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Ⅱ. 철기문화
  • 1. 철기시대
  • 4) 철기시대의 유물
  • (5) 유리공예

(5) 유리공예

 유리는 완전 인공으로 배합 생성된 ‘최초의 인위적인 조성 물질’이므로 고대사회에 있어서 유리의 사용과 제조기술의 터득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0942)Frank Susan, Glass and Archaeology, London, 1982.
Auth Susan, Earliest Glass Manufacture, History of Ancient Glass, Newark, 1978.
그러므로 한반도의 철기시대 도래와 함께 시작된 유리의 제조와 사용은 우리 나라 철기시대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유리는 원재료의 배합과 1,200℃ 이상되는 고온의 용융온도 등 그 제조법에 있어서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지만 성형과 가공이 자유롭고 광택과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어 아름답다는 점, 그리고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여러 가지 좋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장신구나 용기 등으로 꾸준히 애용되고 있다.

 우리 나라 유적에서 장식품과 용기 등 적지 않은 유리 관련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고대사회의 내용을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유리유물에 대한 좀더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게 되었다.0943)李仁淑,≪韓國古代 유리의 考古學的 硏究≫(漢陽大 博士學位論文, 1990).

 우리 나라 고대 유리제품의 시작은 구슬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선사시대 천연석으로 구슬을 만들어 착용하던 전통이 유리의 도입 이후에는 유리가 귀중한 천연보석을 대치하는 소재로 쓰이게 되면서 유리구슬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시대가 오래된 유리 유물자료는 1989년 충남 부여 합송리 석관묘에서 출토된 모두 8점의 푸른색 원통형 대롱구슬(管玉)이다.0944)李健茂,<扶餘 合松里 遺蹟出土 一括遺物>(≪考古學誌≫2, 韓國考古美術硏究所, 1990). 이는 청동기시대에 이미 한반도에서 많이 쓰였던 碧玉製 대롱구슬을 본떠 국내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유리구슬들은 길이 6.2∼5.0㎝, 폭 1.0∼0.85㎝ 정도의 비교적 긴 원통형구슬로서 같이 출토된 銅劍·銅戈·多鈕精文鏡·銅鐸들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식동검문화의 유물조합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鑄造鐵斧와 鐵鑿이 공반되고 있어 初期鐵器文化 단계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시기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이러한 한국식동기류와 주조철기류, 그리고 유리제 구슬을 포함하는 유물 조합상은 합송리유적 외에도 주로 충남지역의 다른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당진 소소리에서 푸른색 유리 대롱구슬 2점(길이 5.6∼5.8㎝)과0945)李健茂,<唐津 素素里遺蹟 出土 一括遺物>(≪考古學誌≫3, 1991). 공주 봉안리에서도 유리 대롱구슬 1점(길이 5.5㎝, 폭 0.8㎝)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그 크기와 형태 등이 서로 유사한 불투명 푸른색 계열로, 국외에서는 일본 요시노가리(吉野ケ里)유적에서0946)佐賀縣敎育委員會,≪吉野ケ里遺跡≫(1990). 나온 여러 개의 푸른색 대롱구슬들을 들 수 있으며 중국 요령성지역에서도 발견된 것이 있다.

 초기의 유리제품이 한반도에 유입되는 철기문화의 초창기 양상을 보여주는 철제품들과 공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요령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에서 서북한을 통하여 전해지는 초기 철기문화의 내용과 유리와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합송리 출토 구슬은 과학적 성분분석 결과 납-바리움유리(PbO 24∼26%, BaO 11∼14%, SiO2 45∼51% 정도씩 함유된 Lead-Barium-Silica Glass系)로 판명되었고 이는 중국에서 戰國시대로부터 漢代에 걸쳐 주로 만들어졌던 중국 고유의 바리움을 함유한 납유리와0947)중국 고대 유리의 성분은 1930년대 洛陽出土 戰國時代 구슬에 대한 분석으로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Seligman C. G. & H. C. Beck, Far Eastern Glass;Some Western Origins, Bulletin of Museum of Far Eastern Antiquities, 1938.
―――, Barium in Ancient Glass, Nature, Vol. 13, No. 6, 1934.
그 조성 성분과 비율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 중국에서 유입된 유리 원재료를 가지고 우리 나라에서 다시 녹여 구슬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초기 유리그룹을 형성하는 이 납-바리움계 유리는 이외에도 경남 의창 다호리·대평리, 전남 해남 군곡리 등지에서 출토된 둥근구슬과 대롱구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0948)李仁淑,<韓國 古代유리의 分析的 硏究(Ⅰ)>(≪古文化≫34, 대학박물관협회, 1989).
―――,<嶺南地方出土 古代유리의 分析資料>(≪서울大學校 博物館年報≫3, 1991).
즉 서기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2세기경까지의 우리 나라 고대 유리제품은 대부분 중국과 관련이 깊은 납-바리움 유리계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분석된 군곡리 출토 남색관옥의 납성분에 대한 납 동위원소 비율분석(Lead Istope Ratio Analysis) 결과0949)‘납 동위원소 비율분석’이란 유물에 함유된 납 동위원소의 비율을 측정하여 비교하여 보면 사용된 납의 産地에 따라 다른 분포를 보인다는 이론에 의거하여 납이 함유되어 있는 고대 유물의 분석에 이용되는 과학적인 분석방법이다. 이 방법은 1960년대 미국의 화학자 Robert. H. Brill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으며 근래에는 특히 동양의 납유리의 분석에 적용되어 그 산지를 밝힐 수 있는 유용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Robert, H. Brill & J. M. Wampler, Istope Studies of Ancient Lead, American Journal of Archeology, 69, 1965.
국내 유리유물의 납 동위원소 비율 분석으로 산지가 확인된 자료는 국내(중부 한국)산으로 밝혀진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리(6세기 말∼7세기 초)에 대한 분석이 최초이다(李仁淑, 앞의 책).
한편 이 군곡리출토 대롱구슬에 대한 납동위원소 분석자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에 의하면,이 구슬은 중국 漢代의 구슬이나 耳璫 등과 같은 산지의 납인 것으로 나타나 중국산 유리 원자료를 쓰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성 분 합송리 酒 泉 요시노가리
SiO₂
B₂O₂
Al₂O₃
Fe₂O₃
CaO
MaO
Na₂O
K₂O
CuO
PbO
BaO
SrO
51.38
Tr
0.69
0.26
0.65
0.53
6.28
0.40
1.08
26.73
11.98
0.19
49.33
-
1.42
0.48
3.16
1.40
9.30
0.51
0.09
21.62
10.5
41.20
1.47
0.46
0.06
0.42
0.27
6.82
0.25
0.48
35.72
11.43
0.10

<표 1>한·중·일 초기 철기시대 출토 유리관옥 성분 비교 (단위:%)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 ‘유리’라는 물질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철기문화의 개시와 함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는 유리 원자료를 들여와서 재가열하고 녹여서 대롱구슬 등의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있었으나 아직 주성분인 규소에 납이나 소다·칼륨 등을 섞어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만들어지는 유리원액 자체를 생산하는 기술은 갖추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기시대 이래로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유리구슬들은 그 색과 외양, 그리고 그 조성 성분도 매우 다양한데0950)李仁淑, 앞의 글(1989).
―――, 위의 책.
성분이 다른 유리제품들은 그 제작지와 기원이 다양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0951)Henderson Julian, The Scientific analysis of Ancient glass and it's archaeological Interpretation, Scientific Analysis in Archaeology and it's interpretation, Oxford University Committee for Archaeology Monograph Vol. 19, 1989.

 중국의 史書에 三韓人들이 구슬을 財寶로 삼아 금·은·비단보다도 더 애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0952)≪後漢書≫권 85, 東夷列傳, 75, 馬韓.
≪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晋書≫권 97, 列傳 67, 馬韓.
이로써 당시 한국인은 유리나 천연석으로 만든 수많은 구슬을 착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는 원삼국기 이후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적에서 구슬이 출토되고 있어서 문헌의 기록을 사실로 확인해 주고 있다. 이렇게 고대의 구슬은 그 형태와 크기, 색 등이 다양한 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그 서술상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고, 용어(Terminology) 사용이 미비하여 세부적으로 충분히 분류, 검토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유리제품, 특히 유리구슬들은 대롱구슬·둥근구슬·곡옥형 등의 외형이나 크기, 색깔에 의하여 종류를 구분하는 것에0953)W. G. N. vander Sleen, A Handbook of Beads, the 2nd ed. 1973. 더하여서 과학적 성분분석으로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되는 유리 원자료의 조성상의 차이를 확실히 밝혀낼 수 있는데 이 유리자체의 각기 다른 성분 구성과 비율을 통하여 유리가 만들어진 장소와 연대에 대한 상당히 신빙성 있는 단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분석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 고대 유리의 조성 성분은 크게 납-바리움유리, 칼륨유리(포타쉬 유리), 소다유리, 그리고 납유리(납이 60∼70% 정도 함유된 高鉛유리)의 크게 4그룹으로 분류된다.0954)李仁淑, 앞의 책.
Lee In sook, Robert H. Brill & Philip M. Fenn, Chemical Analyses of some ancient glasses from Korea, Annales du 12e congrès de l'Association Internationale pour l'Histoire du Verre, Vienna, 1991;Amsterdam, 1993.

출토유적 합송리
(석관묘)
다호리
(토광묘)
대평리
(옹관)
군곡리
(패총)
군곡리
(패총)
군곡리
(패총)
군곡리
(패총)
조양동
(토광묘)
용담동
(옹관)
품 목 管 玉 小環玉 管 玉 小環玉 管 玉
(단면원)
管 玉
(단면사각)
小 玉 小 玉 管 玉
남 색 초록색 담청색 남 색 남 색 초록색 적황색 감 색 남 색
시 기 B.C. 2C B.C. 1C A.D.
2∼3C
A.D.1C후반
(Ⅲ기층)
A.D.1C후반
(Ⅲ기층)
A.D.1C중엽
(Ⅱ기층)
A.D.
2C
A.D. 1C A.D.
2∼3C
Wt%
SiO₂
51.38 34.9   66.942 25.0   39.0   68.3   61.82  73.5   74.4  
Na₂O 6.28 2.9   2.437 1.27  3.36  17.8   7.97  0.89  1.11 
CaO 0.65 0.85  0.513 0.06  3.69  1.73  2.40  1.42  3.84 
K₂O 0.04 0.15  0.850 0.14  0.06  2.92  3.54  14.9   14.5  
MgO 0.53 0.12  0.196 0.13  0.40  0.94  0.36  0.42  0.37 
Al₂O₃ 0.69 0.3   1.691 0.39  0.43  6.29  11.19  3.48  2.55 

Fe₂O₃
0.26 0.17  0.603 0.14  0.16  1.34  5.00  2.38  1.33 
TiO₂   0.001   0.001 0.001 0.25  0.52  0.2   0.15 
Sb₂O₃   0.05    0.01  0.01  0.01    0.01  0.01 
MnO   0.001   0.001 0.001 0.07    2.29  1.24 
CuO 1.08 0.83    0.20  0.84  0.003 6.45  0.02  0.01 
CoO   0.01    0.01  0.01  0.01    0.1   0.05 
SnO₂   0.1     0.02  0.001 0.05    0.001 0.001
Ag₂O Tr. 0.02    0.02  0.01  0.001   0.001 0.001
PbO 26.73 53    19.452 72.5   37.5   0.05    0.01  0.01 
BaO 11.98 6.48  4.805 0.01  14.4   0.1     0.3   0.3  
B₂O₃ Tr. 0.01    0.01  0.01  0.01    0.01  0.02 
SrO 0.19 0.03    0.01 0.1   0.01    0.01  0.01 
Rb₂O   0.01    0.01  0.01  0.01    0.03  0.02 
Cr₂O₃ Tr. 0.005   0.005 0.005 0.005   0.005 0.005
NiO   0.01    0.005 0.005 0.005   0.01  0.005
ZnO   0.011   0.007 0.034 0.03    0.037 0.026
ZrO₂   0.01    0.01  0.01  0.01    0.01  0.01 
Li₂O Tr. 0.001   0.001 0.001 0.001   0.001 0.001
V₂O₃   0.005   0.005 0.005 0.005   0.01  0.005
Bi₂O₃   0.005   0.001 0.001 0.001   0.001 0.001
Cl     2.511       0.76     

<표 2>우리 나라 출토 고대 유리 성분분석표 ①

출토유적 석촌동
(적석총)
옥 전
(24호)
몽 촌
토 성
몽 촌
토 성
진 주
(고분)
진 주
(고분)
황오동
(1호분)
98호분
(북분)
무령왕릉 미륵사지
품 목 丸 玉 구 슬 小環玉 丸 玉 小 玉 丸 玉 丸 玉 구 슬 小 玉 유리塊
갈 색 남 색 담록색 담청색 갈 색 청 색 남청색 남 색 적황색 초록색
시 기 A.D.
3∼4C
4∼5C 4∼5C 4∼5C 5C초 5C초 4C후반
∼5C초
5C 6C중엽 7C초
Wt%
SiO₂
83.36   6338  57.966 16.30  67.48  63.5   65.0    68.83 26.73 
Na₂O   11.2   19.762 3.590   0.44  19.3   14.9    5.33 0.01 
CaO 3.37    2.094 19.499 0.76 15.30  4.83  5.58   2.10 0.05 
K₂O 6.95  1.46   2.063 10.307 0.188 11.03  2.43  1.11   2.63 0.09 
MgO     0.312 3.730   0.73  5.74  2.84     0.06 
Al₂O₃ 4.58    9.119 2.668 3.41  3.40  2.32  5.94   11.20 0.27 

Fe₂O₃
FeO
0.42 
0.678   1.214 0.443 FeO
1.08 
FeO
0.78 
1.26  2.16   FeO
4.20
0.13 
TiO₂ 0.21    0.525 0.270     0.18  0.27   0.64 0.001
Sb₂O₃             0.01      0.01 
MnO             0.13  1.2      0.001
CuO       0.450     0.03  0.075  4.54  0.26 
CoO   0.0274          0.05  0.31     0.01 
SnO₂             0.02      0.08 
Ag₂O             0.001 0.0025   0.02 
PbO   0.055       75.4     0.05  0.2      72.2  
BaO     0.093       0.01  0.06     0.01 
B₂O₃             0.01  0.23     0.01 
SrO             0.05      0.01 
Rb₂O             0.01      0.01 
Cr₂O₃             0.005     0.005
NiO             0.005     0.005
ZnO   0.00915         0.029     0.01 
ZrO₂             0.01      0.01 
Li₂O             0.003     0.001
V₂O₃             0.005     0.005
Bi₂O₃             0.001     0.001
Cl 0.81    1.441 1.077 2.79  0.32         

<표 2>우리 나라 출토 고대 유리 성분분석표 ②

 특히 유리구슬 출토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빈번하고 형태와 색이 다양해지는 原三國期 동안에는 이 4종류의 유리성분이 모두 발견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이미 이 때에 유리의 공급원이 여러 곳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납-바리움유리로부터 비롯된 우리 나라의 고대 유리 사용은 이어서 기원후 1세기 즈음에는 칼륨유리와 소다유리로 만든 유리구슬이 활발히 유입되어 더욱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0955)李仁淑, 앞의 글(1989).

 1986년 이후 연차적으로 3년간 발굴된 전남 해남군 군곡리패총에서는 남색 및 초록색 대롱구슬을 위시하여 초록색 투명의 작은 고리구슬(小環玉), 적색 불투명 작은 둥근구슬 등도 출토되었다.

 군곡리패총은 오랜 동안 계속된 생활유적으로서 기원전 3∼4세기의 이른 층으로부터 기원후 3세기 후반까지에 이르는 5개의 기본 층위로 구분되는데 이 중 유리제품은 군곡리패총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Ⅱ·Ⅲ기층에서 출토되고 있다.0956)崔盛洛,≪海南郡谷里 貝塚≫(Ⅰ∼Ⅲ)(木浦大 博物館, 1987∼1989). 그 연대는 기원후 1세기 중엽에서 후반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같이 출토된 철기류와 貨泉·卜骨·骨製品 등은 중국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군곡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한반도 남단의 해안일대에 분포한 패총들과의 관계 및 나아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게 하는 것이다.

 군곡리패총에서 발견된 2개의 대롱구슬은 특히 관심을 끄는데 그 중 하나는 길이 2.1㎝, 폭 0.8㎝의 불투명한 푸른색의 원통형 대롱구슬인데 반하여 다른 하나는 투명한 초록색의 단면 4각형 대롱구슬이다. 전자는 납-바리움 유리로서 前代의 합송리 유리구슬과 같은 계열이지만 후자는 다른 모양과 색을 하고 있으며 성분도 소다유리로 나타났다.0957)Lee In sook, et al., ibid, 1993.
李仁淑, 앞의 글(1989).
이 초록색 투명 대롱구슬은 1세기 중엽의 한국 발견 최초의 소다유리계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아마도 뒤이어 풍부히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색의 소다유리계 유리구슬들과 같이 인도나 동남아 등지에 원산지를 두면서 중국을 통한 혹은 동남아 수입품으로 보이는데0958)李仁淑, 앞의 책(1990). 이 시기 이들 지역간의 해상무역의 산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군곡리패총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색의 유리구슬들이 발굴되었으며 그 성분도 각기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는 이들의 각기 다른 제작지와 유입계통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1세기 말∼3세기에 걸친 시기로 알려진 경주 조양동의 토광목관묘에서는 남색 유리구슬들이 바닥의 철검 주위에서 발견되었으며, 제주도의 용담동유적의 옹관에서는 남색 유리구슬들이,0959)李淸圭,≪제주도 용담동유적≫(제주대 박물관, 1989). 또 김해 양동리 등지의 목관묘에서도 남색·초록색 유리구슬들이 알려져 있다. 특히 조양동과 용담동 구슬들은 그 조성 성분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칼륨(K2O)을 10∼20% 정도 함유한 칼륨유리계로 판명되었는데, 이들은 창원 삼동동·도계동, 부산 노포동, 경산 임당동, 진주지역 그리고 서울 석촌동 등과 같이 모두 기원후부터 약 4∼5세기 삼국시대 초기까지에 걸쳐 중·남부지방에서 광범위하게 분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0960)李仁淑, 앞의 글(1989). 이러한 국내 칼륨유리의 조성 성분은 중국 한대의 유리를 대표하는 칼륨유리계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어서 한국의 고대 칼륨유리는 중국 한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제작지, 원산지 등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중국내에 있는지 혹은 외부, 동남아지역인지 아직 학계에서 결론이 나 있지 않다.0961)Shi Meiguang, He Ouli & Zhou Fuzheng, Investigations of Some Chinese Potash Glasses Excavated from Tombs of the Han Dynasty, Journal of the Chinese Silicate Society, vol. 14, 1986.

 원삼국기 말인 부산 노포동 토광목관묘 유적지에서는 금·은 제품은 없이 토기, 철제품과 함께 청색유리구슬과 적갈색유리구슬, 수정제 곡옥과 수정다면옥, 그리고 호박제구슬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2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김해 예안리 고분군과 창원 삼동동 옹관묘유적에서도 유리구슬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삼동동 옹관묘에서는 다른 부장품은 거의 없이 다량의 청색과 적색계통의 구슬이 빠짐없이 부장되어 있어서 당시의 장례 관습과 함께 주목을 끈다.0962)安春培,≪昌原三東洞 甕棺墓≫(釜山女大 博物館, 1984).

 또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해 회현리패총에서 출토된 적색·청색·녹색·황색의 작은 구슬들은 다양한 색과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일본 야요이(彌生)시대의 규슈(九州)지방 후다쓰가산(二塚山)유적이나 스구(須玖)유적 등에서도 많은 소옥들이 출토되고 있어0963)小林行雄,<彌生,古墳時代のガラス工藝>(≪MUSEUM≫324, 東京國立博物館, 1978).
藤田亮策 等,<彌生時代のガラス>(≪考古學論集≫, 1977).
서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유리구슬은 우리 나라에서 전국적으로 분묘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그리고 패총이나 주거지 등 모든 유구에서 무수히 출토되고 있어 그 전부를 고찰해 보기는 어렵다.

 원삼국기 이후의 유리구슬들은 그 성분 비율상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소다유리계에 속하고 있으며 이후 삼국시대 말 통일기에 국내산 납유리가 유행하기까지도 계속 소다유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0964)李仁淑, 앞의 글(1989).
―――, 앞의 책(1990).
Lee In sook, et al., ibid, 1993.

 그리고 철기시대 이래로 한반도 서북지역에서는 토광묘유적에서 청동기, 철기와 공반되는 여러 가지 구슬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낙랑유적에서도 많은 구슬들이 출토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초기 철기문화 단계로서 대체로 중국계로 보아 무방하지만 지금까지 유리에 대한 자세한 보고와 북한측의 분석자료가 부족하여 종합적으로 고찰되지 못한 점은 유감이다.

 원삼국시기 동안의 다양한 색깔과 형태 그리고 아주 작은 크기의 유리구슬들은 그 제작 기법상 당시 국내의 유리제조 기술 수준으로는 만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마도 외부로부터의 교역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미 기원전부터 인도의 북부와 남부에는 유리구슬의 제작 중심지가 있었으며 당시 로마제국과 인도간에 교역이 이루어졌고 이들 구슬들은 해상을 통하여 동과 서로 널리 교역되었다.0965)Marianne Stern, Early Exports beyond the Empire, Roman Glass:Two Centuries of Art and Invention, The Society of Antiquaries of London, 1991. 이어서 스리랑카, 말레이지아, 타이랜드, 스마트라, 베트남 등의 동남아 각지에서도 유리구슬이 활발히 교역되었고, 또한 인도의 아리까메두 등의 유리제조 기술이 여러 곳으로 전해져 동남아지역에서도 유리구슬이 생산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연구되어 있다.0966)Peter Francis Jr., Beadmaoking at Arikamedu and beyond, World Archeology vol. 23 No 1, 1991. 이러한 다양한 유리구슬들은 넓게는 소위 ‘인도·퍼시픽 유리구슬’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0967)Kishor K. Basa, Ian Glover & Julian Henderson, The Relationship Between Early Southeast Asian and Indian Glass,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
tion Bulletin 10, 1991.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구슬들과 동남아지역의 구슬들이 성분이나 형태에서 비교되는 자료가 근래에 제시되고 있다. 이는 바다를 통한 국제교역의 일단이 우리 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0968)Robert H. Brill, Scientific Inverstigation of Ancient Asian Glass, Unesco Silk Road-Maritime route Seminar, Nara, 1991.
Lee In sook, The Silk Road and Korean Ancient Glass, Korean Culture, Los Angeles, 1993.

 한편 원삼국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제조 가공된 유리구슬에 대하여 살펴보면,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초기의 합송리 대롱구슬 유형들에 이어서 남색 또는 진한 남색(紺色), 녹색의 둥근구슬류들이 일찍부터 국내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유리 요지의 발견 등 유리제조를 적극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으나0969)崔 炷·李仁淑·金秀哲·都正萬,<慶北月城郡 內南面 德泉里 출토의 鐵 슬래그에 對한 硏究>(≪文化財≫22, 문화재관리국, 1989).
유리요지라고 한때 알려졌던 월성군 덕천리 요지는 그 출토품이 철슬래그로 판명되었으며, 아직까지 국내에서 확실한 유리요지의 발견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유리제조와 가공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틀이나 도가니의 발견과 확실한 유리 관련 요지의 발견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유리구슬의 양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과,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유리 유물의 존재(유리雲珠 유리제 병형 요패장식 등), 최근 국내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곡옥과 둥근구슬용의 진흙으로 만든 틀,0970)유리구슬 제조용의 진흙으로 만든 틀은 종래 춘천 중도유적과 군곡리패총에서 그 파편이 발견된 바 있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근래 일본에서 많은 유사한 예가 발견되고 특히 경기도 미사리유적에서 최근 발견된 유리구슬용의 진흙제틀 등의 존재로 원삼국시기 틀에 의한 유리구슬 제조는 확실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야요이시기의 福岡市 彌永原遺蹟에서 곡옥제조용 진흙틀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납유리 제조용으로 분석된 바 있다. 이 외에도 五反田遺蹟, 佐賀縣 原古賀三本谷遺蹟 등에서 곡옥 제조용 틀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근래에는 奈良縣 桵井市 上之宮遺蹟을 위시하여 飛鳥池遺蹟, 東京都 豊島馬場遺蹟 등에서 대략 4∼8세기에 이르는 둥근유리 제조용의 진흙제 틀이 다수 발견, 보고되고 있으며 이들은 대개 소다유리 제조용으로 분석되어 있다. 또한 飛鳥池遺蹟(7세기 말)에서는 뚜껑이 달린 포탄형의 유리 제조용 도가니가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 도가니의 벽에 붙은 유리질은 납유리로 분석되었다.
山內紀嗣,<ガラス玉の鑄型>(≪天理參考館報≫4, 1990).
肥塚隆保,<保存科學的方法しにょる古代珪酸鹽ガラスの硏究(Ⅰ)>(≪奈良國立文化硏究所 40周年記念論集≫, 1993).
中島廣顯,<東京都北區豊島馬場遺跡出土のガラス小玉鑄型>(≪考古學雜誌≫78-4, 日本考古學會, 1993).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것이지만 경주 황성동에서 최근에 출토된 유리 녹이는 도가니 편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국내 유리제조는 어느 정도 가능하였다고 본다. 물론 삼국시대 늦어도 6세기 말경에는 국내에서 납유리의 원자료를 제조했다는 사실이 일본에서의 방증 자료들과0971)山崎一雄,≪古文化財の科學≫(思文閣出版, 1987).
Brill. R. H. & Kazuo Yamasaki, etc, Lead Isotope in Some Japanese and Chinese Glasses, Art Orientalis Ⅺ, 1979.
Brill. R. H. & J. H. Martin, Scientific Research in Early Chinese Glass, The Corning Museum of Glass, 1991.
납동위원소 비율분석에서 밝혀지고 있어서 삼국시대와 이에 앞서는 원삼국시기 동안의 국내 유리 제조기술 수준도 미루어 추정해 볼 수 있다.0972)李仁淑, 앞의 책(1990). 더욱이 당시 낙동강 하류지방의 풍부한 제철업의 번성과 그에 따른 활발한 대외교역은 유리의 제조기술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일반적으로 유리구슬의 형태는 둥근구슬(丸玉)이 가장 많지만, 대롱구슬(管玉;원통형, 사각형, 육각형 등), 고리구슬(環玉), 굽은구슬(曲玉), 대추옥(棗玉), 납작구슬(平玉), 입방체형구슬(多面玉) 등 다양하다. 만드는 방법은 가는 철사에 유리용액을 감아 말아서 만들거나(Wound bead) 잡아늘려서 만드는(drawn bead)법이 있고 틀에 용액을 부어서 만드는 방법도 많이 쓰였다. 최근에 일본을 위시하여 미사리유적 등에서 유리구슬의 틀이 발견되어 이른시기 국내 유리제작과 그 방법에 대한 확실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 나라 유리의 시작은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의 유리구슬 문제는 장신구로서의 구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철기문화의 보급과 시작이라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와 관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납-바리움 계열의 유리로서 비롯되어 이어서 칼륨유리와 소다유리 등 계통이 다른 유리들이 등장한다고 하는 것은 다양한 유입경로와 이를 통한 문화교섭을 입증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구슬의 형태나 크기 면에서 초기 철기시대를 지나 원삼국기에 이르러서는 초기의 대롱구슬형에서 벗어나 다양화하는 경향이 엿보이며 색깔은 남색·녹색이 위주이면서 적지 않은 적색·황색·진한회색 소옥들도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렇듯 고대 유리 유물을 통하여 고대의 사회와 문화의 모습을 복원해 볼 수 있으며, 유리제품은 특히 고대의 과학기술과 교역에 관하여 중요한 증거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李仁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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