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Ⅰ. 청동기문화
  • 4. 주변지역 청동기문화의 비교
  • 2) 중국
  • (3) 청동기의 성분분석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3) 청동기의 성분분석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청동기의 성분에 대해서는 최근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시정되었으나 공공전시물의 설명문에는 여전히 ‘아연 함유설’이 유포되어 있다.0518)예를 들면 국립중앙박물관 청동기시대 전시실의 ‘청동기 鑄造’에 관한 설명문에 “청동기는 일반적으로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드나 주조시 鎔融點을 내리고 주조 후의 표면처리와 마감처리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아연·납 등을 넣기도 한다. 특히 아연을 섞는 것은 우리 나라 특유의 청동합금술로서 아연은 용융시 流動性에 도움을 주어 주조를 쉽게 하고 제품이 잘 부식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 細形銅劍과 청동방울에 대한 금속학적 분석연구를 통해 우리 나라 세형동검의 원류는 오르도스(Ordos)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가깝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즉 中國 銅利器의 分析例를 보면 일부 합치하는 것도 있으나 벗어나는 것도 있어 중국의 영향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周代의 동리기의 주석(Sn)이 15%라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하고, 한편 오르도스동리기는 銅斧 3건, 단검 1건, 刀子 2건으로서 이 분석치만 보면 우리 나라의 組成과 크게 벗어나는 것도 있어서 우리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표 1>참조).0519)崔炷·金秀哲·金貞培,<韓國의 細形銅劍 및 銅鈴의 金屬學的 考察과 납 同位元素比法에 의한 原料産地 推定>(≪先史와 古代≫3, 韓國先史古代學會, 1992), 189∼213쪽. 한편 위의<표 1>은 이 글 193쪽에서 옮긴 것이다. 요컨대 우리 나라 세형동검의 원류는 화학 조성상 오르도스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자 료 Cu Sn Pb Ag Bi Ni Fe Si Mg Mn Sb As An 비 고
銅劍 Ⅰ 73.4 18.7 6.86 0.09 <0.01 0.13 0.016 - tr - 0.095 - - 傳 全南
銅劍 Ⅱ 74.0 14.4 10.6 0.13 0.03 0.17 0.053 0.17 <0.001 <0.001 0.12 - 0.003 傳 全南
銅劍 Ⅲ 71.0 13.6 15.7 <0.01 <0.01 <0.01 <0.01 - <0.0001 <0.001 <0.01 - - 傳 全南


鈴部 64.3 19.0 12.1                     傳 全南
柄部 67.7 17.4 13.30 0.11 0.03 0.16 0.04 0.11 <0.001 <0.01 0.14 <0.05 -
69.4 20.0 10.3                    

<표 1>세형동검 및 동령의 조성표

 이러한 연구가 나오기까지의 기왕의 인식은 우리 나라 청동기는 중국의 것들과 달리 아연이 포함되어 있어서 시베리아계통의 청동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들이었다. 우리 나라 청동기에 아연이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지난 1966년 북한의 원시 및 고대 청동유물의 화학성분의 분석을 통해 비롯되었다.0520)

유 적 유 물 Cu Sn Pb Zn Fe Ag 기타
① 라진 초도 치레거리 53.93 22.30 5.11 13.70 1.29 - 3.67
② 봉산 송산리 잔줄무늬거울 42.19 26.70 5.56 7.36 1.05 - -
③ 봉산 송산리 주머니도끼 40.55 18.30 7.50 24.50 1.05 - -

아연이 있다고 분석된 원시 및 고대 청동유물의 화학성분표

최상준,<우리 나라 원시시대 및 고대의 쇠붙이 유물분석>(≪고고민속≫1966-3), 43∼46쪽.
이러한 주장은 그 후 강원도 평창 선림원지 출토 신라범종의 성분분석0521)Dalan Judson, The Evolution of Modern Printing and the Discovery of Movable Metal Type by Chinese and the Koreans in the Fourteenth Century,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 Vol. 212 1931, pp.208∼234. 이 글에서 달랑은 1455년에 주조된 乙亥字의 금속성분을 조사한 결과 Cu 79.45%, Sn 13.20%, Zn 2.3%, Fe 1.88%, Pb 1.66%, Mn 0.48%로 전통적인 한국청동의 합금비율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또 金元龍은 禪林院址 出土 銅鐘의 성분이 Cu 80.1%, Sn 12.2%, Zn 2.18%, S 0.14%로서 납을 제외하면 을해자의 성분과 일치한다고 하였다(金元龍,≪韓國美術史≫, 범문사, 1968, 224쪽, 주 40). 그리고 손보기는 주조 甲寅字로 인정되는 활자를 분석하여 Cu 84%, Sn 7%, Pb 7%, Zn 1%, Fe 0.1%로 보고하였다고 한다(全相運,<韓國 靑銅活字 印刷術 發展의 技術史的 背景>,≪硏究論文集≫3, 誠信女大, 1970, 53쪽 참조).을 계기로, 마치 우리 나라 청동유물에 아연이 포함된 것처럼 인식하고 나아가 시베리아청동기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으로0522)全相運, 위의 글. 발전되어 결국은 우리 나라 청동기문화의 ‘시베리아 기원설’0523)金貞培,≪韓國民族文化의 起源≫(高麗大 出版部, 1973), 142쪽.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 나라 청동기의 ‘아연청동설’은 1983년에 처음으로 반론이 제기되었다. 즉 스키토-시베리아계통의 청동기로 볼 수 있는 수원청동기에는 아연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과, 은주청동기에는 아연이 구리·주석과 납에 이어 네번째로 소량이 검출되었으며, 그리고 아연이 포함된 청동기에 대한 분석례가 더 이상 없다는 등의 점을 들어 시베리아 기원설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0524)李亨求, 앞의 글(1983), 430∼447쪽.
―――, 앞의 글(1994).
―――,<化學分析을 通해 본 渤海沿岸 靑銅器文化의 起源問題>(≪馬韓·百濟文化≫13, 圓光大, 1993), 275∼288쪽.

 이러한 주장은 1986년에 청동유물에 대한 화학성분 분석결과에 의해 재확인되었다.0525)崔 炷 외,<옛 韓國靑銅器에 대한 小考>(≪대한금속학회지≫ 24-4, 1986), 504∼546쪽. 즉 우리 나라의 옛 청동기 9점에 대한 화학조성, 금속의 미세구조, 鉛同位元素比法으로 원료의 산지 등을 통해 청동유물에 대한 초기의 분석방법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기원전 아연의 첨가기술이 확립되었다면 후대의 청동유물(帶鉤·容器·鐙子·盒·梵鍾·佛像 등)에 주조성을 높이기 위하여 아연첨가가 기대되는 데도 모두 1% 미만인 사실과 청동에 납(鉛)을 첨가할 때 불순물로 포함되는 소량의 아연함유는 중국의 청동기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우리 나라 청동기의 특징으로 아연의 첨가를 강조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 북한에서도 비파형단검 2점, 좁은놋단검 2점, 좁은놋창 1점, 확인되지 않은 청동 4점, 그리고 잔줄무늬거울 1개 등 10점의 기원전 천년기 청동유물을 화학분석한 자료를 발표하였다(<표 2>).0526)강승남,<기원전 1000년기 후반기 우리 나라 청동야금기술의 특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 1990-4,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31∼36쪽. 한편 <표 2>는 이 글 32쪽에서 옮긴 것이다. 이에 따르면 9점의 청동기에는 아연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온성군 강안리에서 출토된 좁은놋단검만이 아연을 0.009%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잔줄무늬거울도 아연을 포함하고 있지않았다. 특히 청동유물의 성분분석을 통하여 시베리아계통 청동합금의 기본요소는 동-비소(Cu-As)와 동-석-비소(Cu-Sn-As)합금으로, 고대 우리 나라 청동합금의 기본유형인 동-석-연(Cu-Sn-Pb)합금이 적게 나타난다고 밝힌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번 호 유물이름 나온곳 시 기 화 학 조 성 (%) 화학적모형
Cu Sn Pb Zn As Bi Fe Ni Co Sb
비파형단검 신평군
선암리
천년기
전반기
86.79 6.0 7.0 - - 0.06 0.11 0.025 - 0.01 Cu-Sn-Pb
의주군 81.97 13.5 4.5 - - 0.03 - - - -
좁은놋단검 온성군
강안리
천년기
후반기
96.96 0.25 2.0 0.009 - 0.02 0.55 0.07 0.05 0.09 Cu-Pb
황주군
청룡리
78.97 8.5 11.0 - 1.2 0.07 0.01 0.035 0.025 0.19 Cu-Sn-Pb-As
  연탄군
도치리
92.64 4.0 3.1 - - 0.02 0.11 0.06 0.06 0.01 Cu-Sn-Pb
  평양시 78.39 14.30 7.31              
  75.94 15.06 9.0              
  순천시 70.94 14.84 14.22              
잔줄무늬거울 신천군
룡산리
79.7 16.0 4.0 - - 0.08 0.043 0.04 - 0.15
좁은놋창 은파군
갈현리
84.2 8.5 7.0 - - 0.06 0.01 0.035 0.025 0.19

<표 2>북한에서 발굴한 기원전 1000년기 청동의 화학조성표

 물론 이러한 남북한 야금학자들의 분석결과와 달리 함평군 초포리에서 발굴된 청동기의 형광 X선 분석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 청동기문화의 시베리아 계통론을 재확인하는 경우도 있다.0527)李健茂,<靑銅器の製作技術>(≪日韓交涉の考古學≫, 韓炳三·小田富士雄 編, 東京;六興出版, 1991), 120∼125쪽. 특히 초포리유적 출토의 組合式銅鈴은 定性分析의 결과 아연의 함유량이 많고, 기타 동령류 역시 아연의 함유량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어 아연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중국청동기와는 계통이 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똑같은 초포리 출토 청동기를 분석한 다른 연구에서는 아연-청동합금이라 불리는 청동기 5점의 아연 조성이 일정치 않아 어떤 계통적인 패턴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24점 중 19점)은 아연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0528)강형태·정광용,<草浦里出土靑銅器의 螢光X線分析>(≪咸平草浦里遺蹟≫, 國立光州博物館, 1988).

 청동유물의 성분분석 결과와 관련된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 나라 청동유물에 대한 ‘아연청동설’과 ‘시베리아 기원설’은 점차 후퇴되고 대신 ‘銅錫鉛合金說’0529)崔炷 등이 한국세형동검의 기본조성을 ‘Cu 75%, Sn 15%, Pb 10%’인 ‘동석연합금’으로 확인한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필자의 기왕의 연구(李亨求, 앞의 글, 1983)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李仲達·華覺明·張宏禮 등 중국 야금학자들이 분석한 은주청동기 253건의 성분조성과 기본적인 조성비율이 일치한다(李仲達·華覺明·張宏禮,<商周靑銅容器合金成分的考察-兼論 ‘鐘鼎之齊’的形成->,≪中國治鑄史論集≫, 北京;文物出版社, 1986, 149∼165쪽).과 ‘중국 기원설(발해연안 기원설)’로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문화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고대국가의 성립과 관계가 깊기 때문에 우리 나라 청동기문화의 계통을 밝히는 일은 고조선 성립의 문화적 배경과 민족문화의 원류를 밝히는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청동기문화의 기원을 두고 몇 가지 쟁점이 되고 있었다. 한반도 청동기문화에 대한 시베리아 기원설은 60년전에 일제 관학자에 의해 주장되기 시작하여 최근까지도 널리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1983년 처음으로 우리 나라 청동기의 ‘아연함유설’이 부정되고 뒤따라 이를 동의하는 화학성분 분석 결과가 나오고, 또 화학성분 분석 사례(<표 3>)가0530)洪鍾郁·鄭光龍,<청동기 분석>(≪麗川 積良洞 상적 支石墓≫, 全南大 博物館·麗川市, 1993), 250∼264쪽. 한편<표 3>은 이 글 253쪽에서 옮김. 활성화됨으로써 이제 ‘아연함유설’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는 바 아울러 ‘시베리아 기원설’도 성립될 수 없음이 밝혀지기에 이르렀다.0531)金貞培,<韓國靑銅遺物의 金屬學的 分析>(≪韓國史硏究≫94, 1996), 1∼22쪽.

 요컨대 발해연안 청동거울에 나타나는 기하무늬 양식과 고리의 형식은 殷周代의 청동거울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으며, 동물문양의 양식이나 형식도 은대 청동유물과 옥제품에 나타나는 동물문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나라 청동유물의 화학성분은 대체로 Cu 75%, Sn 15%, Pb 10%의 조성비율을 갖는 ‘銅錫鉛合金’으로, 전형적인 殷周靑銅器의 성분조성과 일치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하겠다(<표 4> 참조).

유 물 명 출 토 지 분 석 위 치 성 분 결 과
비파형동검-A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38호 지석묘   Cu, Sn, Pb, As, Fe
동검-C
동촉
보성군 문덕면 덕치리 1호 지석묘
보성군 문덕면 덕치리 15 지석묘
  Cu, Sn, Pb, Fe
Cu, Sn, Pb, Zn, Fe
비파형동검-①
비파형동검-②

비파형동검-③
비파형동모
여천시 적량동 상적 2호 석과
여천시 적량동 상적 21호 석곽

여천시 적량동 상적 22호 석실
여천시 적량동 상적 2호 석곽
  Cu, Sn, Pb, As, Fe
Cu, Sn, Pb, As, Fe

Sn, Cu, Pb, As, Fe
Cu, Pb, Sn, As, Fe
비파형동검-④
비파형동검-⑤
비파형동검-⑥
비파형동검-⑦
여천시 적량동 상적 13호 석실
여천시 적량동 상적 4호 석곽
여천시 적량동 상적 9호 석곽
여천시 적량동 상적 7호 지석묘
  Sn, Cu, Pb, As, Fe
Cu, Pb, Sn, As, Fe
Sn, Cu, Pb, As
Pb, Cu, Sn, As, Fe
동검-⑧
동검-⑨
동검-⑩
여천시 평여동 다군 2호 지석묘
여수시 오림동 4호 석곽
여수시 오림동 8호 지석묘
  Cu, Pb, As, Fe
Sn, Cu, Pb, Fe
Sn, Cu, Pb, As, Fe

<표 3>청동유물 형광X선 분석

器 物 총 량 Cu Sn Pb Zn
原編號 명 칭 주성분 실측치 실측치 실측치 실측치
M5:758 中 型 圓 鼎 96.47 76.96 18.59 0.76 0.16
M5:814 中 型 圓 鼎 99.29 80.31 17.48 1.07 0.43
M5:762 中 型 圓 鼎 97.79 81.01 16.19 0.49 0.10
M5:755 中 型 圓 鼎 93.12 76.43 15.64 0.83 0.17
M5:754 中 型 圓 鼎 98.77 80.58 16.64 1.23 0.32
M5:759 中 型 圓 鼎 95.15 77.83 16.45 0.76 0.11
M5:760 中 型 圓 鼎 98.43 82.02 15.49 0.60 0.32
M5:815 中 型 圓 鼎 96.52 80.38 15.12 0.92 0.10
M5:761 中 型 圓 鼎 95.82 81.85 12.64 1.17 0.16
M5:816 中 型 圓 鼎 97.31 79.92 16.84 0.68 0.07
M5:812 方 扁 足 鼎 94.85 76.95 17.18 0.62 0.10
M5:1173 扁 足 圓 鼎 99.63 78.86 18.79 1.68 0.30
M5:753 深 腹 桂 足 鼎 98.76 83.71 14.52 0.40 0.13
鼎 口 沿 97.90 78.45 18.83 0.56 0.06
鼎 耳 96.23 78.83 16.87 0.47 0.06
鼎 腹 96.88 82.28 14.17 0.37 0.06
鼎 腹 96.22 79.02 16.69 0.40 0.06
M5:809 大 方 鼎(口沿) 98.83 85.91 11.60 1.19 0.13
  大 方 鼎(腹部) 98.05 84.96 11.65 1.28 0.16
  大 方 鼎(足部) 96.88 83.60 12.62 0.50 0.16

<표 4>은허 부호묘 청동 禮器의 성분

<李亨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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