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2. 지방·군사제도
  • 2) 군사제도
  • (1) 군사제도의 정비

(1) 군사제도의 정비

 백제가 자리잡은 한강유역은 지리적 환경에서 볼 때 동북지방과 서북지방의 문화가 접촉하는 중심지이고, 인구이동의 통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북으로는 중국 군현과 고구려세력, 동으로는 말갈로 표현되는 동예세력, 남으로는 신라세력들에 둘러싸인 형국이어서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였다.

 백제 초기에는 한강상류를 타고 내려오는 약탈경제적인 말갈세력과 한반도내에서의 통일적인 구심력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려는 중국 군현세력과의 대결이 빈번하였다. 그 후 중국 군현세력이 한반도에서 축출되고 고구려와 접경하게 되면서 고구려와의 싸움도 매우 잦아졌다. 그리고 신라가 진한지역을 통합하여 그 세력을 신장시킴에 따라 삼국 사이에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과 화호가 교차되었다.

 삼국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의 변화와 각국의 정세 변화에 따라 연합과 대결의 양상을 되풀이하였다. 그렇지만 웅진도읍기까지는 고구려의 강력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는 신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남진에 대처하는 양상을 보였다.

 백제와 신라와의 군사동맹은 웅진천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토대 위에서 성왕은 신라·가야군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쳐서 빼앗긴 한강하류지역을 일시 회복하였다. 그러나 한강상류지역을 차지한 신라가 백제를 배반하여 백제가 점령한 한강하류지역마저 차지하자 이에 분개한 성왕은 신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관산성전투에서 백제는 왕을 비롯한 3만에 가까운 군사가 전사하는 대패배를 당하였다.585)≪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진흥왕 15년. 이로써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백제와 신라 사이에 맺어진 동맹은 깨지고, 이후 삼국간의 관계는 이합과 집산이 되풀이되었다.

 삼국간의 전쟁은 삼국의 국가체제가 중앙집권화되고 영역이 광대해지면서 규모도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삼국의 군사제도도 보다 조직화되고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도 변화하였다. 백제가 소국단계에 있을 때는 군사활동이나 조직이 아직 소규모적이고 비체계적이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왕권이 안정되고 강화되면서 장수를 보내어 전쟁을 수행하게 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소국연맹단계에 오면 연맹 전체와 관련한 군사관계의 업무는 좌보나 우보가 담당하였다.586)≪三國史記≫권 23, 百濟本紀 1, 시조 온조왕 2년.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아직까지 군사권과 일반행정권이 구분되지 않아 좌보와 우보가 군사업무와 일반정사를 총괄하는 형태였다. 또 연맹을 구성한 각 소국의 수장들은 소국과 관련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군사권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중앙의 통제력은 그만큼 제약되었다.

 그러나 고이왕대에 와서 5부체제가 갖추어져 왕권이 보다 강화되면서 소국연맹단계에서 유지되고 있던 거수들의 자치력은 점차 해체되어져 갔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좌평의 설치와 좌장의 설치이다. 좌평은 종래의 좌보와 우보를 통합하여 만든 것으로서 정사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고, 좌장은 군사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좌평과 좌장의 설치로 일반 정사는 좌평이 관장하고 군사관계 업무는 좌장이 관장하게 되면서 정사와 군사권은 점차 분화되어 갔다. 특히 좌장의 설치는 소국 거수들의 군사권을 약화시켜 왕권이 일원적으로 군사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군사업무는 크게 군정권가 군령권으로 구성된다. 군령권은 출동부대를 지휘하는 권한으로서, 왕명을 받은 자가 출정에 임하여 행사하였다. 이 군령권에는 왕의 재가없이 상벌을 행할 수 있는 便宜從事權이 부여되고 있었고, 軍禮에 규정된 斧鉞이 수여되었다. 한편 군정권은 군사동원과 군량조달·축성·군사훈련 업무의 보조 등을 그 내용으로 하였다.587)군정권과 군령권에 대해서는 李文基,≪新羅 中古期 軍事組織硏究≫(慶北大 博士學位論文, 1991), 233∼253쪽.

 처음 좌장이 설치되었을 때는 군사업무는 분화되지 않았다. 그 후 병관좌평이 설치되면서 군정업무와 군령업무가 점차 분리되어 행사되었다. 군령권은 주로 좌장이 행사하였으나 때로는 왕명을 받은 고위귀족도 행사하였고, 군정업무는 병관좌평이 관장한 것 같다. 좌장이 군령업무를 관장하였다는 것은 좌장이 병마사를 위임받았다는 데서588)고이왕대의 좌장 眞忠과 眞勿이 병마사를 위임받고, 아신왕대의 眞武가 병마사를 위임받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三國史記≫권 24, 百濟本紀 2, 고이왕 7년·14년 및 권 25, 百濟本紀 3, 아신왕 2년 참조). 알 수 있다. 그리고 병관좌평이 군정업무를 관장하였다는 것은 병관좌평 解丘가 축성의 감독자로589)≪三國史記≫권 25, 百濟本紀 3, 전지왕 13년. 활동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