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한국 고대의 국가 기원과 형성문제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제기된 部族國家論·城邑國家論 및 君長社會論은 외국 인류학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우리 나라 역사에서 특정 지역, 특정 시대의 역사를 국가의 단계로 파악하는 것이 되므로 국가 성립 이전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규정할 것인가라는 점과 직결되어 있는 셈이다.

 국가의 기원이나 성립은 일반적으로 糧食生産 단계에서 都市革命을 거쳐 文明 단계로 진입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035)이같이 도시(city), 문명(civilization), 국가(state)의 문제들은 일찍이 인류학계에서 1950년대, 60년대, 70년대를 대표했던 주제들이었다(K. C. Chang, Shang Civilization, Yale Univ., 1980, pp.364∼365).
金貞培,<韓國史와 城邑國家論의 問題>(≪韓國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 高麗大 出版部, 1986).
특히 동식물의 家畜化와 栽培가 인구증가를 촉진하였고, 이것이 사회경제적 단위를 변화시켰으며, 금속문화를 수용하면서 군사력이 대두하여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고, 경제적 지배를 위한 강력한 조직이 정치상에 반영되어 국가가 탄생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런데 이같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해 모르간(L. Morgan)은 領土·國民·財産을 언급하였고, 이와 함께 軍隊의 중요성이 여러 학자에 의해 강조되었으며,036)Redcliffe Brown, African Political System ⅩⅣ, in Fortes, M and Evans Pritchard, E. E.(ed), 1940. 기술적·경제적 독립과 함께 정치적 요소도 강조되었다. 한편 국가는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自然發生論도 제기되었다. 즉 농업의 발달에 의한 충분한 양식 확보를 통하여 노동의 專門化가 진행되고 이는 정치적 통합을 초래하여 결국 국가가 발생된다는 논리이다.037)金貞培,<韓國古代의 國家起源論>(≪白山學報≫14, 1973;앞의 책, 56∼57쪽).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는 자연발생적이라기 보다는 강력한 투쟁, 즉 征服과 같은 전쟁을 통하여 성립된다는 논리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038)Carneiro, R. L., “A Theory of the Origin of the State” Science, Vol. 169, 1970.

 한동안 학계에서는 서어비스(E. R. Service)의 君長社會(Chiefdom)이론을 우리 역사에 적용하여 국가의 발달 단계를 논의하면서 특히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즉 첫째는 국가와 국가 이전 단계를 어떤 각도에서 풀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내적 발전의 입장에서 보아왔다는 점이다. 이는 그 동안의 연구가 연속의 측면을 다소 외면하고 단절을 강조하여 그 특징을 표출시킨 면이 너무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고대의 역사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로 면면히 그 맥을 이어왔으므로 고고학 자료와 문헌 자료를 연결시킬 때 가능한 한 이에 필요한 이론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즉 우리 역사에 흩어져 있는 국가의 탄생 전후의 자료들을 어떤 이론의 틀과 접합시키는 것이 보다 순리에 가까운 것인가를 고려하여 왔던 것이다. 이론의 도입과 적용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이를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것이지만 서어비스가 제시한 취프덤의 개념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039)全京秀,<신진화론과 국가형성론>(≪韓國史論≫19, 서울大, 1988), 576쪽. 잘못이다. 오히려 그 개념은 내용의 폭과 깊이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040)Earle Timothy, “Chiefdoms in Archaeological and Ethnohistorical Perspective”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16, 1987, p.279.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어비스가 제시한 취프덤이라는 용어는 複合社會(Complex Society)를 설명하는 데 유익한 개념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얼(T. Earle)은 이를 無頭社會에서 官僚國家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계로 파악하고 있으며, 또한 카네이로(R. L. Carneiro) 역시 국가의 전단계로 취프덤을 설정하고 있다. 카네이로가 自治村落(Autonomous Villages)으로부터 취프덤과 국가를 거쳐 제국(Empire)에 이르는 정치발전 과정을 의심없는 사실로 인정하고041)Caneiro R. L., “The Chiefdom:Precursor of the State”, in G. D. Jones and R. R. Kautz(eds.), The Transition to Statehood in the New World, Cambridge;Cambridge Univ. Press, 1981, p.67. 있음은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서어비스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사회발전을 논한 이래042)Service E. R., Primitive Social Organization-An Evolutionary Perspectives-, New York;Random House, 1962. 프리드(M. Fried)가 제기한 部族(Tribe)의 개념문제에 대한 비판을043)Fried Morton, The Notion of Tribe, Cummings;Menlo Park, 1975. 수용하여, 향후의 더 훌륭한 연구가 있을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을 평등사회(Egalitarian Society)-계층사회(Hierarchical Society)-고대문명 또는 古典帝國(Archaic Civilization or Classical Empire)으로 그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044)Service E. R., “Discussant War and Our Contemporary Ancestors”, in M. Fried, M Harris and R. Murphy(eds.), War:The Anthropology of Armed Conflict and Aggression, New York;The Natural History Press, 1967, pp.167. 여기서 계층사회가 취프덤을 의미하고 있음은 물론이며 이후의 그의 연구 진행과정에서 취프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045)Service E. R., Origins of the State and Civilization, New York;W. W. Norton & Company Inc., 1975.
여기서 서어비스는 앞서 수정한 단계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즉 Egalitarian Society, Archaic Civilization의 단계는 있으나 Chiefdom에 해당하는 Hierarchical Society의 편목은 없으며 소항목으로 Chiefdom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이같이 취프덤은 일반적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랜프류(C. Renfrew)는 이를 ‘當世風의 槪念’046)Renfrew C., “Monument, Mobilization and Social Organization in Neolithic Wessex”, in C. Renfrew(ed.), The Explanation in Culture Change―Models in Prehistory, Pittsburgh;Univ. of Pittsburgh Press, 1973.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인 연구나 인류사회의 진화를 체계화하는 데047)Johnson, E. W. and Earle T. K., The Evolution of Human Society, California;Stanford Univ. Press, 1987. 취프덤은 여전히 중심적인 개념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이를 대체하는 용어로서 中間領域社會(Middle-Range Society)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048)Feinman G. and J. Neitzel, “Too many Types:An Overview of Sedentary Prestate Society in the Americas”, In Advances in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 7, 1984. 취프덤을 두 개 혹은 세 개의 형태로 나누어 파악하기도049)Steponaitis, V. P., “Location Theory and Complex Chiefdoms:A Mississippian Example”, In Mississippian Settlement Patterns, New York;Academic Press, 1978. 여기서는 단순(Simple)과 복합(Complex) Chiefdom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Canerio, R. L., “The Chiefdom:Precursor of the State”, The Transition to Statehood in the New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에서는 최소(minimal), 전형적(typical), 최대(maximal) Chiefdom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였다. 하지만 이같은 구분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접근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취프덤 개념을 변형시킨 것일 뿐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050)강봉원,<국가와 군장사회 사이의 중간 단계에 대한 고찰>(≪韓國考古學報≫33, 1995), 10∼11쪽.

 한편 취프덤을 우리 역사에 접목시킬 때 이를 어떤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기왕의 연구자들이 이를 酋長·族長·酋邦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으나 ‘君長’이라는 표현이 사료에서 설명되고 있는 여러 내용을 포괄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051)추장은 이종욱이, 족장은 최몽룡이, 그리고 추방이란 표현은 尹乃鉉이 사용한 것으로 결국 군장사회로 표현한 김정배의 그것과 동일 대상에 대한 용어의 차이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파악된다. 즉 취프덤이 정치사회의 진화과정에서 국가의 바로 전단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취프덤을 낮은 단계의 사회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단계의 성격은 국가로의 이행과 진입을 고려할 때 중국 사서 및 우리 나라 자료에 나타나는 군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052)이 용어가 관료국가의 성격에 근접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정치체의 발전 과정을 반영한 구체적인 자료의 범위에서 용어의 선택과 의미부여가 필요함은 기지의 사실이다. 또한 이 용어가 포괄하는 대상은 그같은 성격을 가장 현저하게 보여주는 三韓社會이지만, 이와 함께 광의로는 청동기시대도 이 시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취프덤이 지역에 따라서 존속기간이 적어도 한 시대 이상의 복합적인 時代相을 반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金貞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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