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4. 조각
  • 2) 삼국시대의 조각
  • (2) 불교조각

(2) 불교조각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 수용되는 것은 4세기 후반이다. 불교의 수용은 한국 미술의 여러 분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예배상인 불상의 조성은 조각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4세기말에 이미 절이 지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예배 대상인 불상도 그 때에 모셔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보면 대부분이 6세기 이후의 금동이나 석조 불상들이다. 흙이나 나무로 만든 상도 있었을 것이나 현재 조선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목조상은 거의 없고 소조상은 한 두 예가 남아있다.

 불교조각은 근본적으로 神格의 예배상이므로 초인간적인 특징을 갖춘 인물형태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불교의 근원지인 인도에서 시작된 불상형은 몸의 자세, 손의 모습, 옷을 걸쳐 입는 기본방식이 일정한 圖像에 따라 만들어지고 이 도상은 인도나 중국 또는 한국 불상에 공통되게 나타난다. 그러나 각 나라 불상의 얼굴 표현에는 은연중에 그 민족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불상형이 반영되고 옷이나 장식의 표현에도 각 지역의 풍속에 따른 독특한 요소가 보인다. 또 표현 방법에는 그 민족 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미적 감성이 반영되고 조각 기법에도 변화를 주어 인도나 중국과는 또 다른 한국의 불상형이 발달하게 된다.

 4세기말 불교신앙의 전래는 삼국시대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국 5胡16國의 하나였던 前秦의 符堅이 372년 고구려에 불상과 경전을 전함으로써 북방의 胡族을 통해서 들어오는 불교를 처음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3년 후인 375년에 수도 평양에는 肖門寺와 伊佛蘭寺가 지어지고 광개토왕 2년(392)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이 세워졌다고 하므로 각 절에는 불상이 모셔졌을 것이고 승려를 통한 예배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황해도 安岳의 2호 고분과 357년 명문이 있는 3호고분 묘실의 천정 중앙에 연꽃이 그려져 있는 것이나 평양 근처의 德興里고분 벽에 쓰여진 기록에 고구려 永樂 18年(408) 釋迦文佛弟子였던 주인공이 죽자 유교에 따라 택일하여 묘를 지었다는 내용은 새로운 불교의 수용과 전통적인 葬法이 같이 병행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백제의 불교는 384년 東晋에서 온 胡僧 마라난타에 의해서 전해졌는데 이는 중국 南朝와 교류가 빈번했던 백제문화의 성격을 뒷받침한다. 불교가 전해진 다음해인 385년에 백제의 첫번 도읍지인 漢城(지금의 서울)에 절이 세워지고 10인의 승려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면 각 절마다 불상이 있었고 불교의식이 행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또 이 불상들은 중국에 나타나는 초기 불상의 모습을 반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삼국시대 초기 불교유적이나 조각물이 남아 있는 예가 적고 또 문헌기록이나 명문이 있는 예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불교 조각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명문이나 출토지가 알려진 불상들이나 또는 암벽에 조각된 중요한 마애불상들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불상의 도상과 양식의 연구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한국 불상에 영향을 준 중국 불상들과의 비교 연구 및 그 원류가 되는 인도와 서역의 불상과의 비교는 한국 불상의 흐름과 변천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고 또한 고구려·신라와 함께 일본의 초기 불교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백제와 일본의 불상, 또 백제와 고구려 및 신라 불상과의 상호 연관성 그리고 삼국의 불상과 중국 및 일본의 불상과의 비교 연구는 한국의 불상이 圖像的으로나 양식적으로 어떻게 국제적인 보편성을 따르면서 한국적인 특징을 발전시켰는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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