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369년 가야 7국이 백제와 상하관계를 맺은 직후부터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는 전쟁이 본격화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369년부터 389년까지 20년간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는 전후 8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은 거의 고구려의 先攻에 의한 것으로789)≪三國史記≫에 의하면 이 기간에 8차의 싸움이 있었고, 그 중에서 5번이 고구려의 선공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가 양국간에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던 대방·낙랑을 멸망시킨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백제로서는 가야는 신라나 야마토왜와의 관계의 전제가 될 뿐만 아니라 대고구려전의 배후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고구려와의 대립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가야를 직접 후방기지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있던 신라의 압박을 받고 있던 가야로서도 신라의 압박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백제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바로 이런 때에 가야와 백제의 관계가 심화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서기≫신공기 62년(382)조에 의하면 신라가 야마토왜에게 불봉하므로 야마토왜가 임오년(382)에 신라를 치려했으나 신라가 미녀를 바치자 신라를 치지 않고 오히려 가야를 쳤다는 것이다. 이에 백제로 피난한 가야왕이 사람을 보내서 야마토왜에게 구원을 청하므로 야마토왜가 백제의 장군인 목라근자로 하여금 가야의 사직을 부활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신공기 62년조에는 가야가 야마토왜의 침략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주위에서 고령가야에 침입할 만한 세력은 신라와 야마토왜밖에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야마토왜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한반도 남부지역을 건너뛰어 내륙의 고령가야를 침략할 수 없었다고 생각되므로 이 때 가야를 침략한 세력은 바로 이웃에 있던 신라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한편 신라의 침입에 대해서 고령가야의 왕이 몸은 백제로 피난해 있으면서 구원은 야마토왜에게 요청했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그런데 고령가야의 왕이 피해 있던 곳이 백제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고령가야를 구원한 것이 백제의 장군인 목라근자이고 백제는 지리적으로도 고령가야와 이웃하고 있었으며 백제와 고령가야는 이미 상하관계에 있었던 만큼 당시 고령가야가 구원을 요청하고 이에 응해서 고령가야를 구원한 나라는 야마토왜가 아니라 백제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가야지역을 후방기지화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던 백제가 고령가야의 구원요청에 목라근자를 보내서 구원해 준 것도 당연한 처사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382년에 가야구원군이 백제에서부터 출동한 것으로 보아서 당시에는 아직 백제군이 가야에 상주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라의 침입을 받은 가야왕이 백제로 피난을 하고 백제의 구원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됨에 따라서 369년 이래의 백제와 가야와의 형식적인 상하관계는 이 때에 이르러 실질적인 상하관계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한편<광개토왕릉비>에 보이는 400년과 404년 백제가 끌어들인 야마토왜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고령가야는 야마토왜에게 대고구려전의 전진기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382년 이래 고령가야는 실질적으로 백제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고령가야는 백제와 대립관계에 있던 고구려의 남하에 따른 제일의 피해자였다. 따라서 고령가야는 고구려와 싸우고 있던 백제와 그 지원세력인 야마토왜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결국 고령가야가 야마토왜에게 대고구려전에서 전진기지를 제공한 것은 백제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고령가야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것은 또한 백제로 하여금 고령가야의 예속을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369년 이래 백제와 상하관계를 맺고 있던 가야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친 신라의 침입과 고구려의 남하에 대항해서 더욱 백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가야와 백제와의 형식적인 상하관계는 실질적인 상하관계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고령가야는 백제의 직접 구원을 받고 야마토왜에게 전진기지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백제와의 관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탁순을 제치고 백제와의 관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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