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Ⅱ. 철기문화
  • 3. 주변지역 철기문화와의 비교
  • 2) 일본
  • (2) 한·일 초기 철기문화의 교류관계

(2) 한·일 초기 철기문화의 교류관계

 일본의 경우 야요이시대 전기에서 중기초두까지는 키타규슈지역에서 철기문화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관계유적이나 유물의 수가 얼마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야요이문화 전파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난 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야요이문화의 근원지인 우리 나라 남부지역에서도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북부지역인 무산 호곡동유적1110)황기덕,<무산 범의 구석 발굴보고>(≪고고민속론문집≫6, 1975).이나 회령 오동유적1111)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회령 오동 원시 유적 발굴 보고≫(유적발굴보고 7, 1960).에서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의 것인 주조철부가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부지역의 초기철기는 중국 화북지방을 통해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당시 청동기·마제석기·무문토기·도작농경 등의 문화요소와 함께 철기도 북쪽을 통해서 남하하였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키타규슈지역까지 철기가 전파되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와 같은 가설은 야요이문화 전기초두의 키타규슈지역에 나타나는 무문토기·마제석기 등 다른 요소를 통해서도 그 추정이 가능하다.1112)야요이문화 초기에 키타규슈지방에서 출토되고 있는 공렬토기, 심발형토기, 유두형손잡이토기, 각종 마제석기는 우리 나라 동북지방의 무산 호곡동유적이나 회령 오동출토 유물들과 닮은 점이 많다.

 다음 야요이시대 중기전반에서 중기중반이 되면 종래 철제공구류에서 철제농구나 철제무기가 혼합되고, 철부는 판상철부가 추가되며 일부에서는 철기 생산이 가능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부산 내성 주거지유적에서 철편과 함께 죠노코시식(城丿越式) 야요이토기가 출토되어 시기적인 검증이 가능하며 중부지방 당진의 소소리,1113)李健茂,<唐津 素素里遺蹟出土 一括遺物>(≪考古學誌≫3, 1991). 장수 남양리,1114)池健吉,<長水 南陽里出土 靑銅器·鐵器 一括遺物>(≪考古學誌≫2, 1990). 부여 합송리1115)李健茂,<扶餘 合松里遺蹟出土 一括遺物>(≪考古學誌≫2, 1990).와 북부지방의 함흥 이화동,1116)박진욱,<함경남도 일대의 고대유적 조사보고>(≪고고학자료집≫4, 1974). 봉산 송산리,1117)황기덕,<1958년 춘하기 어지돈지구 관개공사 유적정리 간략보고 (Ⅰ)>(≪문화유산≫1959-1). 배천 석산리1118)황기덕,<최근에 알려진 비파형단검과 좁은놋단검 관계의 유적유물>(≪고고학자료집≫4, 1974).유적에서 다뉴세문경, 한국식동검·동모·동과와 함께 철부가 출토되는 경우도 이 시기 일본에서 청동기와 철기가 공반되는 경우와 같은 현상으로 양국 철기의 발전과정을 예상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또 야요이 중기후반에서 후기전반이 되면 키타규슈지역에서는 타테이와유적1119)立岩遺跡調査委員會 編,≪立岩遺跡≫(1977).을 비롯해서 분묘에 철제무기가 부장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이보다 앞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중국 한대의 매장풍습과 관계가 있는 듯하며1120)高久健二,<韓國出土鐵鉾の傳播過程に於ける硏究>(≪考古歷史學誌≫8, 1992). 한국식동검·동모·동과 대신 철검·철과·철모와 다뉴세문경을 대신해서 중국경이 부장되는 것도 한·일 양국에서 같은 현상이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된 철제무기들은 대부분 우리 나라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후기중반 이후가 되면 문헌상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1121)≪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弁辰條 참조. 남부지방의 철기 소재를 일본이 공급받아 철기생산이 가능해지고 그 생산량도 증가되며 철제무기보다는 오히려 철제농경구 생산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또 철기는 분묘 부장품뿐만 아니라 생활 주거지에서도 출토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철기의 자급자족으로 파손품을 재활용하지 않고 그냥 폐기시켰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 남해안지역의 패총유적에서 철기가 출토되는 것과 동일한 양상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초기 철기문화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 나라 철기문화와 비교하여 보았다. 그 결과 일본의 철기문화는 우발적이긴 하지만 야요이문화 시작 시기에 중국 동북지방의 철기문화가 우리 나라를 거쳐 키타규슈지역에 전파된 듯하다. 그것은 아직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일이지만 야요이문화 형성기에 벼농사, 청동기, 무문토기, 마제석기 등 우리 나라 청동기 문화요소와 함께 철기도 일본에 전파된 것이 예상된다. 그것은 일본에서 출토되는 초기 철기의 특징이 우리 나라의 초기 철기와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그 예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철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야요이문화의 중기중반 이후라고 생각되는데 철기가 출토된 유적의 성격이나 철기의 특징, 사용시기 등 여러 요소가 우리 나라의 초기 철기 양상과 매우 흡사하여 상호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야요이 후기중반 이후 일본에서 철기가 충족 단계에 접어들면서 야요이시대는 끝나고 고분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철기가 당시 사회구성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였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沈奉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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