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4. 사회구조
  • 1) 신분제
  • (3) 호민

(3) 호민

 하급 지배층과 일반민 사이에는 양 신분과 접속되는 신분인 豪民층이 있었다. 이들은 국가의 관직을 갖고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도적인 경제력과 그들을 국가행정의 말초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한 국가의 보호를 바탕으로 일반 주민들에 대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들은 국가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채, 지방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투 추세 속에서 종전에 가지고 있던 지배력을 잃어가는 지방의 소족장의 후예들을 주류로 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국가권력의 지방통치에 적극 협력하여 지위가 상승한 자들 및 군공을 통하여 국가로부터 지위를 얻은 자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경우 촌주로 선출될 수 있는 지방유력자층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고구려의 경우 그 구체적 실례는<廣開土大王陵碑>에 나오는 國烟을 들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왕릉을 청소하는 자들이라고 보이는 看烟에 비해 그 1/10에 불과한 국연이라는 존재가 보인다. 이들은 명칭에서 이미 간연과는 다른 존재임을 보이고 있는 바, 그 숫적 비율에서 볼 때도 일반민으로 구성되는 간연보다는 상대적으로 상위의 신분층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전통적으로 士·庶의 구성비를 1 : 10으로 보고있는 바 국연을 이루는 이들이 평민들과는 구별되는 유력자층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같이 국가의 중요 직역―지방 촌의 유력자로서 조세수납 등에 협조하는 일, 아전으로서 지방행정 수행, 유사시 촌민으로 구성된 지방군의 지휘, 왕릉의 관리 및 제사의 일정부분의 책임분담 등―을 맡고 있는 이들은 고구려 국가통치의 말초신경과 같은 존재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다. 이들도 나름의 신분내 혼인을 하였을 것이며, 지방의 扃堂에서 글과 무예를 익히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들은 바로 이 호민들의 자제였을 것이다.

 이들은 대대로 보유하고 있는 농경지를 위시하여, 국가의 직역 수행이나 전공 등의 반대급부에 의하여 향촌에서 지도적인 지위와 경제력을 확보하고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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