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Ⅱ. 철기문화
  • 2. 철기시대의 사회와 경제
  • 1) 생업경제
  • (2) 교역

(2) 교역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서로 달라 생산된 물품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하는 교역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있어 왔다. 청동기, 그리고 철기시대로 오면서 물품생산의 전문성이 강화되고, 자가생산되는 물품의 비중이 점점 적어지면서 교역은 더욱 활발하개 전개된다. 또한 농촌과 어촌이 분화되고 邑落이 발달하면서 각각 생산하는 농수산품과 공산품의 종류가 달라지고, 그 결과 교역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교역활동은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상인과 화폐를 거래수단으로 통용하면서 이루어진다. 중국에서는 이미 春秋戰國시대 또는 殷周시대에 상인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화폐가 통용되었다. 漢代로 내려와서는 중국 상인이 樂浪에 와서 활동하였다고 하나,0989)≪漢書≫권 28, 地理志 8 下, 樂浪郡. 우리 나라 상인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문헌기록이나 실물자료를 통해 이들의 활동을 간접적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다. 우선 衛滿朝鮮이 辰國과 중국과의 교역을 막았다는 문헌기록으로 미루어 남한에서는 중국과의 원거리 무역을 수행하였던 상인층이 있었을 가능성이 강하게 시사된다. 마찬가지로 기록에 弁辰韓의 철을 멀리 帶方과 倭까지 수출하였다는 사실에서 당시 대외무역을 담당한 무역상이 있으리라고 보인다. 제주도에서도 사람이 馬韓으로 추정되는 中韓과 상거래를 하였다고 전한다.0990)≪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물론 이들 상인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당시 지배층에 강한 통제를 받거나 그들의 대행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역의 수단으로 통용되는 화폐유물로서 전남 거문도, 제주도 산지항에서 수십 내지 수백 매의 新 王莽錢이 발견되었다(<그림 3>).0991)池健吉,<南海岸地方 漢代貨幣>(≪昌山金正基博士華甲紀念論叢≫, 1990). 왕망전은 그 밖에 해남 군곡리와 마산 성산패총, 그리고 창원 다호리 토광묘 등에서 확인되어 이들 화폐가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유통되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화폐유물이 실제의 교역 수단으로 활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왕망전은 중국에서 신나라 왕망 때 대량으로 발매되고 정책적으로 중국 이외의 지역에도 통용이 강요된 것이나, 신나라가 10여년 만에 멸망함으로써 거래수단으로서의 가치가 낮고, 사용기간 또한 짧았던 것으로 보인다.0992)西嶋定生,≪中國古代社會經濟史≫(東京大學出版會, 1981). 그렇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일부 계층에서 중국으로부터 일정한 물품을 수입할 경우 한정적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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