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Ⅱ. 고조선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이 시기가 되면 요동-서북지방의 문화는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고고학적인 문화에서 나타나는 지역성과 위만조선의 정치적인 강역을 어떻게 대비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즉 위만조선 및 후기 고조선(진개의 침략 이후)의 강역으로 생각되는 지역은 학자간에 이견이 있으나 대체로 요하 이동∼평양지역, 또는 압록강∼평양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의 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즉 요하 이동∼청천강까지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가, 평양지역은 세형동검문화가 발달하였다. 세죽리-연화보유형문화지역에서는 철제로 만든 농기구 및 무기가 많이 제작되고, 明刀錢이 대량으로 발견되나 무엇보다도 평양지역이나 남한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세형동검은 출토되지 않는다. 바로 전시기인 기원전 5∼4세기에는 윤가촌 등에서도 세형동검 1식(남한에서는 변형 비파형동검이라고도 함)이 보이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영향으로 기존의 문화가 상당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평양지역은 남한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세형동검이 제작되고 토광묘가 발달한다. 그러나 세죽리-연화보문화 지역과는 달리 명도전이 발견되지 않으며, 철기시대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장품에서는 청동장식이나 세형동검과 차마구 등 청동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 지역에서 철기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는 시기는 낙랑군 설치 이후이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문화에서 보이는 차이에 주목하여 청천강 이북지역만을 고조선의 강역으로 보거나,314)尹乃鉉,≪韓國古代史新論≫(一志社, 1986).
윤내현은 그 후에 그의 견해를 수정하여 한반도 전역을 고조선의 강역으로 보고, 그 남쪽 경계를 한반도 남해안에 이른다고 하였다(尹乃鉉,≪한국고대사≫, 삼광출판사, 1989).
평양지역의 세형동검문화만을 고조선의 것으로 인정하는 견해315)李淸圭, 앞의 글.
李鍾旭, 앞의 책, 147쪽.
가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질적인 두 문화가 하나의 정치적 집단을 이루기 어렵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견해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고고학적 자료를 가지고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는 실체에 대해 구체적인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속단을 내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첫번째로 문헌 자료를 보자.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자체가 이주민집단과 토착집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내부에서도 토착적인 문화와 이주민의 문화가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 즉≪史記≫朝鮮列傳에 나오는 王儉城의 위치로 알려진 평양지역에서 세형동검문화가 영위된 것은 토착적인 문화가 계속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천강을 경계로 명도전이 출토되고 있고316)명도전이 출토된 지역은 청천강 이북지역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위만이 교역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펼쳐나갔기 때문에 그러한 교역의 산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발전된 철기문화인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가 존재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준왕이 위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한 서변지역에서 중국의 선진적인 철기가 많이 쓰이는 이질적인 문화가 영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두번째로 고고학적으로 보아서 세죽리-연화보문화지역은 철기 이외에는 토착문화와의 관련성이 많다는 점과 세죽리-연화보유형문화의 철기가 남한지역에서 발견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317)長水 南陽里와 扶餘 合松里에서 세죽리-연화보유형의 鐵斧가 발견된 바 있다.

 고고학적인 문화가 곧바로 정치적인 영역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 문화까지가 고조선의 후기문화라고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동일한 문화를 영위하는 지역내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체가 존재할 수 있으며, 또는 문화적 성격이 차이가 나는 지역들끼리 하나의 정치적인 공동체로 묶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문헌에 보이는 정치적인 강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고학적 자료에 나타난 문화를 정치적인 실체로 간주하고, 그것을 다시 문헌 기록과 조화시키는 작업은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고조선 후기문화를 언급함에 있어서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와 평양의 세형동검문화를 살펴보겠다.318)물론 이것은 잠정적인 것이며 두 문화 모두가 고조선의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두 문화 모두 고조선의 문화일 가능성이 크고 아직 확정된 후기 고조선의 영역에 대해서 학자간의 통일된 견해가 없다는 것을 감안한 잠정적인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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