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4. 사회 구조
  • 2) 법률과 풍속
  • (2) 풍속

(2) 풍속

 마한의 연맹국 중 하나였던 伯濟는 한강변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북쪽은 浿河(예성강)에서 동쪽은 走壞(춘천), 남쪽은 熊川(안성)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초기 백제어의 발원으로 인정되는 부여어(고구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성립되었다. 그 남쪽은 원시 한반도어로 보이는 알타이계 퉁구스어에 古아시아어가 관련되어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또한 이와 관계가 있고 한반도의 기층어에 속한다는 마한어를 사용한 문화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근초고왕이 마한 전역을 통합한 4세기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두 개의 언어문화권이 병존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따라서 마한과 백제라는 두 개의 다른 사회풍속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결국 마한풍이 백제사회에 흡수 혼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두 사회의 다른 풍속사를 사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가려내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과의 적극적으로 교류가 시작된 이후 중국측에서 백제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결국 남조의≪梁書≫백제전부터 단편적이나마 구체적인 백제의 사회풍속사가 전해지게 된 것이다.773)≪梁書≫권 54, 列傳 48, 諸夷列傳東夷, 百濟.

 ≪삼국지≫위지 韓傳의 廉斯鑡사건이774)≪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미 漢郡縣시대 그들 통치 밖에 있었던 남쪽의 韓사회에는 고조선의 유민집단에 의한 유풍과 더불어 한군현을 통하여 중국측 사회풍속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남북조시대부터 시작된 활발한 교류의 결과≪양서≫·≪주서≫및≪수서≫·≪구당서≫·≪신당서≫등의 백제전에 의하면 학술과 풍속에서 잡희·오락에 이르기까지 백제에서 부여나 고구려사회보다 중국측 사회풍속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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