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1) 부여 명칭의 기원

 ‘夫餘’라는 이름은≪史記≫권 129, 貨殖列傳에 “燕이 북으로 烏丸·부여와 인접했다”는 기록에 처음 보인다. 부여의 명칭에 대해서는≪사기≫이전 문헌인≪山海經≫에 나오는 ‘不與’라는 표기를 부여로 보거나,358)리지린은≪山海經≫大北荒經의 “有胡不與之國”이라는 구절의 ‘不與’를 扶餘로 보았다. 그러나 不與와 扶餘를 같은 音으로 보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逸周書≫王會篇에 나오는 ‘符婁’가 부여라는 설359)何秋濤는 符는 夫餘를 말하며<王會>의 濊人이라고 보았다(何秋濤,≪周書王會篇箋釋≫권 下). 및 李巡의≪爾雅≫釋地와 邢昺의≪論語注疏≫에 나오는 ‘鳧臾’가 부여라는 설360)≪字匯補≫에는 “鳧臾는 동방의 나라 이름이며 곧 夫餘를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등이 있으나 사실 어떠한 명확한 논증은 없다. 또한≪尙書≫周官篇의 “武王이 이미 東夷를 정벌하니 肅愼이 와서 朝賀하였다”는 구절에 대해 孔安國傳에는 “海東의 여러 오랑캐 駒麗·扶餘·馯貊 등은 武王이 商을 이김에 모두 길을 통하였다”라고 하여 부여가 무왕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공안국전 자체가 남북조시대에 쓰여진 僞書라는 주장도 있고, 공안국전의 내용이 무왕대의 사실로 믿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부여에 관한 초기 기록으로는 신빙할 수 없다.361)盧泰敦,<扶餘國의 境域과 그 變遷>(≪國史館論叢≫4, 國史編纂委員會, 1989), 38쪽. 따라서 막연히 부여는 기원전 119년 한나라가 匈奴의 左地를 평정한 후부터 기원전 108년 이른바 漢四郡을 설치하기 전의 어느 시기에 출현했다고 보기도 한다.362)孫進己,≪東北民族源流≫(黑龍江人民出版社, 1987;林東錫 譯, 東文選, 1992, 232쪽).

 부여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부여의 원뜻이 밝(神明)에서 유래하여 개발→滋蔓→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로 변화한 데서 연유하였다는 설이 일찍이 제기된 바 있다.363)崔南善,≪兒時朝鮮≫(≪六堂崔南善全集≫2, 玄岩社, 1973, 159쪽). 그 근거는 부여의 중심지역이 송화강 연안의 동북평원 일대이고, ‘벌’이나 ‘부리’가 서라벌·古沙夫里 등 삼국시대의 지명 어미에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여족의 일파가 세운 고구려의 句麗라는 명칭이 ‘큰 고을’ 또는 ‘높은 城’을 의미하는 ‘忽’·‘골’·‘溝漊’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관련되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364)노태돈,<삼국의 성립과 발전>(≪한국사특강≫, 1990, 서울大 出版部), 52쪽. 이와 달리 부여는 사슴의 뜻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365)白鳥庫吉,<濊貊民族の由來を述べて, 夫餘高句麗及び百濟の起源に及ぶ>(≪史學雜誌≫45-12, 1934;≪白鳥庫吉全集≫3, 1970, 516쪽).≪資治通鑑≫의 부여 멸망기사에 부여의 원 거주지로 나오는 ‘鹿山’이 만주어에서 사슴(鹿)을 뜻하는 말인 ‘puhu’와 몽고어에서 사슴을 뜻하는 ‘pobgo’라는 말에서 비롯하였다는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鹿의 音이 ‘fu’로서 ‘夫’와 같은 음이라는 주장도 있다.366)武國勳,<夫餘王城新探>(≪黑龍江文物叢刊≫4期, 1983). 이 밖에 濊人의 ‘濊’는 ‘夫餘’ 두 자의 合音으로 부여는 ‘예’에서 왔다는 주장367)何秋濤는 “符는 곧 夫餘이고,<王會>의 ‘濊人’이다. …‘濊’는 곧 ‘夫餘’ 두 자의 合音이다”라고 하였다(何秋濤,≪周書王會篇箋釋≫권 下).이 있고, 최근 한 설은 부여는 강 河流의 이름에서 온 것으로서 嫩江 중류 동측에 烏裕爾河가 있는데 이 강을 金代에 蒲與라 칭했던 점으로 보아, 부여는 ‘포여’ 혹은 ‘오위르’의 同音異寫라고 주장하고 있다.368)이 주장에서는 烏裕爾河유역을 槀離國(또는 橐離國)의 원거주지로 보고 있다(佟冬 編, 앞의 책, 337쪽).

 이들 논의를 살펴보면, 부여라는 명칭의 기원에 관해서는 대개 평원·강이름·산이름 등에서 유래했다는 지리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개별 주장 모두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나 분명하게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로서는 선비·烏丸 등 북방 유목민족의 종족명이 대개 그들이 원래 거주한 山名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369)≪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부여가 처음에는 녹산에 거주했다는 사실과 이후의 역사인 발해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로 부여의 사슴을 들고 있는 점370)≪新唐書≫권 219, 列傳 144, 北狄 渤海. 등을 고려하면 부여의 명칭 또한 퉁구스어에서 사슴을 일컫는 buyu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