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Ⅱ. 불교와 도교
  • 1. 불교
  • 1) 고구려의 불교
  • (5) 백제·신라에서 활약한 승려들

(5) 백제·신라에서 활약한 승려들

 삼국의 승려들은 政事에 있어서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고구려 승 道琳은 백제를 쳐서 先代에 빼았겼던 땅을 되찾고자 하는 長壽王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密使를 자청하여 백제로 갔다. 도림은 本國에서 죄를 짓고 도망왔다고 속여 바둑을 좋아하는 蓋鹵王에게 접근하였다. 바둑을 두면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림은 개로왕을 꾀어 성을 쌓고 궁전을 수리하는 등의 役事를 일으키도록 하였다. 이에 나라의 창고가 다 비고 인민이 곤궁한 틈을 타서, 장수왕은 그 63년(475)에 漢城을 공략하여 왕을 죽이고 남녀 8천 명을 사로잡아 갔던 것이다.

 신라의 귀족으로서 名將인 居柒夫는 眞興王 6년(545)에≪國史≫를 편찬하였고, 나중에 신라 최고의 관직인 上大等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 승려가 된 뒤 고구려에 가서 당시 명성을 날리던 惠亮法師의 불경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거칠부는 귀국한 뒤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많이 빼앗았는데(진흥왕 12년), 거칠부가 戰場에서 돌아올 때 혜량법사도 따라 왔다. 신라에 와서 僧統을 임명받은 혜량은 百高座講會와 八關會를 열었다. 이러한 사실로 유추해보면, 고구려에서도 이와 같은 법회가 열렸던 듯하다. 백고좌강회는≪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護國品의 가르침에 입각한 불교행사로서 세상이 어지럽거나 나라가 위태로울 때 百名의 고승을 모셔다가 이 경을 강독하는 것이다.061)李箕永,<仁王般若經과 護國佛敎>(≪韓國佛敎硏究≫, 韓國佛敎硏究院, 1982).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진평왕 때에도 圓光에 의해서 백고좌회가 열린 바 있다.

 고구려는 말년에 들어와 道敎를 숭상하였다. 榮留王 7년(624), 왕을 비롯하여 수천명의 성직자와 일반인들은 당나라에서 온 道士로부터≪老子≫강의를 들었다. 이듬해에는 유학생을 당나라로 보내어≪노자≫를 배워오도록 하였다. 寶藏王 2년(643)에는 연개소문이 도교를 진흥시키자고 상소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고구려의 도교숭상 정책은 수나라가 불교를 정책적으로 이용한 데 반해 당나라는 도교를 교묘히 이용한 것에서 영향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062)山崎宏,<隋の高句麗遠征と佛敎>(≪隋唐佛敎史の硏究≫, 法藏館, 1967).

 당시 盤龍寺에 살았던 고승 普德은 도교가 불교와 맞서면 나라가 위태로와진다고 여러 번 아뢰었으나 왕이 듣지 않으므로 백제의 完山(全州)으로 거처를 옮겼다.063)≪三國遺事≫권 3, 興法 3, 寶藏奉老 普德移庵. 나중에 그는 涅槃宗의 開祖로 받들어졌으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높이 추앙되고 있었다.064)崔柄憲,<三國遺事에 나타난 韓國古代佛敎史 認識>(≪三國遺事의 綜合的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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