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Ⅴ. 과학기술
  • 2. 고구려의 과학과 기술
  • 4) 지도의 제작

4) 지도의 제작

 고구려의 지리학과 지도제작의 지식을 전해주는 기록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4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사이의 고구려 천문학의 수준은 우리에게 고구려의 지리학과 지도제작이 적어도 그와 비슷한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구려의 무덤 벽화 중에서 요동성의 성곽도, 약수리 벽화고분 성곽도, 그리고 용강대묘 성곽도에서 볼 수 있는 도시 지도는 4∼5세기 고구려 지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 628년에는 고구려 사신이 封域圖라는 고구려 지도를 당에 바쳤다고 한다.

 무덤들에 그려진 城市들의 지도는, 성내외의 지형, 성시의 구조와 시설, 도로, 성벽과 그 시설, 그리고 누각과 기와집·민가와 같은 건물들이 그려져 있고, 하천과 개울, 산과 도로 등이 적·청·보라·백색 등의 안료를 써서 회화적 수법으로 묘사되고696)全相運,≪韓國科學技術史≫(正音社, 1976), 298∼299쪽.
도성 건축의 측면에서는 尹張燮, 앞의 책, 72∼73쪽 참조.
그 수법은 조선시대의 여러 성시들의 회화적 지도와 매우 비슷하여 이런 지도의 초보적인 제작 수법과 형식이 4세기경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류왕 11년(628)의 고구려 전도도 이러한 지도제작 수법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이 도시 지도들의 제작법은, 3세기 중국의 유명한 지도 제작자인 裵秀가 제시한 지도제작의 6가지 원리가 고구려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요동성도에는 성곽의 테두리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고, 내성과 외성, 그 안의 주요 시설들이 그 상대적 위치가 크기 등과 함께 비교적 성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하천과 개울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흐르는지, 그 상대적 크기는 어떤지가 나타나 있고, 성안의 통로와 건물들이 크기와 유형에 따라 묘사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수법으로 그려진 성곽도는 약수리 벽화무덤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고구려의 지도제작 수법이 비슷하게 도식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성시들의 지도만으로는 裵秀의 지도제작의 원리가 실제로 어느 정도로 반영되었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