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Ⅵ. 가야의 성립
  • 3. 가야 제국의 성립
  • 3) 존재 형태

3) 존재 형태

 ≪三國志≫魏書 韓傳은 낙동강 유역에 김해의 가락국과 같은 소국들이 널리 존재한 이후인 3세기 전반의 상태를 서술하고 있다. 이제 그 기록을 통하여 변진 12국, 즉 가야 소국들의 존재 형태를 추론해 보자.

 3세기 전반 당시에 변진 12국은 각기 2,000戶 정도를 지배하는 독립세력이로되 상대적인 규모의 차이는 존재하는 상태였으며, 이러한 상태는 마한 50여 국이나 진한 12국의 경우에도 대략 비슷하였다. 사회단계를 논하는 데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인구의 규모 그 자체보다도 그를 통제하는 방법의 성격이겠지만, 인구 규모의 증가에 의한 압박이 그 내부의 통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구 규모의 문제도 중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소국당 2,000호라는 규모는 하나의 고대국가로 보기에 조금 미흡하지 않을까 한다. 그 중에서 한 나라의 戶數의 최대치인 5,000호와 최소치인 600호의 경우에 그 차이는 무려 8∼9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규모의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를 동일한 성격으로 서술한 것은 그 내부 구조의 동질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독립적 정치집단인 변진 소국들의 내부 구조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변진의 경우 이 문제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삼한의 대외적인 존재 형태나 규모가 대략 비슷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마한의 자료도 포함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한의 경우 國邑에 비록 主帥가 있으나 邑落들이 잡거하여 서로 잘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보아 소국 내부의 권력이 국읍을 포함한 다수의 읍락집단에게 분산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713)李賢惠,≪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一潮閣, 1984), 104쪽. 다만 변진한에서는 길을 양보하는 습속이 있었다 하고, 변진에서는 그 법속이 특히 엄준하였다 하므로, 변진 소국의 정치 기강 즉 국읍의 우월적 지배가 마한보다 좀더 확립되어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이 변진 소국들의 경우도 그 권력이 국읍 주수에게 독점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 있어서 각 읍락의 渠帥들에게도 상당한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기본 성격까지 차이가 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구슬을 귀하게 여겨 몸에 치장한다 하므로 이미 사치품을 선호하는 귀족계급이 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은·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므로 그들의 사치품 수요는 중국 물품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가 아니라 자생적 계급 성장에 따라 유발된 것이었으며, 아직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 안에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을 쌓고자 할 때 年少勇健者들이 고역을 치렀다고 하는데, 이는 소국 단위에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관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인력을 동원하는 체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고 국읍내에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는 주수와 달리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있었다고 하므로 소국 지배권력의 성격이 초기 왕권의 神權的 또는 제정일치적 성격에서 진일보한 제정분리 단계의 것이나, 아직 그 기본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초월적인 왕권을 구축하지는 못한 단계라고 생각된다.

 즉 각 소국은 그 안에서 국읍과 읍락간의 중층구조를 이루면서 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미약하나마 귀족계급이 형성되어 있고, 행정권력에 의한 인력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지배권력의 성격은 제정분리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 등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읍의 주수가 각 읍락의 거수들로부터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고 또한 천군의 종교적 권위를 초월하지 못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각 소국은 자기가 통합하고 있는 지배영역의 범위를 쉽사리 확장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3세기 전반의 변진 소국들은 문헌자료를 통하여 볼 때 내부 구조적으로 정복 활동을 통하여 영역을 확대하고 이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고대국가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그에 이르기 이전의 단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金泰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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