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4) 고조선의 건국연대

 고조선이 역사적으로 실재한 국가였음을 구체적으로 실증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시기에 관한 정확한 연대규명이 요구된다. 고조선의 연대에 관한 실마리는≪三國遺事≫에 인용되어 있는 고기록들에서 찾을 수 있다. 고조선조의<魏書>를 인용한 부분에서는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壇君王儉이 있어 도읍을 阿斯達에 정하고 나라를 개창하여 朝鮮이라 일컬었으니 중국의 高(堯)임금과 같은 때이다”라 하였다. 또한 계속해서<古記>를 인용한 부분에서는 “단군왕검이 唐高(唐堯)가 즉위한 지 50년인 庚寅年에 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먼저<위서>의 연대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위서>가 曺魏시대의 것인지 또는 拓跋魏시대의 사서인지 알 수 없으므로 구체적인 기준연대를 확정할 수는 없으나176)曺魏時代는 그 연대가 220∼265년이고 拓跋魏時代는 386∼534년이다. 한편 이 魏書를≪三國志≫이전에 존재했던 魏書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리지린, 앞의 책, 104쪽). 한편 2000년 전이라는 연대를 근거로<魏書>는 기원전 4∼2세기 경의 역사로서 구체적으로는≪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魏滿朝鮮’의 역사를 기록한 국내문헌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丁仲煥,<三國遺事 紀異篇 古朝鮮條에 引用된 魏書에 대하여>,≪大丘史學≫12·13, 1977). 가장 늦은 연대로 잡더라도 기원전 1500년경으로 단군의 연대를 설정할 수 있다. 한편<고기>에서는 중국의 三皇五帝 중 하나인 요임금의 재위연대를 비교대상으로 삼아 단군의 연대를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一然 자신이 주석을 달아 “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이니 50년이 되는 해는 丁巳年으로 庚寅은 잘못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요임금이 즉위한 해의 간지는 문헌에 따라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일연이 취하고 있는 戊辰說은≪資治通鑑外紀≫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李承休의≪帝王韻紀≫에서도 요의 즉위연대를 무진으로 보고 帝釋天의 손자 단군이 요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였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177)≪제왕운기≫에는 단군이 堯 원년 戊辰年에 즉위하여 殷 무정 8년에 퇴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단군의 건국은 기원전 2353년이 된다. 또≪世宗實錄地理志≫平壤府條와≪應制詩註≫에도 단군이 중국의 당요와 같은 날 즉위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東國通鑑≫에서는 무진년을 당요의 원년이라 하지 않고 25년이라고 하였다.178)이같은 견해는 西晋 皇甫謐의 唐堯 元年 甲子說에 의거한 것으로 25년은 戊辰이 된다. 檀紀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고려 恭愍王 10년(1361) 白文寶가 공민왕에게 개혁을 상주하면서 지금이 단군으로부터 3600년이 되어 周元의 기회가 되었음을 강조한 내용에서 볼 수 있다.179)≪高麗史≫권 112, 列傳 25, 白文寶. 이상에서 보았듯이 단군 관련 문헌에 나타나 있는 연대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원전 2300여 년 전이라는 시대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우리 나라의 史書에 나타나 있는 단군과 관련된 고조선의 연대는 중국 사서에 보이는 고조선의 시대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조선에 관하여 언급한 중국 기록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山海經≫과≪관자≫를 들 수 있다.≪산해경≫의 연대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친 시대를 포괄하고 있고≪관자≫의 내용도 기원전 7세기 것으로 전하지만, 실제 그 편찬 연대는 기원전 5∼3세기에 걸쳐 있어 구체적 연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어떤 자료에 근거해서 고조선의 출현시점을 논의하느냐에 따라 연대에 상당한 차이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래 우리 학계에서는 구체적 정치체가 등장하기 위한 전제요소인 農耕 및 靑銅器의 출현, 즉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와 연결시켜≪삼국유사≫등에 나타나 있는 단군 관련 연대를 신화적 성격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이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면 단군 관련 연대는 단순히 신화 차원의 그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내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단군신화의 내용은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담당한 고아시아족의 문화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곰숭배적 요소와 아울러 샤먼적 성격을 갖고 있는 단군의 존재는 고아시아족의 문화내용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비록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한 단계는 아니지만 단군 관련 연대는 결코 신화적 성격의 그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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