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2.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남조와의 통교가 중단되고 난 후 왜국에서는 6세기 초 繼體(케이타이)천황이 즉위하여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었다. 계체천황은 선진 문화·물산 등을 수용함으로써 왕권을 안정시키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백제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백제 武寧王은 재위 13년(513)부터 대가야지역에 대한 진출을 꾀하면서 왜국을 백제측에 끌어들이기 위해 계체조정에 오경박사를 파견하여 선진문물을 전하였다.

 대가야는 백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국과 교섭을 벌였으나 왜국의 친백제정책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522년 신라와의 通婚정책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신라도 가야지역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표출하였으므로 法興王 16년(529)경 양국관계는 끝나게 되었고, 나아가 신라는 같은 왕 14년에 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金官國과 㖨己呑을 공격하였으므로, 安羅를 비롯한 가야의 국가들은 왜국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筑紫國造 磐井(이와이)의 반란으로 인해 왜국은 계체천황 22년(528)에야 近江毛野臣(오우미노케누노오미)을 안라에 파견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529년 金官加耶는 신라에게 침략당하였고 530년 안라에는 백제군이 진주하였다.

 백제는 聖王대에 더욱 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성왕 16년(538)에는 왜국에 佛像과 經論을 보내고 22년에는 금관가야의 부흥을 명분으로 내세워 왜국의 군사력을 끌어들여 고구려와 신라에 대항하려 하였다. 왜국은 군대와 군사물자를 백제에 제공하는 대가로 선진문물의 전수를 백제측에 요구하였다. 그 결과 성왕 32년 백제는 五經博士·易博士·曆博士·醫博士·採藥師 등을 왜국에 파견하였고 왜국은 병사 1,000명과 말 100필, 배 40척을 백제에 보냈다. 그러나 그 해 성왕이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신라는 가야지역에서 우위를 확보하였고, 眞興王 23년(562)에는 대가야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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