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Ⅱ. 신라의 융성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2) 왕권의 강화
  • (3) 화랑도

(3) 화랑도

 진흥왕대에 제도화된 花郞徒도 신라가 고대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다. 화랑도의 기원은 원시시대 이래의 연령집단조직이라 생각되는데, 연령집단이란 일정한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로 구성되어지며 청소년들은 이를 통해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을 수행하며 그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體得하고 동일한 이상을 추구하며 가무와 무예를 익혀 서로간의 이해와 우의를 맺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246)李基東,<新羅 花郞徒의 起源에 대한 一考察>(앞의 책), 305∼328쪽.

 이 연령집단은 村落 내지는 부락단위로 조직되고 그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세계의 형성 또한 일정한 제약을 받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신라가 대내외적인 팽창을 하는 가운데 정복전쟁의 수행을 위해 많은 병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청소년 조직의 개편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화랑도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군대의 보충을 제1차적 목적으로 하였으나 보다 큰 목적은 인재의 양성과 확보에 있었다. 金大問의≪花郞世紀≫서문에서 “현명한 재상과 충신이 이로부터 솟아나고 훌륭한 장수와 용맹한 군졸들이 이로 말미암아 나왔다”247)≪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진흥왕 37년.는 것은 바로 화랑도의 창설 목적과 그 기능을 잘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 이 화랑도에 불교 승려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예가 보이며,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때로는 화랑을 彌勒의 화신으로 여기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화랑도의 정신적 기반으로 불교가 채택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화랑도의 수령인 화랑은 도솔천에서 하생한 미륵으로 여겨졌으며 그 무리들은 미륵을 좇는 무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화랑도가 신앙운동이 목적인 단체는 아니었으며, 그 조직 자체는 어디까지나 현실과 왕권과 권력기구를 옹호하는 단체였다.248)李基東,<新羅 花郞徒의 社會學的 考察>(앞의 책), 328∼365쪽. 이는 화랑도가 지켜야 할 계율인 원광의 世俗五戒에도 잘 나타나 있다. 화랑도의 설치는 정치적인 면에서 중앙집권화 즉 왕권강화와 연결되어 전개되었던 것이다.

<李宇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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