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3. 왜와의 관계
  • 3) 대왜관계의 성격

3) 대왜관계의 성격

 백제는 근초고왕대부터 왜와 접촉을 시작하였다. 그 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더 나아가서 부흥운동기까지 그 관계는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이루어진 백제의 대왜관계의 성격은 정치적·문화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여야 된다.

 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이들의 외교관계 자료에 등장하는「結好」「通好」「質[볼모]」등의 단어에서 대체적으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볼모」의 해석에는 주의를 요한다. 대개 人質이란 약소국에서 강국에 대해 볼모로서 파견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개념은 특히 중국의 고대 戰國時代에 유행했었다. 그러나≪삼국사기≫에서는 전국시대의「볼모」의 개념과 다른 성격인 외교적인 것도 일률적으로 인질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499)申采浩,<讀史新論>(≪改訂版 丹齋申采浩全集≫上, 1972), 497∼498쪽. 특히 전지의 경우는 인질외교가 아니라 당시 백제가 고구려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백제가 주도적으로 취한 군사외교였다.500)李基白,≪韓國古代史論≫(探求堂, 1975), 74쪽. 뿐만 아니라 부여풍을 인질로 왜국에 파견한 일이 있는데 이 또한 백제가 자주적으로 왜국의 대외정책을 백제의 사정에 맞추어 진행시키기 위해 파견한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통설이다.501)山尾幸久,≪日本國家の形成≫(岩波新書, 1977), 137쪽. 그러므로 백제와 왜의 정치적 관계는 시기에 따라 약간 소원한 때도 있었지만, 계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백제인들의 문화전수 활동으로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를 이루게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찍이 백제인들은 왜에 건너가게 되었고 이들은 학문과 불교, 그리고 각종 기술 등을 전수함으로써 왜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왜가 고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백제로부터 받아들인 문화적 요소들은 반드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왜는 고대국가 건설 이후에도 문화적 욕구를 주로 백제인들로부터 채워나갔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는 백제의 옛왕족과 귀족이 대거 일본에 건너가 거주케 됨으로써 문화적 전수관계는 끊이지 않고 이루어졌다.

 결론적으로 백제와 왜의 관계는 기본적인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전수자적인 성격으로 파악할 수 있다.

<兪元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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