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4. 조각
  • 2) 삼국시대의 조각
  • (1) 일반 조각

(1) 일반 조각

 삼국시대의 유물 중에서 일반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예는 토기 뚜껑이나 항아리 어깨 위에 붙여진 동물 또는 인물조각의 土偶들이 있으며 대부분 死後세계에서도 생전과 같은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무덤에 넣은 부장품 중에서 발견된다. 또 그릇 자체가 조각형태를 한 象形토기도 있다. 토우들은 가야와 신라고분에서 대부분 출토되며 손으로 간단하게 빚어서 만든 토기 중에 高杯의 뚜껑이나 항아리의 어깨 위에 얹어 놓은 것이 많다. 대부분 주변생활과 관련되는 인물·동물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자세나 얼굴표정에 유모어 감각과 생동감이 넘친다(<그림 2>). 특히 미추왕릉 구역에서 출토된 목이 긴 항아리의 어깨 위로 돌아가며 붙어 있는 토우들은 개구리·뱀·새 등의 동물과 가야금 같은 악기를 뜯는 인물 또는 남녀의 性戱장면 등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현재 전하는 많은 토우들은 원래의 토기에서 떨어져서 남아 있는데 인물의 이목구비와 신체 표현이 별로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남녀의 性적인 특징을 강조하고 있거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생생한 모습 또는 악기를 타는 인물의 율동적인 자세 등은 당시 고대인들의 생활상과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387)李蘭英,≪新羅의 土偶≫(교양국사총서 2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土偶≫(대원사, 1991).
國立慶州博物館,≪新羅土偶-新羅人의 삶, 그 永遠한 現在-≫, 1997년도 특별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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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신라 土偶
<그림 2>신라 土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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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나 신라고분 출토의 土製 부장품 중에 인물 또는 동물모습의 象形 토기류를 흔히 異形 토기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서도 조각적인 형상이 다양하게 발견된다. 특히 잘 알려진 예가 경주 금령총 출토의 기마인물형 토기나 미추왕릉지구 출토의 神龜形 토기 등으로 신라인의 사실적인 표현력과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준다. 기마인물형 토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당시의 馬具종류나 그 용도 또는 인물의 복식형태를 알 수 있으며 신라시대의 말 문화와 관련된 생활상을 알려준다. 환상적인 신구형 토기는 거북이보다는 오히려 龍形에 가까우며 고대인들의 사후세계 사상과 연관되는 瑞像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갑옷을 입은 기마인물상, 노를 젓는 인물과 배, 기름등잔, 가옥, 오리 등의 모습으로 만든 토기들도 있다.

 토우 형태가 아닌 독립된 조각 중에는 백제의 두번째 도읍인 공주의 송산리에 있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鎭墓獸가 있다(<그림 3>). 무덤 주위를 수호하기 위하여 동물조각을 배치하는 습관은 중국의 秦·漢代부터 유행하였고 특히 南朝지역의 도읍이었던 南京의 옛 왕능묘 주변에는 지금도 사자처럼 생긴 큰 石獸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무령왕의 진묘수는 墓室내에서 玄室로 들어가는 입구의 묘지석 앞에 놓여 있었고 크기가 47.3cm 정도의 비교적 작은 형태이다. 머리에는 뿔을 금속으로 만들어 꽂았고 날개의 형태는 도드라지게 생겼는데, 실존동물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瑞獸인 麒麟 또는 神鹿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동물의 형상에는 별로 생동감이 없고 몸체의 굴곡이 사실적이지는 못하나, 위엄있고 묵직한 자세는 무덤을 수호하는 석수로서의 역할을 잘 나타내 준다. 무령왕릉에서 또한 조그만 석조 인물상이 출토되었는데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있는 童子形 조각으로 단순한 조형성이 특징적이다. 매끈한 조각 솜씨나 균형 잡힌 比例面에서 독립된 인물상으로는 뛰어난 예라 할 수 있다.388)文化財管理局,≪武寧王陵發掘調査報告書≫(三和出版社,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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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무령왕릉 鎭墓獸(525)
<그림 3>무령왕릉 鎭墓獸(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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