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1. 백제의 기원
  • 1) 백제 초기사를 보는 시각

1) 백제 초기사를 보는 시각

 백제 초기라고 할 때에는 3세기 중반의 고이왕 이전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4세기 중반 근초고왕 즉위 이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삼국의 초기 역사가 모두 그러하듯이 백제 초기사는 사료의 극심한 부족과 기사 자체의 신빙성 여부 때문에 구체적인 실상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백제 초기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전제에 대해서도 아직껏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견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견해들은≪三國史記≫의 초기 기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입장의 차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먼저 연속성 내지 계승성을 인정하는 견해이다. 즉≪三國志≫韓條의 馬韓 小國 중의 하나인 3세기 무렵의 伯濟國과 4세기 이후의 百濟와의 관계를 연속선상에서의 계승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 견해는 다시≪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반영으로 인정하는 긍정론001)千寬宇,<三韓의 國家形成(下)>(≪韓國學報≫3, 一志社, 1976).
李鍾旭,<百濟의 國家形成>(≪大丘史學≫11, 1976).
―――,<百濟王國의 成長>(≪大丘史學≫12·13, 1977).
―――,<百濟 初期史 硏究史料의 性格>(≪百濟硏究≫17, 忠南大 百濟硏究所, 1986).
崔夢龍,<漢城時代 百濟의 都邑地와 領域>(≪震檀學報≫60, 1985).
과 대략적인 추세는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연대나 왕실 계보에는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절충론002)金哲埈,<百濟建國考>(≪百濟硏究≫특집호, 1982).
盧重國,≪百濟政治史硏究≫(一潮閣, 1988).
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다음은 불연속성 내지 단절을 강조하는 견해이다. 4세기 중반 이후 급작스러운 발전을 이루는 백제의 왕실은 그 출자면에서 이전의 백제국과는 별개의 존재로서 만주지역에 존재하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세운 일종의 정복왕조라는 것이다.003)李基東,<百濟 王室交代論에 대하여>(≪百濟硏究≫특집호, 1982).
―――,<百濟建國史의 二, 三의 問題>(≪百濟硏究≫21, 1990).
李道學,<百濟의 起源과 國家形成에 관한 재검토>(≪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民音社, 1990).
―――,≪百濟集權國家形成過程硏究≫(漢陽大 博士學位論文, 1991).
이 견해는≪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렇듯 4세기 이전의 백제사는 기초 사료의 신빙성 여부로 인하여 연구자간에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는 마한 소국으로서의 백제국과 4세기 이후 백제와의 연속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해서는 절충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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