마리 새끼말이 있다. 마차는 평면으로 그려져 있는데, 마차의 형태가 마치 은허 출토 갑골문자와 같다. 전면의 마차 앞에는 큰 뿔달린 사슴 2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화살을 장진한 활을 들고 있는 인물입상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보이는 말과 마차, 그리고 수렵인물상과 사슴은 이 지방의 사회생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서주 내지 춘추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虎紋玉佩는 호랑이가 뒤틀린 몸짓을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으며, 大凌河유역의 遼寧省 凌原縣 三官甸子 석관묘에서 출토된 기원전 8∼7세기경의 청동마형조상도 뒤틀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청동호형조상은 낮은 자세를 하고 있어 漢代 호형대구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 동물의 뒤틀린 모습과 서로 싸우는 모습은 이미 은허 부호묘 출토의 옥제조각품에서 나타난 바 있는데, 우리 나라 청동기문화의 특징적인 동물문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이 확인된다.0517)李亨求,<韓國靑銅器文化의 動物紋樣의 起源에 對한 再考-日本學者 江上波夫氏에 對한 質疑->(≪于江權兌遠敎授停年紀念論叢≫, 世宗文化社, 1994), 79∼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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