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Ⅱ. 신라의 융성
  • 2. 정치체제의 정비
  • 4) 법흥왕대
  • (2) 군사제도의 정비

(2) 군사제도의 정비

 신라 군사제도의 본격적인 정비는 진흥왕대에 大幢의 설치에서 비롯한다고 하겠으나, 진흥왕대의 군사제도 정비의 토대는 이미 법흥왕대에 마련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바로 병부의 설치가 그것인데208)≪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법흥왕 4년 4월. 이는 문헌자료에 보이는 최초의 신라의 관부라는 점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신라의 초보적인 군사제도는 이미 자비마립간대에 左右將軍의 설치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이 장군직의 설치는 군사권을 왕권의 아래에 집결시키려는 목적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장군이 이끄는 병사는 대개 6부인으로 이루어진 6부병이 근간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증왕 이후 특히 법흥왕대에 와서는 대규모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을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209)신라 군사력의 규모는 奈勿王代까지만 하더라도 불과 5천 명 정도였으나 이로부터 약 2세기 후인 眞興∼武烈王代에 이르러서는 약 10배나 되는 5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李宇泰,<新羅 三國統一의 一要因-對地方民 政策을 中心으로->,≪韓國古代史硏究≫5, 1992, 79∼84쪽). 이러한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규모의 지방민을 대상으로 한 군사제도의 개편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병부의 설치는 軍政과 軍令을 분리시킴으로 인해 연맹단계 이래의 兵權의 분산성을 극복하고 이를 왕권하에 통속시키기 위한 조처로도 이해되고 있는데, 법흥왕대의 병부의 내부조직에는 법흥왕 10년(523)에 설치된 監舍知와 11년에 설치된 軍師幢主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210)盧重國,<法興王代의 國家體制의 强化>(≪統一期의 新羅社會硏究≫, 東國大 新羅文化硏究所, 1987), 49∼57쪽. 그런데 이 중에서도 군사당주는 군사라는 지방인에게 주어진 군직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지방의 군대를 통솔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때에 이미 지방민을 근간으로 하는 군사조직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冒頭에 法字를 쓰는 군단 즉 法幢軍團의 조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법당군단의 조직이나 구성에 대하여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으며,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차도 심한 형편이다.211)法幢軍團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井上秀雄,<新羅兵制考>(≪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1974).
京俊彦,<新羅の法幢について>(≪朝鮮史硏究會會報≫55, 東京, 1979).
武田幸男,<中古新羅の軍事的基盤-法幢軍團とその展開->(≪西嶋定生還曆紀念 東アジアにおける國家と農民≫, 山川出版社, 1984).
盧重國, 앞의 글.
李仁哲,<新羅 法幢軍團과 그 性格>(≪韓國史硏究≫61·62, 1988).
법당군단의 성립에 대해서는 대개 법흥왕대 내지 진흥왕대로 보고 있는데, 法幢의「法」이란 글자와 관련지어 이를 법흥왕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리라 여겨진다.212)武田幸男, 앞의 글(1984). 그리고 법당군단은 그 성격상 지역과 관련된 부대와 특수 무기를 사용하는 부대의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지역과 관련된 부대 중에서도 外餘甲幢과 外法幢은 군관의 수로 미루어 보아 52邑勒에 설치된 부대로 생각된다.213)外餘甲幢의 군관의 숫자(法幢主 52, 法幢監 68, 法幢火尺 102)와 外法幢의 군관의 숫자(法堂頭上 102, 法幢主 306)로 보아 이들이 동일한 지역에 존재하였음은 분명하다고 생각되며, 그 지역은 바로 52邑勒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외여갑당의 군관의 숫자를 살펴보면 법당주 52인은 52읍륵에 한 명씩 배치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그 배수에 해당하는 법당화척 102명은 당주 1명에 2명씩 배정된 것으로 짐작된다.

 법당군단은 6停과 함께 신라 중고기의 가장 핵심적인 군사조직인데, 이들 부대의 조직이 주로 지방민을 그 성립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법흥왕대에는 율령의 반포와 지방통치조직의 강화를 통해 전국적인 군사력의 동원이 가능한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음의 진흥왕대에는 비약적인 영토의 확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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