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Ⅱ. 불교와 도교
  • 1. 불교
  • 1) 고구려의 불교
  • (2) 교학의 발전

(2) 교학의 발전

 먼저 三論宗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삼론종이란 鳩摩羅什이 번역한≪中論≫·≪百論≫·≪十二門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성립된 학파다. 삼론의 주요 사상은「中道」의 실체를 바르게 드러내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다. 모든 존재는 현상적인 측면에서 보면「有」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존재는 因緣이 임시로 만나 형성되었기 때문에「假有」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가유」로서 현존하는 실체이므로「假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本體面에서 본다면 그것은 아무런 自存的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空」이다. 모든 것은 空因緣으로 생성된 것이다. 요컨대 삼론종은 有·假·空의 논리를 형성하여 空·假·中의 眞諦를 체득케 하는 학문이다. 중국에서 삼론종이 성하였던 시기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 한 세기 동안이었는데, 고구려에서도 삼론종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의 攝山 棲霞寺에서 살았던 僧朗은 중국 삼론종의 기초를 닦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중국 삼론종을 대성한 吉藏은 승랑을 언제나 마음 속으로 師事하여, 승랑의 학설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켜 나갔다.048)金芿石,<高句麗 僧朗과 三論學>(≪白性郁博士頌壽紀念 佛敎學論文集≫, 1959).
金芿石,<僧朗을 相承한 中國三論의 眞理性>(≪佛敎學報≫1, 1963).
柳炳德,<僧朗과 三論思想>(≪嵩山朴吉眞博士華甲紀念 韓國佛敎思想史≫).
길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승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섭산의 고려 승랑대사는 원래 요동사람인데, 北으로 올라와 멀리 羅什師의 義를 익히고 南土에 들어가 草堂寺에 주석하였다. … 梁武帝는 三寶를 敬信하여 오다가 대사가 왔다는 말을 듣고 僧正과 智寂 등 十師를 보내어 배우게 하였다(≪大乘玄論≫上).

 고구려 승 義淵은 大丞相 王高德의 청으로 北齊의 法上(495∼580)에게 가서「佛法의 始末緣由」와 「十地·地論」등에 관해 물었다.049)≪續高僧傳≫권 8, 法上傳.
≪海東高僧傳≫권 1, 義淵.
법상은 慧光 門下 十哲의 上首로서 十地·地持·楞伽·涅槃 등의 經論을 강의하고, 북제 文宣帝의 존숭을 받아 昭玄大統이 되어(551) 僧尼를 다스렸던 고승이다. 의연이 법상에게 문의한 것은 왕고덕과 같은 당시 고구려 識者層의 관심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불법의 始末에 대한 법상의 답변 가운데, “周昭王 24년 甲寅歲에 부처님이 탄생하셨다”고 하는 연대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佛紀와 일치하고 있어, 우리의 불기 기원이 이로부터 말미암고 있음을 알 수 있다.050)高翊晉,≪韓國古代佛敎思想史≫(東國大, 1989), 117쪽.

 수나라와 당나라 초기에 이름을 떨친 중국승 靈睿(565∼647)는 581년쯤 蜀나라에 들어가 고구려 출신 印法師로부터 삼론을 듣고 인법사의 제자가 되어 大乘敎學을 배웠다. 또 중국승 慧持(575∼642)는 고구려의 實法師에게서 삼론을 배웠다.

 고구려 沙門 智晃은 북중국 攝論宗의 開宗祖인 曇遷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지황은 특히 薩婆多部에 능하여 유명하였다고 한다. 고구려 승 파야(波若)는 중국 천태산에 들어가 天台宗의 창설자 智顗(538∼597)에게서 敎觀을 전해 받고 神異로써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이들 고구려 승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각각 중국 고승의 전기에 조금씩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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