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1. 언어와 문학
  • 1) 언어
  • (2) 삼국 언어의 상호관계

(2) 삼국 언어의 상호관계

 현전하는 언어자료의 비교에 의해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언어 상호간의 관계를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우선 삼국의 언어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삼국의 언어가 單一語였다고 주장한 논저들 중에서는 삼국 공통의 단어를 많게는 30개 가까이 제시한 것이 있는가 하면, 적게는 삼국 공통어를 발견할 수 없다고 기술한 논저까지 있다.291)예를 들면, 김수경,≪세나라 시기 언어력사에 관한 남조선학계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평양·평양출판사, 1989), 45∼48쪽에는 류렬의≪세나라 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평양, 1983)에서 정리·인용한 비교표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에는 삼국 공통 ‘말마디’(단어) 29개가 제시되었다. 반면에, 金芳漢,≪韓國語의 系統≫(民音社, 1983), 114쪽에는 삼국 공통의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두 나라 언어의 공통 단어만 몇 개씩 제시하였다. 이 사실은, 현전하는 언어자료에서 삼국 공통의 단어를 지적하는 일이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공통 단어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실, 삼국 공통어로 제시된 예들은 거의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다.292)김수경, 위의 책, 45쪽에서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본다. 29개 예들 중에서 맨 처음 것으로, 필시 연구자가 가장 신빙성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앞에 두었을 듯하다. 여기서 고구려어 首乙·莫離 / 백제어 毛良(高) / 신라어 首露 (首陵)·麻立 (麻袖)·末(上)을 대응시키고, 이들의 공통적인 독음을 ‘마라/마리’로, 공통적인 의미를 ‘머리’로 제시하였다. 고구려어와 신라어의 예에서 보이는 ‘首’는 석독자(즉, ‘머리’), 나머지 한자들은 모두 음독자로 해석한 것이다. 음독한 한자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국어한자음으로 첫째 자의 초성이 ‘ㅁ’이고, 첫째 자의 종성이나 (‘末’자의 경우) 둘째 자의 초성 혹은 종성(‘乙’)에 ‘ㄹ’음이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러한 공통점 때문에 이들이 같은 단어라고 보는 데는 누구나 우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삼국 공통의 단어뿐만 아니라, 삼국 중 두 나라 언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다고 용이하게 인정할 수 있는 단어도 극소수이다. 이것 역시 논저에 따라 심한 차이를 보인다.293)김수경, 위의 책, 48∼54쪽에는 고구려-백제 공통 17, 고구려-신라 공통 37, 백제-신라 공통 10개가 제시되어 있다. 金芳漢, 앞의 책, 114쪽에는 두 나라 언어간의 공통 혹은 유사어를 표로 보였는데, 고구려-백제가 2개, 고구려-신라 6개, 신라-백제는 없다. 사실, 고구려어 沙伏·沙非(赤)와 백제어 所比(赤), 백제어 翰(大)과 신라어 韓(大), 백제어 夫里(廣野, 벌)와 신라어 伐(벌) 등과 같은 대응은 인상적이며 신빙성이 높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그 수효가 너무 적다. 현전하는 언어자료에서 추출될 수 있는 단어가 삼국 각각 서너 개에 불과하다면, 2∼3개의 인상적인 대응일지라도 높은 비중으로 취급해야겠지만, 고유어로 확인될 수 있는 수백 개의 단어 중에서 오직 2∼3개의 비교만으로써 두 언어의 친소관계를 논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순전히 언어자료의 비교에 의해서는 신라어와 백제어가 고구려어 보다 가까웠다고 결론 짓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현전하는 언어자료에서 신빙성 있게 추출할 수 있는 삼국 공통의 단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대신, 중세국어 혹은 현대국어 어휘항과 유사한 음상을 시현하는 어휘항들은 다음과 같이 삼국어 각각에서 발견된다.

고구려어:巴衣·波衣·波兮(巖, 바회/바위), 忽(城, 골/고을), 述爾·首泥(峯;중세국어 ‘수늙’, 嶺), 首(牛, 쇼/소), 古斯(玉, 구슬) 백 제 어:沙(新, 새), 夫里(平野, 벌;신라어 伐), 烏(孤, 외), 比(雨, 비), 陰(牙;중세국어 ‘엄’, 현대국어 ‘어금니’), 勿居(淸, 맑-), 馬老(乾, 마르-) 신 라 어:破珍(海, 바>바다), 韓(大;중세국어 ‘한’), 那(川, 내), 弗炬(赤, 光明, 붉-), 勿(水, 물), 閼知(小兒, 아지), 吉(永, 길-), 居柒(萊, 荒, 거츨), 異次·異處 (厭;중세국어 ‘잋-’), 密(推, 밀-) 등.

 이와 같이, 현전하는 삼국의 언어자료로부터 중세국어 혹은 현대국어에서 동의의 단어로 음상에 유사성이 있는 단어들이 발견되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온당할까? 첫째는, 삼국의 언어가 단일어였고, 그 단일어가 역시 단일어로 고려를 거쳐 조선, 조선에서 현대국어로 이어져 온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위에서 언급한 삼국 공통의 단어들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적절히, 구차스럽지 않게 설명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둘째는, 삼국의 언어가 공통조상 언어에서 분파되어 나온 언어들이었고, 중세국어 단어들과 비교되는 단어들은 바로 공통조어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삼국의 언어가 상호 달랐다고 보는 것이 첫째 설명 방법과 다르지만, 역시 삼국 공통의 단어가 발견되지 않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셋째 설명 방법은, 삼국통일 이후 국어가 단일어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새로 흡수된 지역의 과거 언어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셋째 설명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언어 발전의 일반적인 형태에 대하여 아래 더 기술한다.

 지금까지 삼국 언어 상호간의 관계는 대개 언어자료가 아닌 일반 기록과 언어현상에 대한 상식적인 관념에 의거하여 논급되었다.

 우리 나라 문헌자료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언어가 상호 소통될 수 있었던 같은 언어였는지 여부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사실을 삼국의 언어가 같았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지적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언어에 대하여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 언어의 동일성을 증명하는 적극적인 증거는 되지 못함은 물론이다. 어느 나라 역사에서나, 분명히 언어가 달랐던 외국과의 접촉 과정에서 발생한 언어문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 참고될 것이다.

 10세기초에 신라를 대신하여 등장한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한다고 ‘고려’라는 국호를 채택한 사실은, 고려인의 입장에서 고구려인을 동일 민족으로 인정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족’을 규정하는 핵심적 요건이 ‘언어’였다면, 고려가 승계한 신라와 고려가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선언한 고구려는 한 민족 한 언어 사용국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역시 고구려와 신라 언어가 동일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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