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4. 사회구조
  • 2) 법률과 풍속
  • (1) 법률

(1) 법률

 사회와 국가를 지속적이고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제적인 법을 제정하여 사회성원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기 마련이다. 고구려에도 물론 법이 있었으며, 단편적이지만 조항의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의 국가적인 법체계 즉 律令은 소수림왕 3년(373)에 반포되었다. 그런데 이 때의 율령은 前秦과의 우호적인 교류 속에서 수입된 西晋의 泰始令이 모범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660)고구려 율령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로는 다음 글이 참고된다.
盧重國,<高句麗律令에 關한 一試論>(≪東方學志≫21, 1979).
그러나 이같이 중국에서 체제화된 율령이 국가운영에 적용되기 이전에도 물론 고구려사회에는 법률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율령체제를 갖추었다고 하여도 고구려사회가 처한 역사·문화·경제적 제조건이 있었던 만큼 법률의 내용 자체가 율령의 유입에 의하여 일신될 형편도 아닐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법률조항들의 편린들을 통해서 고구려사회 법률의 성격과 그것이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어떠한 변화상을 보였는지 보도록 하자. 이를 통해 고구려의 사회구조 나아가 사회상을 알아 보자.

 3세기 이전의 사회상을 전하고 있는≪삼국지≫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감옥이 없고 범죄가 발생하면 諸加들이 회의하여 곧바로 죽이고 그 처자는 노비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같은 책의 부여에 관한 사실에서는 좀더 자세한 관련조항이 보이고 있다. 즉 “형벌을 줌이 엄격하고 급하며 살인자는 죽이고 그 집사람들을 노비로 삼았다. 절도는 하나에 열둘로 갚도록 하며, 남녀가 잘못 정을 통하거나 부인이 妬忌하면 모두 죽인다”라고 하였다.

 잘 알고 있는 대로 고구려와 부여의 주민은 혈통이나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웠다. 따라서 두 사회의 관습법도 매우 유사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리란 추정을 할 수 있다.

 인용한 두 사회의 법관계 내용에서 적어도 고구려와 부여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리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고구려의 관련조항은 매우 간략하여 대비에 무리가 없지 않다. 그런데 삼국시대 후반의 상황이지만≪주서≫고려전에 의하면 고구려의 경우에도 도둑질에 대하여는 10여 배로 변상하였다는 조항이 전한다. 그리고≪구당서≫의 고려전에는 12배를 물리고 있었음을 전한다. 여기서 고구려의 국초에도 부여와 유사한 절도죄에 대한 변상법이 있었을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삼국사기≫중천왕본기에 의하면, 중천왕은 사랑하는 후비인 관나부인이 왕비에 대하여 투기한다고 하여 그녀를 부대에 넣어 강에 던진 사실이 있다. 이를 통해 보면 고구려의 전통적인 관습법하에서 부여와 같이 여자의 투기가 사형에 해당되는 죄로 여겨지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3세기 이전 부여와 고구려의 관습법이 거의 같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경우 제가가 평의하여 곧 사형에 처하던 범죄의 주류가 살인죄인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3세기 이전 고구려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관습법의 금지조항을 재구성해 볼 수 있겠다. 살인과 도둑질, 투기, 결혼한 남녀의 私通 그리고 고조선사회의 犯禁八條에 보이는 傷害에 관한 조항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人倫에 관한 것과 사회나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회성원간의 우의에 관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조항들은 국가성립 이전부터 있어온 관습법으로 당시 사회가 처한 역사적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공동체사회에서 계급사회 궁극적으로는 국가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경제현상인 사적 소유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간의 이익의 충돌에서 야기되기 쉬운 살인죄는 물론 절도죄에 대하여 엄격한 변상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이들 조항은 사회체제의 안정을 보장하는 기본장치이기도 하지만, 재산이 있는 지배층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가정이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인자의 가족원이 노비가 되어야 하는 연좌제는 물론이고, 결혼한 남녀의 사통이 엄금되고 있는 사실은, 사유재산제의 발달과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가정이 갖는 사회·경제적 주체로서의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재산소유의 주체가 되고 있는 가정이 사회적으로 각종 책임을 담당하는 최소단위로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여자의 투기가 엄금되는 사실도 남성(가부장)의 우위를 드러내주는 한편 가정의 안정도모라는 면을 가지고 있음도 물론이다.

 고구려의 발전은 소수림왕·광개토대왕 이후 비약적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소수림왕 때 고구려는 이미 중국에서 사용되어온 성문법체계를 받아들여 율령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영토의 확대와 다양한 종족을 지배하게 되고, 농업 등이 발전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에 다양하고 복잡한 정치·사회·경제·종족간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율령의 개정과 보완작업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체계적인 자료가 없는 만큼 단편적인 자료들을 재구성하여 법률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고구려 후반의 법률은 성문법적인 律令체제를 기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전반기와는 다르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역사체가 존속하는한 율령체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여 법률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일변할 수는 없었다.

 전해지고 있는 후반기의 법률조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주서≫나≪수서≫및≪구당서≫의 고려전에 의하면 형률로는 반역죄를 가장 먼저 들고 있다. 그 처벌 또한 혹독하여 ‘먼저 불로 태우고 이후에 목을 잘랐으며 그 집은 적몰한다’고 하였다. 또한 성을 지키다 항복하거나 적진에 임해서 패배한 장수도 사형에 처했다. 이같은 국가우선주의는 세금의 체납에도 적용되고 있었다.≪주서≫고려전에 의하면 ‘公私債를 갚지 못하게 되면 자녀를 노비로 팔아 갚도록 하는 것을 허락했음’을 알 수 있다. 공사채의 公債는 賑貸法에 의한 대여곡물의 미상환과 조세 체불이 주종을 이룰 것인데 이를 받아내기 위하여 채무자의 자녀를 노비로 팔게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전반기 5부에 의한 연합체로서의 성격이 강한 시기에는 사회적으로 주민들에게 크게 문제되지 않던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의무가 국가체제가 확립된 후기에는 가장 우선적인 의무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국초 이래의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관행들도 여전히 법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도둑질에 대한 10여 배의 변상이 그러하며 牛·馬를 죽인 자는 노비로 삼았다는661)≪舊唐書≫권 199 上, 列傳 149 上, 東夷 高麗. 조항에서도 확인된다. 살인이나 정조에 관한 법률도 여전히 유효하였다.≪구당서≫고려전에 의하면 살인자나 겁탈자는 목이 잘리웠다.

 이상에서 살펴본 고구려 법률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우선, 국초보다는 후반기에 보다 국가우선의 법률조항들이 보강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사유재산제의 보호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실이기도 하겠는데 경제·사회적 주체인 가정이 적극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아 고구려의 법은 응보율적인 엄격한 법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흔히 지배계급의 착취와 안녕을 보장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된다. 물론 이같은 이해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같이 엄격한 법체계는 고구려가 공동체단계의 역사로부터 발전하여온 지 얼마되지 않는 역사적 단계에 있었던 점에서 유래된 면도 있다. 지배·피지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만 공동체적 유대가 강하게 잔존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주민들로 하여금 마을이나 지방 그리고 국가 등 소속집단의 안녕과 영속을 위해 공동체단계 이래 요구되어온 전성원의 헌신적인 충성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구당서≫고려전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구려는 법이 엄하여 심지어 길에 떨어진 물건도 주워가지 않았다고 한다. 언뜻 보아서는 강력한 법치가 효과를 거두고 있는 사회상을 전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같은 점은 법이 엄해서라기보다는 주민간의 긴밀한 유대로 상호간에 재산상태 등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흘린 물건조차 주워가지 않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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