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Ⅱ. 고조선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요동지구의 청동기문화는 비교적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각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펼쳐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예컨대 遼寧 동부지구의 廟后山과 望花유형의 문화 등이 존재했으며, 瀋陽지역은 高台山·新樂上層·요령 북부지역에는 順山屯文化 등이 알려져 있다. 요령 남부지구의 경우 于家村과 雙陀子遺蹟을 들 수 있다.299)孫 力,<試談遼寧地區的商周文化>(≪北方文物≫85-3, 1985).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문화로는 구체적으로 적석묘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적어도 기원전 13세기는 될 것으로 보여진다.300)于家村 상층의 경우 3280±85, 3230±150이(≪考古≫80-4,≪文物≫79-12), 쌍타자 상층의 경우 3135±90의 연대가(≪考古≫72-4) 나왔다. 물론 이를 수륜보정한다면 기원전 15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와 문헌 자료 등을 참고한다면 대체로 13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이 시기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사회발전이 진행되어 씨족공동체 안에서의 빈부의 차이와 불평등관계가 보인다. 대표적 유적으로 절대연대가 기원전 13세기인 大連 우가촌의 砣頭積石塚을 들 수 있는데, 58개의 석곽이 한 적석내에 분포되어 있어서 같은 친족관계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 안에서 보이는 무덤간의 부장품의 차이는 재산상의 불평등 및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적석묘는 주로 요동반도지역에 한정되어 분포되어 있는데, 이후의 시기에서도 계속 사용되어, 崗上·樓上·臥龍泉 등 비파형동검을 반출하는 적석총도 존재한다. 이외에 고인돌의 존재도 비교적 최근에 확인되고 있는데, 이 시기의 고인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위 북방식(황해북도 연탄군 五德型 : 전형 고인돌)과 남방형(황해북도 황주군 沈村型 : 변형 고인돌)이라고 하는 것이 같은 시기에 공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301)중국에서는 五德型을 石棚, 沈村型을 大蓋石墓라고 한다. 遼寧 新金縣 雙房의 경우 두 묘제가 혼재한다. 적석묘가 요동반도에 집중되었던 것에 비하여 고인돌은 요동지역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蓋石墓(큰돌뚜껑무덤) 역시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비슷한 지역에 분포하는데 이들의 연대는 아직 절대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고인돌의 경우 청동기가 출토된 예가 없고 개석묘의 경우 많은 청동기가 반출되는 것으로 보아 적석묘가 더 일찍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서북지방과 한반도 전역에 존재하는 고인돌은 이보다 시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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