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Ⅱ. 철기문화
  • 3. 주변지역 철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4) 발전기(전한 이후)

(4) 발전기(전한 이후)

 중국의 고대 철기문화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前漢代부터로서, 철 및 철기의 생산에 있어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들이 개발되어 이를 기반으로 하여 농구, 공구, 병기 및 기타 생활 잡기류들의 종류와 수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먼저 농구에 있어서는 10종 정도에 달하는 前代의 것들이 존속하면서 상당한 형태적 변화를 보이며, 특히 牛耕의 확대보급에 따른 犂鏵의 급증현상이 주목된다. 그리고 공구류도 剪·鋏·鑢 등의 신종 등이 출현하기도 하지만 보다 큰 발전의 양상은 병기류와 잡기류의 부문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병기류에 있어 신종의 출현은 별로 보이지 않으나 劍類와 刀類의 사용이 급증하여 청동제 병기는 실질적으로 구축되고, 용기·조명기·난방용기 등을 위시한 수십 종의 생활 잡기류와 다양한 형태의 차마구 등이 급증하고 있어 당시 철기문화의 획기적인 발전양상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제철 및 철기제조 유적은 상당수가 조사되어 있으며, 약 10개소 정도가 파악된 제철유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유적는 河南省 鄭州市 古滎鎭製鐵址1088)鄭州市博物館,<鄭州古滎鎭漢代冶鐵遺址發掘簡報>(≪文物≫1978-2).이다. 이 곳에서는 지름 4m 규모의 타원형 제철로가 확인되어 당시의 철 생산이 어느 정도의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銑鐵 생산의 기반 위에서 犂鏵와 같은 대형 농기구의 대량제조가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열처리기술도 展性鑄鐵의 제조단계에서 球墨狀鑄鐵의 제조수준으로 발전하였으며, 徐冷을 통해 흑연이 析出됨으로써 耐摩擦性을 갖는 灰鑄鐵이 새로이 개발되어 車軸頭 등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대 이후 鐵范 사용이 확대되고1089)山東省博物館,<山東省萊蕪縣西漢農具鐵范>(≪文物≫1977-7).
河南省文物硏究所,<河南新安縣上孤灯漢代鑄鐵遺址調査簡報>(≪華夏考古≫1988-2).
疊鑄方式이 보급되는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당시 주조철기의 수요급증에 따라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된 결과라고 하겠다.

 또한 단조철기의 부문에서는 塊鍊鐵 대신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炒鋼(鎔銑에 탈탄제를 첨가하여 제조한 鋼材)이 새로이 개발되었고, 심지어 주조 후 탈탄하여 강재로 만드는 鑄鐵脫炭鋼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와 동시에 점차 단조기술도 향상되어 이러한 강재를 이용한 백련강 제품들이 제조되기에 이르렀으며, 이와 같은 여러 기술들의 개발은 보다 우수한 품질의 단조철기들이 대량으로 요구되었던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질적·양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당시 세계 최첨단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한대의 철기문화는 사방으로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어 고대 동아시아 철기문화의 근간이 되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한반도의 경우는 漢四郡의 설치 등을 계기로 상기한 여러 기술 가운데 상당한 부분들이 도입됨으로써 본격적인 철기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중국 고대의 철기문화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해가 절실히 요망된다고 하겠다.

<李南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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