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2. 성립과 발전
  • 2) 성립
  • (2) 사로국의 형성

(2) 사로국의 형성

 6촌이 연맹체를 형성하여 사로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박혁거세로 대표되는 박씨족의 등장으로 말미암는 것이라 생각된다. 박씨족 이외에도 신라의 왕족에는 김씨족과 석씨족이 있는데, 이들 三姓 집단의 모두 또는 그 일부가 이주민 세력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3성 집단과 6촌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먼저 토착족으로서 김씨족이 먼저 경주에 先住하였고 그보다 뒤에 박씨족이 이동해 와서 二部體制를 형성하고 후에 사로국으로 발전하였으며, 탈해를 시조로 하는 석씨족은 경주의 동해변에서 온 이주민이라고 본 견해가 있다.056)金哲埈, 앞의 글(1952), 44∼46쪽. 또 이와 비슷하게 경주 最古의 선주민은 김씨족으로, 뒤에 박씨족이 도래하여 세습왕권을 잡아 김씨를 왕비족으로 하였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하나, 탈해는 북방의 흉노계의 인물로 후대의 석씨족과는 별개이며, 벌휴왕 이하의 석씨족은 반도 중부의 舊辰國에서 2세기 말경에 이르러 경주에 도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057)千寬宇, 앞의 글, 18∼46쪽. 이들 연구에서는 3성 집단을 구체적으로 6촌이나 6부와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058)李丙燾는 及梁部(閼川 陽山村)를 朴氏, 沙梁部(突山 高墟村)를 金氏, 本彼部(嘴山 珍支村)를 昔氏와 연관지었으며(李丙燾, 앞의 책, 1976, 605∼607쪽), 金哲埈은 급량부가 김씨와 박씨의 2부체제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석씨족은 漢岐部(金山加利村)와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金哲埈, 앞의 글, 29쪽). 千寬宇는 급량부를 김씨, 사량부를 박씨로 보고 本彼部는 박씨 아니면 김씨나 혹은 별개의 씨족이고, 나머지 3부는 김씨에 예속된 것으로 보았다(千寬宇, 앞의 글, 22쪽).

 그러나 이와는 달리 3성세력을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시기와 위치를 달리하면서 각자의 소국을 세운 주체세력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이들이 소국을 세운 곳은, 석씨족은 감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이며, 박씨족은 상주를 중심으로 하여 沙伐國을 세웠고, 김씨세력은 경주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鷄林國을 세웠으며, 6촌은 기본적으로 경주지역에 있었던 6개의 읍락이었으나 사벌국세력인 박씨세력이 경주로 이주하게 되면서 혁거세의 건국설화와 연결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059)盧重國,<鷄林國考>(≪歷史敎育論集≫ 13·14, 1989), 169∼203쪽.

 신라의 건국설화를 보면 혁거세를 대표로 하는 박씨족은 최초로 경주지역에 등장한 사로국의 지배세력이며,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유이민 세력임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박씨족이 사로 6촌의 어느 한 촌락과 연결이 되는지 아니면 6촌세력과의 타협 속에 지배자로 등장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김씨족은 흔히 이들보다 선주한 유이민 집단으로 생각하지만, 이들과 6촌세력과의 관계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성립된 사로국의 최초의 長인 혁거세의 칭호는「居西干」이었다. 거서간의 구체적인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사로 6촌의 촌장들에 의해 추대된 부족장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혁거세를 이어 사로국의 장이 된 南解를「次次雄」으로 불렀는데, 차차웅은 慈充이라고도 하며 이에 대해 金大問은 “方言으로 巫를 일컫는다. 무당이 귀신을 섬겨 제사를 주관하므로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마침내 尊長者를 칭하여 자충이라고 하였다”고 설명하였다.060)≪三國史記≫권 1, 新羅本紀 1, 남해차차웅 원년. 그러나≪삼국유사≫에서는 “남해거서간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한다”061)≪三國遺事≫권 1, 紀異 2, 第二南解王.고 거서간과 차차웅을 혼용하고 있음으로 보아, 거서간과 차차웅은 그 기능이나 성격이 유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당시의 사로국의 장은 어느 정도 제사장의 성격을 띠고 있었을 것이니, 이는 神政政治(Theocracy)的인 성격을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062)尼師今時代의 이사금들 중에서도 巫的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가 있으니, 탈해가 물을 떠오다 먼저 마신 白衣를 呪術로 혼냈다고 한 것이나(≪三國遺事≫권 1, 紀異 2, 第四脫解王), 伐休가 점을 잘 쳐서 그 해의 豊凶과 사람의 邪正을 미리 알았다는 것(≪三國史記≫권 2, 新羅本紀 2, 벌휴니사금 즉위년) 등이 그 예이다.

 혁거세와 남해가 사로국의 지배자로 활약하고 있을 무렵 탈해로 대표되는 석씨계의 세력도 경주지역에 출현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전하는 그의 설화에 의하면 그는 원래 倭國의 동북 1천 리 되는 곳에 있었던 다파나국 출생으로 금관국을 거쳐 경주의 동쪽 해안에 이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瓠公의 집을 빼앗아 살다가 남해의 사위가 되어 大輔란 벼슬에 임명되었다고 한다.063)≪三國史記≫권 1, 新羅本紀 1, 탈해니사금 즉위년.

 ≪삼국유사≫에는 이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탈해집단은 먼저 금관국으로 들어갔으나 거기에서 용납되지 못하므로 사로로 옮겼으며, 이들은 철기를 제련하는 冶鐵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064)≪三國遺事≫권 1, 紀異 2, 第四脫解王. 아마 이들은 먼저 이 지역에 도착한 박씨족에 비해 보다 발달한 철기제작 기술을 소유하고 이주한 집단이라고 생각되는데, 박씨족과의 제휴속에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설화에서 탈해를 해양세력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탈해의 성격이 冶匠적인 것이고 또≪삼국사기≫의 탈해왕대에 처음 騎馬전투가 보이는 까닭에065)≪삼국사기≫권 1, 新羅本紀 1, 탈해니사금 8년 8월. 또 탈해니사금대의 변방의 장수인 居道는 군사를 모아 놓고 말을 타고 노는 ‘馬叔’이란 행사를 통해 居柒山國과 于尸山國의 두 나라를 정벌했다고 하는데(≪三國史記≫권 44, 列傳 4, 居道), 여기서 마숙이란 주로 騎馬 기술을 겨루는 놀이라 생각된다. 이로 보아서도 당시에 이미 기마전투가 보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의 계통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이주 경로가 한반도의 내륙지방을 관통한 것이 아니라, 바다로 남해안을 거쳐 경주의 동쪽 해안으로 상륙한 까닭에 이러한 설화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탈해가 재위기간 중에 토함산에 순행했다는 것이나,066)≪三國史記≫권 1, 新羅本紀 1, 탈해니사금 3년 3월. 탈해가 죽은 뒤에 그의 뼈로 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안치하고 東岳(吐含山)신으로 모셨다는 기록 등067)≪三國遺事≫권 1, 紀異 2, 第四脫解王.은 모두 그의 이동 경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탈해로 대표되는 석씨족은 혁거세의 박씨족에 비해 한층 발달된 철기문화와 기마전투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 탈해왕대에는 인근지역과의 전투기록이 빈번하게 보이고, 于尸山國과 居柒山國의 두 나라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백제와의 교섭·전투 기사도 보이는데, 이 기록들은 그 연대에 관하여는 많은 의문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탈해니사금대에 신라는 소국의 단계를 벗어나 인근 지역에 대한 정복에 나서기 시작하는 등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탈해니사금은 남해의 사위로 그 아들인 유리와 왕위를 다툴 때 유리가 이(齒)가 많아 먼저 왕위에 올랐다는 설화는068)≪三國史記≫권 1, 新羅本紀 1, 유리니사금 즉위년. 연맹체의 부족장들이 모여 부족의 장을 선출하던 전통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경우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연맹장으로 선임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등한 후보자들 사이에서 연맹장을 선출할 때 年長者를 우선하였다고 보아진다. 이는 氏族社會 이래로 血緣關係에서 우위를 점하고 연령에 따른 풍부한 경험을 가진 자를 지도자로 선정하던 長老政治(Gerontocracy)의 성격이 남아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사금시대의 왕위는 가장 유력한 부족의 출신 중에서도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 선임되었을 것이지만, 박·석·김 3성의 交立이나 벌휴니사금이나 나해니사금이 국인에 의해 共立되었다고 전해지는 것들은 이러한 선출과정이 지속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초기의 사로국에서는 몇몇 유력한 부족의 우월성이 인정되기는 하였으나, 아울러 각 연맹체가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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