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2) 삼한의 정치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2) 소국연맹체의 형성

 읍락의 전통적 독자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에 불충분했던 소국의 정치 권력은 점차 그 한계가 극복되어 나갔다.≪삼국지≫동이전에 기원후 2세기 말엽 韓과 濊가 강성해서 낙랑군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많은 주민들이 한으로 유입되어 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때의 한은 경기지역의 한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이러한 정치·경제적 성장 과정이 이 지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삼국사기≫신라본기에도 逸聖尼師今 5년(138)에 金城에 政事堂을 설치하였다거나 沾解尼師今 2년(249)에 궁성 남쪽에 南堂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소국 전체의 중요 정사를 의논하고 처리하는 상설 통치기구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구의 출현은 초읍락적인 정치집단과 권력의 형성을 통해 가능하며, 그간 소국의 정치권력에 일정한 성장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력의 점진적 집중과 강화는 지배집단의 묘제와 유물 부장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2세기 말∼3세기 초엽을 기점으로 진변한 지배집단의 묘제가 토광목관묘에서 토광목곽묘로 바뀌면서 매장 주체부의 규모가 확대되고, 부장되는 철기의 양이 크게 늘어나면서, 특히 철제 무기의 부장량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그리고 3세기 이후가 되면 고분의 입지면에서도 대형묘들이 능선의 정상부를 점유하기 시작하면서 계층간의 위계관계가 분묘의 입지에까지 반영되고 지역적 차이가 확인된다고 한다.757)李盛周, 위의 글, 147∼148쪽. 이같은 분석 결과들을 문헌 기록을 통해 이해한다면 2세기 말∼3세기 초엽경에는 국읍과 읍락 사이에 상하의 위계관계가 확립되면서 국읍 주수의 정치권력이 초기 단계에 비해 크게 성장해간 증거라고 하겠다.

 소국의 대내적인 성장은 대외적인 팽창과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삼한 각 소국간의 상호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각 지역별로 정치적 구심체가 등장하면서 소국간에 새로운 결속관계가 형성되거나 또는 기존의 결속관계가 재편되면서 한족사회가 마한, 진한, 변한으로 분립하는 것이다. 마한지역 일부에서는 기원전 2세기 경 이미 세형동검문화 단계의 정치집단들을 다수 포괄하는 진국이라는 구심체가 있었으나, 기원전 1세기 이래의 정치·문화적 변동 속에서 기존의 결집력이 해체·약화되면서 개편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마한지역의 그간의 변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3세기 전반경 이 지역에서는 目支國 辰王을 중심으로 하는 마한소국연맹체와 함께 한강유역의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의 존재가 확인된다. 진왕 중심의 마한소국연맹체는 상대적으로 토착성이 강하고 성립 시기가 빠르다. 반면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는 2세기 이후 중국 군현과의 대응관계 속에서 성장 발전해나간 것 같다. 후한 말의 혼란기에 군현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경기도 북부의 정치집단들은 백제국을 중심으로 흡수 통합되어 갔다. 그러나 204년 경 帶方郡의 설치로 북쪽의 일부 집단들이 분할되어 나가고, 뒤이은 魏의 진출로(238) 백제소국연맹체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특히 246년 경에는 魏의 토착세력 분할정책에 대항하여 帶方郡 崎離營(황해도 평산)을 공격하여 대방태수를 전사시키는 무력 충돌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758)≪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이 때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백제국이었으며 韓 소국들을 통솔한 인물은 백제 古爾王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759)千寬宇,≪古朝鮮史·三韓史硏究≫(一潮閣, 1989), 242쪽.
그러나 이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辰王이며 이 충돌의 결과 辰王의 정치적 기반이 분해되고 중심지가 남부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盧重國,≪百濟政治史硏究≫, 一潮閣, 1988, 92쪽).
같은 해≪삼국지≫권 4, 魏書 4, 齊王芳紀의 “韓 那奚 등 수십 국이 種落을 거느리고 항복해왔다”는 기록에서 보이듯이 이 사건으로 인해 백제소국연맹체는 세력권이 크게 축소되는 타격을 입었다. 이 때 입은 타격으로 백제국이 河南으로 중심지를 옮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760)李賢惠, 앞의 글(1997), 22쪽.

 이와 달리 목지국을 맹주로 하는 마한소국연맹체는 중국 군현과의 사이에 일정한 완충지대를 두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목지국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仁川설,761)千寬宇,<目支國攷>(≪韓國史硏究≫24, 1989), 26∼29쪽. 충남 稷山설,762)李丙燾, 앞의 책, 243∼248쪽. 충남 禮山설,763)金貞培,<目支國攷>(앞의 책), 297쪽. 전남 羅州설764)崔夢龍,<考古學的 側面에서 본 馬韓>(≪馬韓百濟文化≫9, 圓光大, 1986), 12∼14쪽. 등으로 다양하다.≪삼국지≫동이전에 마한의 대표적인 세력으로 목지국의 진왕에 대한 언급만 있는 것은 진왕과 중국 군현과의 접촉관계가 오래거나 빈번했던 때문만은 아니며 군현과의 관계가 백제국과는 대조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국이 중심지를 한강 남쪽으로 옮기고 남부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가면서 辰王 세력과 경쟁관계가 조성되었다.765)≪三國史記≫ 권 23, 百濟本紀 1, 溫祚王 24·25·26년. 그러므로 백제국의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에서도 진왕은 중국 군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유리했을 것이다.766)伯濟國이 중심지를 河南 慰禮城으로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溫祚代설, 2세기 중엽 肖古王代설, 4세기 초 沸流王代설 등 견해가 다양하다(盧重國, 앞의 책, 57∼58쪽 참조). 그리고 마한소국연맹체는 결속 기반이나 구성면에서도 백제소국연맹체와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진왕은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다”라는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마한소국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과 진왕의 권력기반은 강압적인 위계관계에 기반을 둔 것이라기보다 아직도 완만한 상태의 결속관계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같고, 이러한 특징이 3세기 후반 이후 백제소국연맹체와의 대결에서 한계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2세기 후반 이후가 되면 경상도지역의 소국 집단들간에도 맹주국을 중심으로 소국연맹체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삼국지≫동이전에 진변한 24국 중 12국은 마한의 辰王에게 속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의 자료로는 합리적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리고 진한의 성립이 중국계 유이민의 정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767)≪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삼국사기≫의 기록이나 고고학 자료상으로도 진한소국연맹체 성립과정에서 중국계 유민의 역할이 중요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런데≪삼국사기≫에는 절대연대에는 문제가 있으나 3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로국이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정복해나간 기록이 있어 사로국을 맹주로 하는 소국연맹체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즉 진한이란 사로국을 맹주로 하는 12개 소국연맹체로 이해될 수 있겠다.

 변한 12국 역시 진한과 같은 소국연맹체를 형성하였는지 아니면 구야국을 맹주로 그 일부만이 소국연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변진조에만 유일하게 변진 12국 역시 왕이 있다고 하여 각 소국이 독자적인 정치단위체로 기능하고 있었던 듯한 표현이 있다. 그리고 3세기 후반 마한과 진한의 이름으로 韓의 토착 정치집단들이 晋에 사신을 파견하고 있는데768)≪晋書≫ 권 97, 列傳 67, 東夷. 변한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변진의 여러 소국들이 마한과 진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별성이 강한 정치집단으로 존속하고 있었던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변한은 마한, 진한과 같은 소국연맹체를 칭하는 것이라기보다 경상도 각지의 정치집단들 가운데서 진한소국연맹체에 속하는 12개의 소국을 제외한 나머지 12국과 다수의 小別邑들 즉 독자적인 읍락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달리 변진 12국 역시 구야국을 맹주로 소국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769)金泰植,<가야의 사회발전단계>(≪한국고대국가의 형성≫, 民音社, 1990), 69쪽.

 요컨대 지역별로 소국연맹체의 결성에 의한 확대된 政治體의 출현은 삼한사회 자체의 정치적 성장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이같은 정치적 성장은 사회·경제적인 성장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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