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4. 조각
  • 1) 청동기시대의 조각

1) 청동기시대의 조각

 한국의 조각미술은 불교조각이 등장하기 이전인 선사시대 후기의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부터 발견된다. 靑銅器시대의 유물은 대체로 무기류나 의식용 도구 또는 장신구가 많은데 그 중에서 칼의 손잡이 끝을 장식하거나 허리띠고리(帶鉤) 끝에 달린 동물 형태에서 조각적인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허리띠 고리 중에는 말 또는 호랑이 모양이 조각된 것이 있는데 특히 경상북도 永川 漁隱洞에서 출토된 청동띠고리의 말 조각이 대표적이다(<그림 1>). 비록 말의 옆모습만 둥근 부조로 조각되었으나 몸과 머리의 비례가 알맞고, 몸체의 굴곡이 뚜렷하고 자연스러우며 엉덩이의 입체감이 강조되어 말의 특징이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어 있다. 호랑이형 띠고리는 긴 꼬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입을 벌리고 있어 맹수임을 알려준다. 청동제 칼손잡이 끝을 장식한 한 쌍의 오리조각들 또는 긴 대 위에 꽂았던 새의 형상 등은 작지만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또 조그만 말 형상이나 뿔이 달린 사슴머리의 독립된 조각도 있는데 어떤 도구의 일부로 조각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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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영천 어은동 출토 청동마형띠고리(청동기시대)
<그림 1>영천 어은동 출토 청동마형띠고리(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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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제 동물조각의 목둘레나 몸체에 기하학적 무늬의 장식띠가 둘려진 것은 바로 한국 청동기의 대표적 예인 多紐細文鏡이나 기타 다른 청동기에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양으로 그 기원은 북방계 유목민족의 청동기문화와 연결되고 있다. 기원전 흑해 연안과 카스피해 근처에 있던 스키타이계 유목민족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시베리아 남부와 중국 북방의 塞族·突厥族·匈奴族 등과 접촉하여 바로 만리장성 북쪽 내몽고 지방에 중국계 스키타이문화인 오르도스(Ordos) 청동기문화를 이룩하였다. 이 문화는 다시 동쪽으로 전파되어 요동반도를 거쳐 한반도의 古朝鮮 또는 三韓文化의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384)金元龍,<考古學에서 본 韓國 民族의 文化系統>(≪한국사≫23 총설, 국사편찬위원회, 1978), 29∼47쪽. 이 북방계의 청동기문화는 중국 中原지방의 청동기문화와도 접촉이 있었으나 우리 나라에 전해지는 漢代이전의 중국의 영향은 주로 北方루트로 전해진 청동기문화가 주류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 유물에 보이는 새의 형상이나 사슴문양은 북방 유목민 사이에 유행했던 원시 무속신앙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385)金暘玉,<韓半島 靑銅器時代 文樣의 硏究-새와 사슴모양을 중심으로->(≪韓國考古學報≫10·11, 한국고고학연구회, 1981), 25∼29쪽.

 청동기시대의 조각미술 중에는 암벽에 새긴 조각도 있다. 암벽을 쪼아내거나 선각을 하거나 또는 도드라지게 하여 표현한 동물·물고기·인물 등은 당시의 수렵생활이나 농경생활을 나타내며, 또 여러 형태의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자연숭배 등 원시신앙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식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암벽조각이 경상북도 울진군 川前里의 太和江 상류의 계곡 옆에 있는 높고 편편한 암벽에서 발견된다. 線刻으로 표현한 同心圓이나 네모형·소용돌이·물결무늬의 여러 기하학적인 문양은 아마도 태양이나 별자리 같은 형태를 나타낸 것으로, 이곳은 자연숭배 의식을 행한 장소로 이용된 것 같다. 비슷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암벽조각이 경상남도 高靈의 良田洞 마을에서도 발견되는데 아직도 그 정확한 의미는 해명되지 않고 있다.

 울진군의 川前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大谷里의 盤龜臺에는 좀 더 큰 규모의 岩刻조각이 있다.386)黃壽永·文明大,≪盤龜臺≫(동국대학교 출판부, 1984).
黃龍渾,≪동북아시아의 岩刻畵≫(민음사, 1987).
여러 마리의 크고 작은 고래가 금속 창에 맞은 모습, 새끼 고래를 업고 있는(혹은 물고기를 삼켰다고도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보이며, 또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 배를 탄 사람들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 사슴·산양·멧돼지·호랑이 등의 동물들을 암벽을 낮게 떼어내거나 선각으로 표현하여 선사시대 동물 표현 미술의 중요한 예로 남아있다. 그 표현 효과는 회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표현기법으로 보면 선을 파거나 면을 떼어낸 원시 조각기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암각화로 알려졌으나 암벽조각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이 암벽조각의 내용 중에는 고래사냥에 청동제 화살촉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으며, 동물을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둔 표현에서는 정착하면서 농경생활을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와 비슷한 암벽조각이 북부 유라시아,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의 바위조각에서도 발견된다고 하여 우리 나라 先史人들의 이주 배경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이 암벽조각이 있는 울주면 대곡리나 천전리의 주변환경은 깊은 산속에 수려한 풍경과 넓은 암반이 있는 곳으로 선사인들의 신앙의 장소가 어떠한 곳이었나 하는 점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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